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플리카쇼핑몰 아파트 화재 참사가 드러낸 홍콩 ‘최악 집값’ 문제···시민들 “대나무 비계 탓 그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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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59.♡.244.214) | 작성일 | 25-11-29 06: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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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플리카쇼핑몰 지난 26일 홍콩 북부 타이포구의 32층 공공분양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宏福苑)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참사를 계기로 홍콩의 구조적 문제와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 등이 제기되고 있다.
28일 홍콩 성도일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홍콩 당국은 이번 화재로 이날 오후 기준 사망자 128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실종자 20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면서 오후부터 구조 작업이 본격화됐고, 부상자 가운데 위중·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추가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화재는 1948년 176명이 숨진 홍콩 창고 폭발 이후 77년 만에 최악의 인명 피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은 27일(현지시간)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 화재 원인을 둘러싼 분노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참사로 홍콩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주거 불안과 천정부지의 주택 가격 문제가 다시 부각됐다는 것이다. 극도로 높은 집값 탓에 많은 시민이 고층 아파트에 빽빽하게 거주하고 있어, 이런 구조가 재난 시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위험성을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대나무 비계를 금속 비계로 대체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당수 홍콩 시민은 정부가 화재의 요인을 대나무 비계로만 돌리는 데 불만을 표하고 있다. 실제 화재 현장에서는 대나무 비계가 일부 무너지긴 했지만 불에 타지 않고 형체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길에 소실된 것은 비계 사이에 설치된 녹색 안전그물이었다. 일각에서는 대나무 비계를 홍콩 건설 문화의 중요한 유산이자 정체성으로 보며, 중국 본토에서 주로 쓰이는 금속 비계와 구별되는 상징성도 갖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타이포 출신의 전 홍콩 구의원인 마이클 모는 웡 푹 코트 주민들이 수개월 전부터 시공사의 부실 공사와 위험성을 지속해서 제기해왔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홍콩 노동국 명의의 e메일이 주민들에게 공유됐는데, 메일에는 “보수공사에는 불꽃 작업이 없어 비계에서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낮다”고 했다. 또 노동국 규정에는 비계 재료의 난연 기준을 관리하지 않는다고 안내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공사 현장에서 화재 위험성을 경고하는 민원이 반복됐음에도 참사가 발생한 것은 전형적인 ‘인재’라는 비판이 나온다. 해당 업체가 안전 규정을 상습적으로 위반했다는 보도도 현지 언론을 통해 연이어 나오고 있다. 28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경찰과 홍콩 반부패 수사기구인 염정공서(ICAC)는 웡 푹 코트 보수공사 과정에서의 부패 의혹에 대한 형사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현재까지 업체 관계자 5명이 체포됐다. 그간 홍콩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독립 판사가 주도하는 공개 조사위원회를 설치해왔지만, 이번 사건에서 같은 절차가 진행될 가능성은 작다. 최근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홍콩의 사법 독립성이 크게 약화한 점이 근거로 꼽힌다. 마이클 모는 “홍콩 정부는 코로나19 때도 독립 조사를 하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에 독립위원회를 꾸린다면 존 리 행정장관은 정치적으로 끝장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화재 진압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전면적 노력’을 지시했다. BYD, 지리,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기업들은 수천만 홍콩달러 규모의 구호 기부를 약속했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인민해방군이 언제든 도시를 지킬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존 리 행정장관은 12월 7일로 예정된 입법회(국회 격) 선거 연기 가능성도 언급했다. 홍콩 정부는 2020년에도 코로나19를 이유로 선거를 연기했는데 당시 민주 진영에 큰 타격을 준 조치였다는 점에서 홍콩 시민들의 정치적 불안과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인근에서 주 방위군에게 총격을 가해 2명을 중태에 빠뜨린 아프간 남성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아프간 준군사조직 ‘제로유닛’ 대원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제로유닛은 민간인 학살로 악명이 높아 국제 인권단체로부터 ‘처형단’이란 비판을 받았던 곳이다. 미 정보당국이 라마눌라 라칸왈(29)이라고 확인한 이 남성은 당시 부대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 때문에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라칸왈이 과거 부대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라칸왈의 어린 시절 친구는 2021년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대마초를 피우기 시작했고, 결혼식을 올린 지 며칠 만에 이혼했다”며 “나에게 피와 시체, 부상자들을 보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고, 정신적으로 큰 압박감이 밀려온다고 털어놨다”고 말했다. 라칸왈이 속했던 제로유닛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도와 탈레반 등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습격하는 비밀 임무를 수행한 대테러 정예부대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이 부대는 CIA에 의해 모집·훈련·감독을 받았으며, 급여도 CIA로부터 받았다. 또 CIA와 협력하는 미 특수부대원들도 종종 작전에 함께 합류했다. 아프간 군부대였지만 미군 직속과 다름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아프간 대통령조차 이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2021년 탈레반이 칸다하르로 진격해 왔을 때 아프간 대통령은 제로유닛 병력을 동원하기 위해 CIA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고 NYT는 전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2019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제로유닛이 2017년 말부터 2019년 중반 사이에만 14건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저질렀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18년 10월에는 노인 여성과 어린이가 포함된 일가족 5명을 사살했고, 그해 12월에는 야간 수색 작전 중 부족 원로의 눈과 20대 조카의 입을 총으로 쏴 사살했다. 제로유닛을 추적한 프로퍼블리카의 2022년 탐사보도에 따르면 이 부대는 잘못된 정보에 의존해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민간인들, 심지어 두 살밖에 안된 어린이까지 무참히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이 부대는 잘못된 작전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미국 ‘리히법’에 따르면 미국이 지원하는 외국 부대는 반드시 의회의 인권 모니터링을 거쳐야 하지만, CIA와 함께 작전하거나 미 특수부대가 비밀작전 형태로 협업하는 외국 부대는 해당 법의 적용 대상에서 예외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CIA는 해당 부대의 잔혹 행위에 대한 모든 의혹을 부인하며, 이는 탈레반의 선전 활동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국 이민국(USCIS)이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를 근거로 제로유닛 소속 아프간 군인의 망명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 부대에서 라칸왈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사촌은 AP통신에 그가 2012년 해당 부대에서 경비원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나중에 GPS 특수요원으로 승진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부대의 전직 관계자는 라칸왈이 팀장이었고, 그의 형은 소대장이었다고 밝혔다. 라칸왈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수만 명의 아프간 사람들을 미국으로 재정착시킨 ‘동맹 환영 작전’을 통해 입국했다. 당시 7만6000여명의 아프간인이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군에 협력해 탈레반에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는 자들이었다. 워싱턴 검찰에 따르면 라칸왈은 미국에 입국한 후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약 127㎞ 떨어진 워싱턴주 벨링햄에 정착해 아내 및 자녀 5명과 거주해 왔다. 그는 이번 범행을 위해 차를 몰고 대륙을 횡단해 워싱턴까지 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그의 정확한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기 이르다”고 밝혔다. 체포 명단 몰랐지만 위치 노출 방지발 디딜 곳 있는 식물원 앞 철문 선택먼저 넘고 ‘의장 월담’ 장면도 찍어 마음 약해질까봐 가족에 연락 안 해군인 밀려오면 어떻게 맞설지 생각해제 결의안 통과에도 2차 계엄 걱정 김성록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 국회의장경호대장(경감)은 지난해 12·3 불법계엄 때 우원식 의장을 수행하며 함께 국회 담장을 넘었다. 우 의장이 담장을 넘는 사진을 찍은 사람도 그였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김 경감은 1년 전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지난해 12월3일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법계엄을 선포하기 전까지는. 김 경감은 우 의장이 국회 김장행사,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의 만찬 등을 마친 뒤 오후 9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관저에 함께 도착했다. 우 의장이 다음날 지방 일정이 있어 김 경감도 경호동에서 자기로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텔레비전을 켰다. 윤 전 대통령의 담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엔 가짜뉴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터넷에 ‘계엄 선포 속보’가 쏟아졌다. ‘의장님께서 국회에 들어가시겠구나’ 생각한 김 경감은 옷을 챙겨 입었다.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경호대 당직자가 모는 차를 타고 국회로 향했다. 오후 10시38분쯤 관저를 출발해 약 15분 만에 국회3문 앞에 도착했다. 평소였다면 아무 문제 없이 지날 수 있었던 문은 막혀 있었다. 4문도 경찰이 통제하기 시작했다. 김 경감은 ‘의장 탑승 차량이니 문을 열라’고 소리치는 대신 다른 통로를 찾았다. 우 의장이 계엄군의 1순위 체포 명단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지만 김 경감은 본능적으로 ‘의장의 위치가 노출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단 여기서 내리자.” 차가 들어설 문을 찾지 못하자 우 의장이 김 경감에게 말했다. 김 경감은 3문과 4문 사이 어둑한 길가에서 우 의장과 함께 내렸다. 국회 담장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발을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국회 식물원 앞에 난 철문이었다. 조금 더 낮은 데다 발 디딜 곳도 있었다. 김 경감이 먼저 철문을 넘어 주변을 살폈다. 우 의장이 뒤이어 넘어왔다. 김 경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느끼며 휴대전화로 그 모습을 찍었다. 이 사진은 12·3 계엄 사태를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로 역사에 남았다. 두 사람은 국회 본청으로 향했다. 어두운 길을 걷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발길을 돌리려던 순간 식물원 옆 어린이집 담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황급히 몸을 피하고 보니 어둠 속에서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담장을 넘고 있었다. 국회 본청에 도착했지만 의장실로 향하는 복도도 조명이 꺼져 어두웠다. 김 경감은 “매일 수십번 다니는 길인데 알 수 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국회의장 비서관과 국회 사무처 직원이 하나둘 국회로 모여들었다. 김 경감은 혹시라도 우 의장의 위치가 경찰이나 계엄군 등에게 파악될까 걱정돼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밖을 보니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김 경감은 “그때 정말 죽을 각오를 했다”고 말했다. 마음이 약해질까 가족에게 연락하지도 않았다. 국회의장을 찾는 군인이 밀려들어 오면 어떻게 맞설지 생각했다. “<서울의 봄>을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로 재미있게 봤었는데, 막상 실제 상황이 되니까 감정이 이입되더라고요.” 다행히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너무 늦지 않게 통과됐다. 김 경감은 ‘2차 계엄’을 걱정하며 우 의장 경호 임무를 이어갔다. 나흘 뒤에야 집으로 퇴근할 수 있었다. 김 경감은 “그날 밤의 임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호 대상자를 지키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용인상간소송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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