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이혼전문변호사 미성년자 성착취범인 고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혼외 이성 관계를 상담한 사실이 드러난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기업 이사직과 대학 강단, 언론 필진에서 줄줄이 퇴출당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상·하원을 통과한 ‘엡스타인 문건’ 공개법안에 서명함에 따라 이 같은 후폭풍은 향후 미국 정치·경제·문화계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
서머스 전 장관은 19일(현지시간) 하버드대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그는 지난 17일 “모든 공적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처음 발표했을 때만 해도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경제학 수업만큼은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버드대가 엡스타인 문건에 이름이 등장한 이 대학 관계자 10여명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히자 결국 강의를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서머스 전 장관은 또 오픈AI의 이사회와 스페인 산탄데르은행 자문위원회, 미 싱크탱크 글로벌개발센터,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브루킹스연구소 해밀턴 프로젝트, 미국진보센터 등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도 “서머스 전 장관은 더 이상 우리 기관의 자문위원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가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던 뉴욕타임스·블룸버그 역시 서머스 전 장관을 퇴출했다. NYT는 “우리는 서머스와의 계약을 갱신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서머스 전 장관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을 지내고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했다. 이날 강의를 중단하기 전까지 하버드대 석좌교수로 재직했으나 미 하원 감독위원회가 지난 17일 공개한 문건에서 엡스타인과 부적절한 e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며 궁지에 몰렸다. 서머스 전 장관은 엡스타인이 성매매 혐의로 체포되기 전날인 2019년 7월5일까지 최소 7년간 그와 e메일을 주고받았으며, 자신의 ‘멘티’라고 묘사한 여성과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엡스타인에게 불륜 상담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공개된 엡스타인 문건에는 앨런 더쇼비츠 하버드 로스쿨 명예교수, 서머스 전 장관의 배우자인 엘리사 뉴 영문과 명예교수 등 다른 저명한 하버드대 교수들도 등장한다. 뉴 교수는 하버드대가 엡스타인에게 기부금을 받지 않겠다고 한 이후에도 여러 차례 그에게 수천달러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엡스타인 문건 공개법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 법안은 하원에서 찬성 427표대 반대 1표로 가결된 데 이어 상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법안에 동의해 별도 표결 없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송부됐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30일 이내에 엡스타인과 공모자인 길레인 맥스웰과 관련된 “모든 기밀 기록, 문서, 통신 및 수사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폴리티코는 “추가 공개될 문건을 통해 엡스타인의 범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거나 결정적 증거가 나올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서머스 전 장관의 경우처럼 도덕적으로 불쾌한 내용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엡스타인이 정·재계는 물론 학계와 문화계까지 아우르며 엄청난 인맥을 쌓았던 점을 감안할 때 엡스타인발 후폭풍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주목된다. 다만 법무부가 ‘현재 진행 중인 수사에 큰 영향을 미칠 정보는 공개를 보류할 수 있다’는 법률 조항을 핑계 삼아 핵심 자료의 상당 부분을 비공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 취소 소송에서 전부 승소하자 과거 취소 소송 제기를 반대했던 더불어민주당은 19일 환영하면서도 불편한 분위기다. 판정 취소 소송 신청을 결정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정부·여당에 “숟가락 얹지 말라”며 역공에 나섰고, 민주당은 한 전 대표 언급을 자제하며 “이재명 정부의 성과”라고 선을 그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SBS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은 제가 항소한다고 할 때 ‘이자 늘어나면 네가 물어주냐’고 집요하게 공격했던 사람들”이라며 “지금 와서 자화자찬? 솔직히 좀 황당했다”고 비판했다. 전날 김민석 국무총리가 승소 발표에서 “새 정부 출범 이후 쾌거”라고 주장하자 한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 정권은 숟가락 얹으려 하지 말고 소송을 반대한 것에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 대표는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낼 때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약 4000억원 배상을 판정하자 항소(판정 취소 신청)를 주도했다. ISDS를 비롯한 국제소송 대응을 위해 법무부 국제법무국도 신설했다. 항소에 대해 송기호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은 “배상 책임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제로(0)”라고, 민주당 의원들은 “승산이 낮은 희망고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성과로 치켜세웠다.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정부의 정당한 조치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이익과 금융 주권을 지켜낸 소중한 성과”라며 “10여년이 넘는 긴 분쟁의 시간 끝에 이재명 정부에서 최종 승소가 확정된 것”이라고 했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대구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성과와 더불어 더욱 빛나게 됐다”고,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재명 정부의 승소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가 과도한 업적 챙기기를 한다는 견제도 이어졌다. 박지원 평당원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내 덕을 뽐내고 남 탓부터 하는 정치 행태는 감동을 반감시키고 빈축만 살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YTN 라디오에 출연해 “그냥 우리 정부가 잘했다고 하면 될 것을 꼭 이렇게 할 필요 있냐”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5선 중진인 박지원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전 정부도 잘했고, 한동훈도 잘했고, 현 정부도 잘했다”고 칭찬했다. 박 의원은 한 전 대표에 대해 “잘한 건 잘했다고 얘기해 줘야지”라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판단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론스타 사건 항소를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와 연관시켜 연일 정부·여당 비판을 이어갔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날 “김민석 총리는 론스타 승소 4000억원 대신 대장동 7800억원 환수로 진정한 업적을 남기라”고,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날 “민주당이 하라는 대로 했으면 오늘 대한민국은 4000억원을 론스타에 지급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