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박 제주 산지에 내려졌던 올가을 첫 대설주의보로 한라산에 10㎝ 안팎의 눈이 쌓였다.
19일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기준 한라산 적설량은 삼각봉 11.8㎝, 사제비 9.8㎝, 영실 8.7㎝, 남벽 8.5㎝, 성판악 2㎝ 등으로 나타났다.
첫 대설주의보는 이날 새벽 4시를 기해 해제됐다. 기상청은 20일 새벽까지 해발고도 1100m 이상의 높은 산지를 중심으로 시간당 0.5㎝ 안팎의 눈이 내려 쌓이는 곳이 있을 것으로 예보했다.
다만 쌓인 눈으로 인해 산간도로인 1100도로 영실∼1100고지∼어리목 구간은 차량 통행이 제한되고 있다. 대형 차량은 월동장구를 갖춰야 운행할 수 있고, 소형 차량은 통행이 통제됐다.
한라산 탐방로는 모두 정상 운영되고 있다. 한라산 국립공원관리소는 “대설주의보는 해제 돼 정상탐방이 가능하지만 탐방객은 아이젠을 착용해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20일 새벽까지 높은 산지에 눈이 쌓이는 곳이 있겠고, 일부 산간도로에서는 낮 동안 얼었던 눈이 얼어 결빙이 나타나는 곳도 있다”면서 “교통안전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지난 3년간 윤석열을 등에 업고 만악의 근원이 된 감사원 파괴자”라며 유병호 감사원 감사위원을 탄핵소추하자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일찍이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감사원과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강조하셨다”며 이같이 적었다. 박 의원은 감사원을 관할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다.
박 의원은 “오늘의 타락한 감사원, 대통령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감사원을 만든 장본인은 유병호 전 사무총장(이자) 현 감사위원”이라며 “그가 최재해 전 감사원장 퇴임식에서는 ‘세상은 요지경’ 노래를 틀더니 신임 사무총장에게 ‘엿’을 보냈다는 보도가 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자의 행동은 일부 보도처럼 기행을 넘어섰다”며 “헌법기관 감사원의 존립과 본연의 기능을 감사위원이 부정하는 중대한 헌법 위반을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 “헌법 제65조에 의거, 유 감사위원을 탄핵하자고 여권 의원들과 민주당 지도부에 건의한다”며 “만악의 근원 유병호가 감사원에서 탄핵, 제거될 때 감사원이 바로 선다”고 주장했다.
헌법 제65조에 따르면 감사원 감사위원도 국회의 탄핵소추 대상이다. 유 감사위원은 윤석열 정부에서 감사원 사무총장을 맡아 문재인 정부 인사와 정책에 대한 고강도 감사를 벌여 민주당의 반발을 샀다. 국회에 출석해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있다 고국으로 돌아와 가족의 뜨거운 환영을 받는 순간을 담은 흑백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스텀 전 미 공군 대령이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그의 딸 로리 스텀 키칭은 20일(현지시간) 스텀 대령이 ‘베테랑의 날’인 지난 11일 캘리포니아주 페어필드의 한 요양 시설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베테랑의 날은 재향군인의 헌신을 기려 존경을 표하는 날이다.
스텀 대령은 1973년 AP통신 사진기자 샐 비더가 캘리포니아 트래비스 공군기지에서 촬영한 사진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베트남전 포로였던 그가 가족과 재회하는 순간을 포착한 이 사진은 1년 뒤 ‘기쁨의 분출’(Burst of Joy)이라는 제목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사진 속 정복을 갖춰 입은 스텀 대령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자녀들의 표정에는 ‘아빠가 돌아왔다’는 환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진은 당시 미국 전역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며 베트남전에서의 미군 개입 종료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키칭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 순간의 감정이 지금도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며 “그때 느낀 기쁨과 안도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AP통신에 밝혔다.
사진이 찍히기 6년 전인 1967년, 당시 미 공군 조종사였던 스텀 대령은 10월27일 북베트남 상공에서 폭격 임무를 수행하다 그가 타고 있던 F-105 썬더치프가 격추됐다. 그는 낙하산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3발의 총상을 입었고 곧바로 전쟁 포로로 붙잡혔다.
이후 그는 하노이와 북베트남의 5개 포로수용소를 전전하며 1966일간에 이르는 억류 생활을 했다. 특히 미군 포로들을 고문해 기아 상태로 몰아넣어 악명 높았던 ‘하노이 힐튼’에 갇혔을 때는 고(故) 존 매케인 전 미국 상원의원과 나란히 옆 독방에 갇혀 있었다. 두 사람이 벽을 두드려 암호로 대화하던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텀 대령은 1973년 39세의 나이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다만 귀국의 감격이 담긴 이 사진이 스텀 대령에게 온전히 기쁜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다. 그가 베트남에서 돌아온 직후 당시 아내였던 로레타 애덤스는 이별을 통보했고 부부는 귀환 1년 만에 이혼했다. 두 사람 모두 6개월 이내 재혼했다. 스텀 대령은 20년 후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이 사진은 내게 악명과 명성을 동시에 가져다줬다”며 자택에 이 사진을 걸어놓지 않았다고 했다.
스텀 대령은 1977년 25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