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소년재판변호사 12·3 불법계엄이 선포됐을 때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 다시 증인으로 나왔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당일 홍 전 차장과의 통화가 ‘격려 차원’이었을 뿐이라며 직접 신문에 나섰고 홍 전 차장은 “그럼 누구를 싹 다 잡아들이라고 하신거냐” “이재명, 한동훈이 간첩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20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열고 홍 전 차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홍 전 차장을 상대로 특검 측의 신문내용을 반박하는 반대신문에 나섰다.
홍 전 차장은 계엄 당일인 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53분쯤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정원에 대공 수사권을 줄 테니까 방첩사(국군방첩사령부)를 지원해. 인력이면 인력, 자금이면 자금, 무조건 도와”라는 말을 들었고, 이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통화로 불러준 이재명·우원식·한동훈 등 16명 ‘체포조 명단’을 적어뒀다는 기존 증언을 유지했다.
홍 전 차장의 증언이 윤 전 대통령 파면에 결정적 역할을 한 만큼 이날 법정에서는 변호인단과 홍 전 차장의 ‘기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변호인도 증인도 긴장한 것 같다” “서로 너무 민감하게 말씀하지 마시라”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홍 전 차장이 계엄 선포 전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던 점을 지적하며 기억이 불분명한 게 아니냐고 따지거나, 홍 전 차장이 계엄 관련 임무를 부여받을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서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가 계엄과 무관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들은 홍 전 차장에게 가장 처음 메모했을 때 쓴 종이가 무슨 색이었는지 묻거나, 계엄 당일 누구와 어떤 순서로 통화했는지 분 단위로 캐물으며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 못하는 거냐”고 압박하기도 했다.
홍 전 차장은 “A4 용지보다는 작고, 줄이 쳐져 있지 않은 하얀색 메모지였다”면서 “초현실적 상황이라 정확히 기억을 못하겠다는 분들(다른 증인들) 많던데요. 이 정도면 잘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했다.
윤 전 대통령도 직접 신문에 나서 ‘내가 방첩사 역량을 강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는 평소에도 듣지 않았느냐’며 체포 지시를 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내가 증인이랑 얘기할 때 ‘여인형한테 전화해봐, 뭐 좀 얘기 할 거야’ 이런 말은 없었죠?”라며 여 전 사령관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홍 전 차장은 “여인형이 대통령으로부터 아무 지시도 받지 않고, 단독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군사 쿠데타 내란을 혼자서 일으켰단 말이냐”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을 향해 “그럼 누구를 잡아들이라고 하신거냐”며 “(여인형이 불러준) 이재명, 한동훈, 우원식이 반국가세력이나 간첩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윤 전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재판 말미에 다시 발언 기회를 얻고 “대통령은 검찰총장까지 지낸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걸 시키고, 여 전 사령관은 지시를 받아 이런 걸 부탁한다는 게 연결이 안 되지 않느냐”고 재차 물었다. 홍 전 차장은 “대통령이 지시도 하지 않았는데, 일개 군 사령관이 이재명 야당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여당 대표를 체포·구금하고 신문하겠다고 하겠느냐”며 “부하한테 책임 전가하는 거 아니죠?”라고 쏘아붙였다.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이 2022년 위원장에 임명되기 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수석비서관과 여러 차례 만나며 국가교육위 관련 보고를 받은 정황을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포착했다. 이 전 위원장은 비슷한 시기 고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도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이 전 위원장은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의 아내인 정모씨와 함께 김건희 여사를 수차례 만난 사실이 알려졌는데, 대통령실과 직접 소통한 정황도 구체적으로 나왔다.
17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특검은 2022년 6월 말에서 7월 초 사이 이 전 위원장이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A씨와 여러 차례 만나 A씨로부터 국가교육위 조직, 구조, 예산, 인력 운용 등 설립안에 대해 보고 받은 사실을 파악했다. 주로 A씨가 먼저 연락해 자리를 마련하면 이 전 위원장이 설명을 듣고 의견을 개진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특검은 이 전 위원장의 자택과 국가교육위 사무실 압수수색에서 관련 내부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교육위는 2022년 9월27일에 설립됐는데 이 전 위원장은 같은날 초대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전 위원장과 대통령실이 직접 소통하기 직전인 2022년 6월10일쯤 이 전 위원장은 장제원 의원으로부터 ‘국교위원장 후보에 올라있다’는 취지의 연락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두 사람은 7월까지 수차례 연락을 이어가며 국가교육위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위원장은 같은 해 4월과 6월 정씨와 함께 김 여사를 만난 자리에서 위원장 관련 문서와 금거북이 등을 전달하고 위원장 자리를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 6일과 13일 특검 조사에서 “대통령실에서 의견을 물어와 답한 것”이며 “(대통령실 측으로부터) 연락받았을 땐 자신이 위원장으로 임명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금거북이는 김 여사가 100만원대의 고급 화장품들을 여러 차례 선물해준 것에 대한 답례이자 윤 전 대통령 당선용 선물로 청탁의 의도가 전혀 없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특검은 이 전 위원장이 2022년 6월3일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가교육위원장에 적합하다는 내용이 담긴 ‘적격성 검토서’를 직접 전달하고 운전기사를 통해 코바나콘텐츠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복제품을 보낸 정황도 파악했다. 특검은 이를 토대로 이 전 위원장이 김 여사에게 금거북이와 ‘세한도’ 복제품 등을 전달한 후 위원장으로 내정됐고 이후 대통령실과 소통하며 국가교육위 설립 작업에 여러 권한을 행사했다고 의심한다. 또 같은 해 5월까지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았던 장 의원을 통해 김 여사가 이 전 위원장의 임명을 도운 것이 아닌지도 살펴보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세한도’ 복제품에 대해 한지살리기재단의 이사장으로서 한지 홍보를 위해 윤 전 대통령 측에 선물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위원장은 특검 조사 이후에도 참고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오는 24일 김 여사에 대한 특검 조사 후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특검 관계자는 지난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금거북이 등) 수사된 제반 귀금속 등 관련 수수 의혹에 대해 김 여사를 조사할 예정이고 조사 이후에 공여자들에 대한 처분을 일괄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