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수정, ‘환경경영·상생협력’ 우수기관 선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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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182.♡.210.26) | 작성일 | 25-11-28 03: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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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한수정)은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정책학회로부터 각각 ‘환경경영’과 ‘상생협력’ 부문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고 27일 밝혔다.
한수정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주최한 ‘2025 녹색경영 및 녹색금융 우수기업’ 시상식에서 환경정보공개 부문 장관상을 받았다. 한국정책학회가 연 ‘2025 정책EXPO’에서는 협력·상생 정책 실천기관으로 인증을 획득했다. 이번 수상은 한수정이 ESG 경영을 중심으로 환경적 책임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강화해 온 점이 높게 평가받은 결과다. 기관은 전력·에너지 절감 활동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ECO수목원’ 운영으로 자원순환 촉진, 전 직원 참여형 탄소 감축 캠페인 등 환경 경영을 실천해 왔다. 또 유관기관과의 정책 협업 강화, 청년 혁신 네트워크 운영, 지역사회와의 상생 기반 조성 등 협력 중심의 정책 혁신도 추진해왔다. 심상택 한수정 이사장은 “이번 수상은 한수정이 환경과 사회적 책임, 거버넌스 전 영역에서 균형 있게 성과를 인정받은 의미 있는 결과”라며 “앞으로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ESG 경영을 실천하고 상생과 협력의 가치를 넓혀가는 공공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5일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순재는 무대와 방송을 넘나들며 시대와 호흡한 ‘대중들의 배우’였다. 영화와 드라마, 시트콤, 연극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연했으며 시대가 요구하는 깊이 있는 연기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으며 국민 배우의 자리에 올랐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자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중국 지린성 옌지로 이주했고 네 살 때부터 서울에서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대전고등학교 시절 연극 <햄릿>을 무대에 올리고,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다니던 1956년 신영균, 이낙훈 등 동기들과 연극반을 재건하는 등 일찍이 연극과 연기에 열정을 싹틔웠다. 같은 해 연극 <지평선 너머>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으며 이듬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인 대한방송의 드라마 <푸른지평선>으로 브라운관에서 얼굴을 알렸다. 1960년 대학 졸업 후엔 허규, 유달훈, 김의경 등 연극인들과 의기투합해 국내 최초의 동인제 극단인 ‘실험극장’을 만들어 연극 무대에 나섰다. 1961년 KBS 개국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를 통해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64년 TBC 공채 1기로 발탁되며 100편이 넘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1966년 영화 <초연>을 시작으로 <한>(유현목, 1967), <단발머리>(김수동, 1967), <빙점>(김수용, 1967), <막차로 온 손님들>(유현목, 1967)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스크린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후 1980년대까지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주요 출연 드라마는 <나도 인간이 되련다>,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삼김시대>,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140편에 달하지만,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까지 포함하면 400편이 넘는다. 한 달에 30편 넘는 작품에 출연한 적도 있다. 고인에게 대중적 인기를 가져다준 작품은 드라마였다. 1991년 57세의 나이로 출연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가부장적인 ‘대발이 아버지’ 이병호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65%를 기록하며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이후 국회의원으로서 민자당 부대변인과 한일의원연맹 간사 등을 역임했다. 이후 <목욕탕집 남자들>(1996), <허준>(1999), <이산>(2007), <엄마가 뿔났다>(2009) 등 주말 드라마에서 엄하지만 따뜻한 아버지와 스승 역할을 맡으며 ‘국민 아버지’ 반열에 오른다. 일일드라마와 사극, 현대극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70대에 또 한 번 전성기를 맞는다. 2006년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그간 보여준 엄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벗고 괴팍하면서도 허당끼 있는 한의원 원장 이순재로 변신해 코믹 연기를 펼쳤다. 극중 ‘야동’을 보다 들키는 ‘야동 순재’ 캐릭터로 대중에게 웃음을 안기며 젊은 층은 물론 어린이 팬들까지 생겨났다. 고인은 72세에 찍은 이 작품으로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일주일에 다섯 번 방영되는 탓에 강도 높은 촬영 일정을 견뎌야 했지만 자신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가져다준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그는 한 방송에서 “투병 중인 환자들이 ‘하이킥’을 볼 때 유일하게 웃는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tvN의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 신구, 박근형, 백일섭과 함께 출연하며 예능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의욕 넘치는 모습으로 나이를 잊은 열정을 보여준 그는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배우로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연극 무대로 돌아온 그는 <장수상회>(2016), <앙리할아버지와 나>(2017), <리어왕>(2021)에서 열연을 펼쳤다. 특히 <리어왕>에서는 200분 공연의 방대한 대사량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찬사를 받았다. 2023년에는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를 후배 배우들과 함께 대극장 무대에 올리며 연출자로도 첫발을 내디뎠다. 지난해 10월 건강 문제로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 전까지 그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2TV 드라마 <개소리> 등에 출연하며 마지막 연기 혼을 불태웠다. 한국 연극·방송계가 격변을 겪던 시기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배우는 평생 공부하는 직업”이라는 신념을 몸소 증명했다. 지난해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쓴소리를 해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연기가 쉽지 않다. 평생을 했는데도 안 되고 모자라는 데가 있어서 늘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라며 “그동안에 연기를 아주 쉽게 생각했던 배우들 수백 명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최대한의 노력을 한 사람이 지금 남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70년을 배우로 산 고인은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자기 관리와 지치지 않는 열정,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열린 마인드를 가진 진정한 어른이었다. 고령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뛰어난 암기력, 해박한 지식과 소양에서 나오는 작품 분석력, 정확한 한국어 구사와 대사 전달력, 허스키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발성은 배우 이순재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장점이라고 평가받았다. 연기를 향한 고인의 사랑은 후배들에게도 아낌없이 돌아갔다.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최근까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연기 현장에서는 철저한 준비와 진중한 자세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였고 부족한 점은 거침없이 지적하는 스승이었다. 동시에 후배와 동료들을 위한 애정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대중문화계의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고인은 쉼없이 대중과 소통하며 호흡한 배우였다. 때로는 엄한 아버지로, 자애로운 스승으로, 친근한 이웃으로 대중을 위로하는 연기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KBS 역대 최고령 수상자 기록을 세운 그는 2007년 MBC 연예대상 이후 받는 첫 연기대상에 눈물을 흘렸다. 이순재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언젠가는 기회가 한 번 오겠지’ 하면서 늘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이 아름다운 상, 귀한 상을 받게 됐다”라고 대중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유족으로는 부인 최희정씨와 아들 종혁씨, 딸 정은씨가 있다. 발인은 27일 오전 6시 20분, 장지는 경기 이천 에덴낙원이다. 수원성추행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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