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소년사건변호사 요즘 일본이 곰 때문에 떠들썩하다.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일본 전 지역에서 곰의 습격을 받아 숨지거나 다친 사람이 20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야생 곰이 도심과 주거지, 쇼핑몰까지 출몰하면서 일부 지역에선 자위대와 경찰 기동대까지 출동해 곰 퇴치에 나섰다.
곰이 앙심을 품고 인간을 공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들히말라야 지역에서 ‘식인동물’로 악명 높은 표범, 농작지에 들이닥치는 코끼리, 사람 손에 들린 물건을 약탈하는 원숭이 또한 마찬가지다. 동물들은 본능을 따를 뿐인데 인간 사회의 법과 규범을 넘어섰다는 이유로 골칫덩이로 낙인찍힌다. 인간에게 손해를 끼치는 동물들은 정말 ‘자연의 범법자’일까? 저자는 미국 콜로라도 에스펀의 뒷골목부터 인도령 히말라야산맥의 어느 마을까지, 동식물과 인간이 충돌하는 현장을 추적하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새롭게 탐구한다.
인간과 야생동물의 갈등을 수습하는 전문가, 나무 벌목 및 발파공, 포식 동물의 공격을 조사하는 법의학 수사관도 만난다. 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진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인간이다. 우리는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동이 인간과 자연 간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동물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욕심에 잘못된 행위를 반복한다. 주거지나 도심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쓰레기는 야생 동물들에게 편리한 먹잇감이 되며, 쓰러질 위험이 있다고 베어버린 오래된 나무는 실은 동물들의 보금자리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는 충돌 해결의 열쇠를 인간이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인류가 자연의 특성을 이해하는 만큼 갈등이 봉합된다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과 잘 지내려면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있다 고국으로 돌아와 가족의 뜨거운 환영을 받는 순간을 담은 흑백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스텀 전 미 공군 대령이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그의 딸 로리 스텀 키칭은 20일(현지시간) 스텀 대령이 ‘베테랑의 날’인 지난 11일 캘리포니아주 페어필드의 한 요양 시설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베테랑의 날은 재향군인의 헌신을 기려 존경을 표하는 날이다.
스텀 대령은 1973년 AP통신 사진기자 샐 비더가 캘리포니아 트래비스 공군기지에서 촬영한 사진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베트남전 포로였던 그가 가족과 재회하는 순간을 포착한 이 사진은 1년 뒤 ‘기쁨의 분출’(Burst of Joy)이라는 제목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사진 속 정복을 갖춰 입은 스텀 대령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자녀들의 표정에는 ‘아빠가 돌아왔다’는 환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진은 당시 미국 전역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며 베트남전에서의 미군 개입 종료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키칭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 순간의 감정이 지금도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며 “그때 느낀 기쁨과 안도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AP통신에 밝혔다.
사진이 찍히기 6년 전인 1967년, 당시 미 공군 조종사였던 스텀 대령은 10월27일 북베트남 상공에서 폭격 임무를 수행하다 그가 타고 있던 F-105 썬더치프가 격추됐다. 그는 낙하산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3발의 총상을 입었고 곧바로 전쟁 포로로 붙잡혔다.
이후 그는 하노이와 북베트남의 5개 포로수용소를 전전하며 1966일간에 이르는 억류 생활을 했다. 특히 미군 포로들을 고문해 기아 상태로 몰아넣어 악명 높았던 ‘하노이 힐튼’에 갇혔을 때는 고(故) 존 매케인 전 미국 상원의원과 나란히 옆 독방에 갇혀 있었다. 두 사람이 벽을 두드려 암호로 대화하던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텀 대령은 1973년 39세의 나이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다만 귀국의 감격이 담긴 이 사진이 스텀 대령에게 온전히 기쁜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다. 그가 베트남에서 돌아온 직후 당시 아내였던 로레타 애덤스는 이별을 통보했고 부부는 귀환 1년 만에 이혼했다. 두 사람 모두 6개월 이내 재혼했다. 스텀 대령은 20년 후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이 사진은 내게 악명과 명성을 동시에 가져다줬다”며 자택에 이 사진을 걸어놓지 않았다고 했다.
스텀 대령은 1977년 25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