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루치료제구매 캄보디아 당국이 대리구매 방식으로 스캠 범죄를 저질러온 한국인들을 현지에서 무더기로 붙잡았다. 캄보디아에 코리아 전담밤이 설치된 이후 첫 성과다.
국가정보원은 캄보디아 당국과 공조해 지난 13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있는 범죄조직의 본거지에서 한국인 조직원 17명을 붙잡았다고 27일 밝혔다.
지난 10일 캄보디아에 코리아 전담반(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캄보디아·한국 공동 전담반)이 출범한 이후 스캠 조직을 적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리아 전담반은 앞서 한국인 대학생이 캄보디아에서 감금돼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생겼다.
스캠 조직은 정부기관을 사칭해 소상공인에게 사기를 쳤다. 소상공인에게 대규모 계약을 의뢰한 뒤 이를 미끼로 고가의 물품을 가짜 회사에서 구매하도록 하는 방식을 썼다. 이들은 자신의 범죄 수법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질 경우 군 부대를 사칭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이들이 국내 소상공인에게 지난 5월부터 현재까지 벌어들인 범죄수익은 35억원에 달한다. 이 조직에는 한국인 이외에 중국인·태국인 등도 포함돼 있다.
국정원은 지난 7월 시아누크빌 카지노 일대에서 한국인 조직원이 활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추적에 나섰다. 관련 정보는 ‘보이스피싱 정부합동수사단’에 공유됐고 이는 다시 캄보디아에 있는 코리안 전담밤을 통해 캄보디아 당국과 공유됐다. 국정원은 “코리아 전담반을 중심으로 캄보디아 경찰과 협력해 우리 국민을 노리는 초국가범죄조직을 끝까지 추적·발본색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김성록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 국회의장경호대장(경감)은 1년 전 일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지난해 12·3 불법계엄 사태 때 우원식 의장을 수행하며 함께 국회 담장을 넘었다. 우 의장이 담장을 넘는 역사적인 사진도 찍었다. 이후 여러 차례 인터뷰를 사양하던 김 경감은 ‘그날 당신이 보고 겪은 장면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법계엄을 선포하기 전까지는 지난해 12월3일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경감은 우 의장이 국회 김장행사,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만찬 등을 하는 내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우 의장은 밤 9시가 되어서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관저에 도착했다.
다른 직원들은 퇴근하고 김 경감은 경호대 당직근무자와 함께 관저에 남았다. 다음날에 우 의장이 지방을 가야 해 김 경감도 경호동에서 자기로 했다. 김 경감은 씻고 난 뒤 잠자리에 들기 전 텔레비전을 켰다. 마침 윤 전 대통령의 담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짜뉴스라고 생각했어요.” 김 경감이 부랴부랴 인터넷에도 접속해 보니 ‘계엄선포 속보’가 쏟아지고 있었다. ‘의장님께서 국회에 들어가시겠구나’ 생각한 김 경감은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운동하던 당직자가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하고 차를 몰아 국회로 향했다. 오후 10시38분쯤 관저를 출발해 약 15분 만에 국회 3문 앞에 도착했다. 평소였다면 아무 문제 없이 지날 수 있었던 문이 이미 막혀있었다. 옆의 4문도 경찰이 통제하기 시작했다.
김 경감은 ‘의장이 탄 차량이니 문을 열라’고 소리치는 대신 다른 통로를 찾았다. ‘우 의장이 계엄군의 1순위 체포 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이었지만 김 경감은 본능적으로 ‘의장의 위치가 노출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단 여기서 내리자.” 차가 들어설 출입문을 찾을 수 없자 우 의장이 김 경감에게 말했다. 김 경감은 3문과 4문 사이 어둑한 길가에 우 의장과 함께 내렸다. 국회 담장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발을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가로등이 나무에 가려 주변도 너무 어두웠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국회 식물원 앞에 난 철문이었다. 담장보다 조금 낮은 데다가 발 디딜 곳도 있었다.
김 경감이 먼저 철문을 넘어 주변을 살폈다. 우 의장도 이어 철문을 넘었다. 김 경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느끼며 휴대전화로 그 모습을 찍었다. 김 경감이 찍은 사진은 12·3 불법계엄을 상징하는 사진 중 하나로 역사에 남았다.
김 경감은 우 의장과 함께 국회 본청으로 향했다. 그러나 어두운 길을 따라가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다시 돌아가려던 순간 식물원 옆 어린이집 담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우선 몸을 피하고 보니 어둠 속에서 누군가 담장을 넘고 있었다.
담장을 넘은 사람은 군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었다. 김 경감과 우 의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본청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국회 본청에 도착해보니 내부는 고요했다. 의장실로 향하는 복도는 조명이 꺼져 어두웠다. 김 경감은 “매일 수십번 지나다니는 길인데 알 수 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고 그때를 돌아봤다.
국회의장 비서관과 국회 사무처 직원이 하나둘 국회로 모여들었다. 김 경감은 혹시라도 우 의장의 위치가 경찰이나 계엄군 등에게 파악될까 걱정돼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밖을 살펴보니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김 경감은 “그때 정말 죽을 각오를 했다”고 말했다. 마음이 약해질까 가족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국회의장을 찾는 군인들이 밀려들어 오면 어떻게 맞설지 생각했다. “ <서울의 봄>도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로 재미있게 봤었는데, 막상 실제 그 상황이 되니까 감정이 이입되더라고요.”
다행히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너무 늦지 않게 통과됐다. 김 경감은 ‘2차 계엄’을 걱정하며 우 의장 경호 임무를 이어갔다. 이후 집으로 퇴근할 때까지 나흘이 더 걸렸다.
김 경감은 인터뷰 말미에 “그날 밤 경호대상자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속 생각했다”며 “그때의 임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완수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