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코오롱하늘채 시인이 만났던 겨울 속으로 들어간다. 시인은 겨울에 대해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아직은 그 “끝을 모른다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겨울을 건너가기 전에 다짐한다. “길 저쪽 눈부심”이 있는 곳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그 눈부신 세계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서 영영 가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저 살아남으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에게 늘 불어닥쳤던 “겨울은 잘못”이 없다. 다만 우리는 살아남아서 통점이 모이는 가장 아픈 곳, 슬픔의 빛 속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야 한다. 당신과 내가 끝까지 옹호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름들, 어떤 시간들일까. 겨울은 어떤 진실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거짓은 눈 속에 파묻힌 채, 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눈 속에 파묻힌 구부러진 길들을 펴는 일을 우리는 계속해야 할 것이다. 곧 눈이 펑펑 내려 쌓여 또다시 아무것도 보지 못할지라도. 끝내 겨울은 당신의 시작과 끝을 옹호할 것이다.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인근에서 주 방위군에게 총격을 가해 2명을 중태에 빠뜨린 아프간 남성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아프간 준군사조직 ‘제로유닛’ 대원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제로유닛은 민간인 학살로 악명이 높아 국제 인권단체로부터 ‘처형단’이란 비판을 받았던 곳이다. 미 정보당국이 라마눌라 라칸왈(29)이라고 확인한 이 남성은 당시 부대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 때문에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라칸왈이 과거 부대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라칸왈의 어린 시절 친구는 2021년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대마초를 피우기 시작했고, 결혼식을 올린 지 며칠 만에 이혼했다”며 “나에게 피와 시체, 부상자들을 보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고, 정신적으로 큰 압박감이 밀려온다고 털어놨다”고 말했다.
라칸왈이 속했던 제로유닛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도와 탈레반 등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습격하는 비밀 임무를 수행한 대테러 정예부대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이 부대는 CIA에 의해 모집·훈련·감독을 받았으며, 급여도 CIA로부터 받았다. 또 CIA와 협력하는 미 특수부대원들도 종종 작전에 함께 합류했다.
아프간 군부대였지만 미군 직속과 다름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아프간 대통령조차 이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2021년 탈레반이 칸다하르로 진격해 왔을 때 아프간 대통령은 제로유닛 병력을 동원하기 위해 CIA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고 NYT는 전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2019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제로유닛이 2017년 말부터 2019년 중반 사이에만 14건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저질렀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18년 10월에는 노인 여성과 어린이가 포함된 일가족 5명을 사살했고, 그해 12월에는 야간 수색 작전 중 부족 원로의 눈과 20대 조카의 입을 총으로 쏴 사살했다.
제로유닛을 추적한 프로퍼블리카의 2022년 탐사보도에 따르면 이 부대는 잘못된 정보에 의존해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민간인들, 심지어 두 살밖에 안된 어린이까지 무참히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이 부대는 잘못된 작전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미국 ‘리히법’에 따르면 미국이 지원하는 외국 부대는 반드시 의회의 인권 모니터링을 거쳐야 하지만, CIA와 함께 작전하거나 미 특수부대가 비밀작전 형태로 협업하는 외국 부대는 해당 법의 적용 대상에서 예외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CIA는 해당 부대의 잔혹 행위에 대한 모든 의혹을 부인하며, 이는 탈레반의 선전 활동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국 이민국(USCIS)이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를 근거로 제로유닛 소속 아프간 군인의 망명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 부대에서 라칸왈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사촌은 AP통신에 그가 2012년 해당 부대에서 경비원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나중에 GPS 특수요원으로 승진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부대의 전직 관계자는 라칸왈이 팀장이었고, 그의 형은 소대장이었다고 밝혔다.
라칸왈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수만 명의 아프간 사람들을 미국으로 재정착시킨 ‘동맹 환영 작전’을 통해 입국했다. 당시 7만6000여명의 아프간인이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군에 협력해 탈레반에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는 자들이었다.
워싱턴 검찰에 따르면 라칸왈은 미국에 입국한 후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약 127㎞ 떨어진 워싱턴주 벨링햄에 정착해 아내 및 자녀 5명과 거주해 왔다. 그는 이번 범행을 위해 차를 몰고 대륙을 횡단해 워싱턴까지 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그의 정확한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기 이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