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이혼전문변호사 일년이 두꺼운 국어사전이라면 초겨울은 격음의 시간에 해당한다. 수분 빠진 낙엽들은 ‘ㅊ, ㅋ, ㅌ, ㅍ’처럼 거칠고 비틀리고 꼬부라진 모양으로 지면에 깔린다. 찢어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마른 잎 밟을 때마다 자지러지는 소리가 나는 건 이 때문이다. 가지에서 툭, 떨어지는 낙엽들. 점점 추워지는 날씨도 한몫을 한다.
무른 바위 우세한 산기슭에서 잎사귀들의 순한 표정은 올봄의 일이었다. 물결처럼 출렁이던 잎들의 전성시대는 여름. 이제 모두 새우처럼 등을 굽히며 뒤틀린다. 어디 급히 지나가는 쓸쓸이라도 발견하면 다람쥐가 도토리 줍듯 데려다가 입안에 여러 개 저장하고 싶은 늦가을이었다. 세상의 포부를 잔뜩 담았다가 활짝 피었던 그 모든 꽃봉오리들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대궁 위에 꽃받침만 남았다. 이제 단풍도 지나 낙엽의 시기다. 단풍이 색이라면 낙엽은 태도 아닌가.
일산에서 모처럼 저녁 약속. 지하철 3호선 종점인 대화는 한자로 쓰면 ‘大化’다. 대단한 변화라는 뜻인가. 낙엽이야말로 지상의 삶을 끝내고 지하로 들어가야 할 차례이니 대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바닥으로 바로 들어갈 수는 없다. 몸은 낮추었지만 더 작아져야 한다. 보통 작아지는 게 아니라 지상에서의 외투를 벗고, 먼지만큼 작아지고서야 녹아들 수 있다. 바닥은 바다처럼 새로운 문명의 발상지다. 약속 시간 지나도 동무는 아니 오고 맞춤하게 격음이 골고루 등장하는 동시 하나를 찾았다. “잠잘 곳이 없어서/ 늙은 잠자리/ 바지랑대 갈퀴에/ 혼자 앉아서/ 추운 바람 서러워/ 한숨 짓는데/ 감나무 마른 잎이/ 떨어집니다.”(‘늙은 잠자리’, 방정환)
새삼 생각하느니 나도 낙엽처럼 늘 누구를 따라다니는구나. 바람이 데리러 와도 떨어진 잎들은 골목마다 슬하를 떠나지 않으려는 자식처럼 어깨동무 걸고 진을 치더니 이제는 마른 낙엽 되어 우르르 우르르.
거리마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낙엽들 보다가 대화역 버스정류장 옆 구두수선방의 조그만 입간판까지 보게 되었다. ‘금이빨 삽니다.’ 구두와 이빨. 대체 무슨 상관이길래 둘은 바닥에 서로 묶여 있는가. 늙은 잠자리에게 물어볼까나.
지난해 12월16일 ‘빌린용기’(가명·29)는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 무대에 올랐다. 주로 집에 머물며 스스로 사람들과 단절한 생활을 한 지 약 10년째였다. 그는 광장에서 자신을 ‘술집 여자’라고 소개한 한 시민의 발언을 들었다. 그에게서 ‘용기를 빌려’ 무대에 선 빌린용기가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고립·은둔 청년입니다.” 빌린 용기로 뱉어낸 고백은 환호로 돌아왔다.
1년이 지났다. 정부가 바뀌었고 무대는 사라졌다.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집 밖으로 나와 사람들 앞에 섰던 빌린용기가 찾아간 자리는 어디였을까? 지난 24일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지난 1년간 재개발지에서 밀려난 성매매 여성들과 연대해온 그는 “계엄은 해제됐지만 여전히 ‘비상사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빌린용기에게 계엄은 새로 닥친 위기가 아니었다. “늘 존재하던 민주주의의 불안이 터져나온 사건”이라고 했다. “다수의 시민들이 아닌 소수의 권력이 세상을 결정하는 것”이 한국의 민주주의였고, 그것이 뒤틀린 결과가 계엄이라고 그는 말했다. 껍데기뿐인 민주주의의 민낯이 드러나자, ‘밀려난 삶’들이 광장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청소년, 성소수자, 장애인 등 90여곳이 넘는 광장을 뛰어다니며 빌린용기는 밀려난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의 관심은 재개발지에서 밀려난 성매매 여성들을 향했다. 그는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몰라 수년간 집에 있었던 내 모습과 그 여성들이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인천에 살던 빌린용기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성매매집결지인 ‘미아리텍사스촌’ 여성들과 연대하기 위해 성북구의 반지하방으로 이사했다. 광장에서 외친 ‘연대’는 말처럼 쉽고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밖에 나가는 것도 내 역할을 해내는 것도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아픈 날이 많았다.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했지만 그에게 민주주의는 한 번에 이뤄지는 성과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삶의 과정이었다.
“집에 틀어박힌 사람”에서 “현장에 있는 사람”이 된 그에게 민주주의는 여전히 멀다. 그가 말했다. “한 못된 정치인의 잘못을 짚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정치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이 왜 각자의 삶과 연결된 문제인지, 그리고 어떻게 함께 바꿔나갈지도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언 바다를 깨는 도끼처럼 우리의 말들이 서로에게 닿았으면 해요. 미흡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저도 그런 사람이 계속되고 싶어요. 혼자 짊어지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잖아요.” 무대가 사라진 뒤에도 빌린용기의 광장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