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검사출신변호사 얼마 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K엑스포가 열렸는데, 내게 현장에서 한식 쿠킹쇼를 진행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 왔다. 행사장에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빔밥과 김밥, 겉절이나 화채 같은 한국의 일상 속 음식을 만들고 그 과정에 대한 설명과 시식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비록 국내 매체에서 유럽의 레시피를 주로 소개하지만, 나라고 한식에 대한 애착이 없을 리 없기에 큰 고민 없이 일을 맡았다.
엑스포에서는 K푸드만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K팝은 물론이고 한국의 드라마·영화·게임·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와 산업을 유럽에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에 있는 전시관에서 이뤄진 행사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는데, 아이돌 가수가 몇팀 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줄까지 서가며 한국의 다양한 정보와 문화를 유심히 살피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며 한국의 이미지가 더는 내가 유학을 하던 시절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00년대 초, 유럽 지역에서 10년 가까이 지내며 적지 않은 추억과 경험을 지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2004년에는 어학연수를 위해 마드리드의 한 대학에 다니며 생활한 적도 있었기에 한국 행사장의 열띤 분위기는 더욱더 낯설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던 때였지만 외로움 역시 존재했다. 그것은 관계보다는 정체성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동북아시아 국가는 한국보다는 중국이나 일본이었고, 오히려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인지도가 훨씬 높았다. 왕왕 한국을 아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분단국가로서 남과 북의 ‘휴전’ 상황을 궁금해하는 경우가 고작이었다. 당시 나는 이방인으로서 그들의 문화를 배워가고 있었지만, 내가 가진 문화의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랬던 시절이 무색하게 어느덧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려 줄을 서고 있었다.
문화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다. 한국의 가요부터 영화·드라마와 웹툰까지 전 세계에서 유례없던 인기를 누리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그 시장 속 아이돌과 배우, 작가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까지 덩달아 관심을 얻어낸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실제 한국행으로까지 이어지는 듯, 내가 장사를 하는 서울 종로의 서촌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의 움직임을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스마트폰 너머 바라보았던 장소를 직접 다니며 거리의 공기를 느끼고, 현지의 음식을 맛보며 경험한 것을 추억과 이야기로 남기며 한국 문화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공유한다. 그렇게 외국 요리방송에서 낯선 재료에 불과했던 ‘한국의 발효된 빨간 고추 반죽’은 고추장으로 돌아왔고, OTT를 통해 방영된 한국 배경의 어느 애니메이션 덕에 ‘스시’나 ‘마키’ 같은 일본 단어를 빌려 설명하던 김밥은 드디어 ‘김밥’이 되었다.
전국 교육청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025년 임금교섭이 결렬되면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세종지부가 총파업 투쟁에 돌입했다.
20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세종지부에 따르면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되는 파업대회에 세종 지역 172개 학교 가운데 유·초·중·고·특수학교 101개의 비정규직 노동자 조합원 40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호봉제 적용 등 근속에 따른 정당한 대우 보장과 방중 임금미지급 문제 해결·단시간 직종 수당 삭감 철회, 교육 공무직 법제화·학교 급식법 개정 등을 요구하며 총궐기 대회를 진행했다.
강현옥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세종지부장은 “노동자들이 멈추면 학교가 멈춘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거리로 나섰다”며 “급식·돌봄·행정 등 학교 운영의 핵심 업무를 맡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과 처우 개선을 약속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고강도·고위험 노동에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겪는 만성적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들에게 안정적인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는 한 파업 참여자는 “폐암 사망이 잇따르는 상황에서도 교육청이 사안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음을 교섭 과정에서 확인했다”며 “천막농성까지 벌였지만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고 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이날 교육당국이 더 이상 교섭을 회피하지 말고 전향적인 태도로 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번 투쟁은 모든 아이들에게 차별 없는 안정적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애도하는 음악
저자는 쇼스타코비치, 쇤베르크, 슈트라우스, 브리튼의 음악을 통해 ‘예술은 인간의 비극을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음악은 기억의 마지막 형식이며,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다.” 제러미 아이클러 지음. 장호연 옮김. 뮤진트리. 2만9000원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전직 의원이자 정치평론가인 저자는 12·3 불법계엄부터 정권교체까지의 과정을 되짚으며 우리 정치의 현주소와 위기의 실체를 살핀다. 이어 정치적 양극화와 팬덤 정치의 역사와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이를 극복할 ‘좋은 정치’를 모색한다. 이철희 지음. 한겨레출판. 1만8000원
하늘 읽기
대기과학의 탄생, 대기 관련 물리법칙, 기후위기의 현실 등을 쉽게 풀어 쓴 책. 대류권, 성층권, 제트기류, 남방진동, 극소용돌이 같은 기본 개념부터 상태 방정식과 원시 방정식 등 물리학 개념까지 설명한다. 사이먼 클라크 지음. 이주원 옮김. 동아시아. 1만8000원
더 스튜던트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에서 출발해 중세 도제 교육, 근대의 제도화된 학교 교육 변화, 20세기와 21세기 대학 캠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발전한 학습 모델을 살피면서 배움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한다. 마이클 S 로스 지음. 윤종은 옮김. 소소의책. 2만3000원
입양으로 아기를 잃은 50만명의 여성들
미혼 임신의 낙인과 입양 중심 아동 복지에서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아이를 양육하고 생모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환하던 시기 영국의 출산 정책을 다룬 책이다. 데이비드 하우 외 2명 지음. 권희정·이태인·전세희·조소연 옮김. 도서출판 안토니아스.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