열 살 되던 해, 새 교장 선생님이 부임했다. 변두리 시장통에 자리 잡은 이 학교에도 선진교육을 들여와 학부모들이 빚내어 더 나은 학군으로 이주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훈화하시던 그분은 높은 이상을 품은 열정적인 교육자셨다. 다만 그 이상이 때론 학교 현장에서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던 듯하다. 그분이 야심 차게 도입한 ‘구라파식 체력단련’이 특히 그러했다. 월요일에 조회를 마친 후 교무실로 심부름 갔더니 몇몇 선생님들이 밀크커피를 타 마시며 “구라파 좋아하시네” 쿡쿡 웃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체력단련의 방편으로 우린 매주 한 번, 한 학년 열두 반이 줄줄이 버스 타고 멀리 동서울 수영장까지 찾아가 교습을 받았다. 말이 교습이지 실질적으론 ‘물장구치고 맴맴’이었다. 물 위에 동동 떠다니는 조그맣고 까만 머리들이 꺅꺅 떠드는 통에 수영장의 지붕이 펑 날아갈 기세였다. 우린 매점에서 팔던 핫도그와 컵떡볶이가 맛났고, 수영교습 가는 날엔 오후수업이 없어 마냥 신났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