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검사출신변호사 박지원만 “한동훈도 잘했어”···민주당, ‘론스타 분쟁 승소’에 떨떠름한 환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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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218.♡.77.98) | 작성일 | 25-11-20 14: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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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검사출신변호사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 취소 소송에서 전부 승소하자 과거 취소 소송 제기를 반대했던 더불어민주당은 19일 환영하면서도 불편한 분위기다. 판정 취소 소송 신청을 결정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정부·여당에 “숟가락 얹지 말라”며 역공에 나섰고, 민주당은 한 전 대표 언급을 자제하며 “이재명 정부의 성과”라고 선을 그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SBS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은 제가 항소한다고 할 때 ‘이자 늘어나면 네가 물어주냐’고 집요하게 공격했던 사람들”이라며 “지금 와서 자화자찬? 솔직히 좀 황당했다”고 비판했다. 전날 김민석 국무총리가 승소 발표에서 “새 정부 출범 이후 쾌거”라고 주장하자 한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 정권은 숟가락 얹으려 하지 말고 소송을 반대한 것에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 대표는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낼 때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약 4000억원 배상을 판정하자 항소(판정 취소 신청)를 주도했다. ISDS를 비롯한 국제소송 대응을 위해 법무부 국제법무국도 신설했다. 항소에 대해 송기호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은 “배상 책임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제로(0)”라고, 민주당 의원들은 “승산이 낮은 희망고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성과로 치켜세웠다.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정부의 정당한 조치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이익과 금융 주권을 지켜낸 소중한 성과”라며 “10여년이 넘는 긴 분쟁의 시간 끝에 이재명 정부에서 최종 승소가 확정된 것”이라고 했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대구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성과와 더불어 더욱 빛나게 됐다”고,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재명 정부의 승소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가 과도한 업적 챙기기를 한다는 견제도 이어졌다. 박지원 평당원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내 덕을 뽐내고 남 탓부터 하는 정치 행태는 감동을 반감시키고 빈축만 살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YTN 라디오에 출연해 “그냥 우리 정부가 잘했다고 하면 될 것을 꼭 이렇게 할 필요 있냐”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5선 중진인 박지원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전 정부도 잘했고, 한동훈도 잘했고, 현 정부도 잘했다”고 칭찬했다. 박 의원은 한 전 대표에 대해 “잘한 건 잘했다고 얘기해 줘야지”라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판단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론스타 사건 항소를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와 연관시켜 연일 정부·여당 비판을 이어갔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날 “김민석 총리는 론스타 승소 4000억원 대신 대장동 7800억원 환수로 진정한 업적을 남기라”고,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날 “민주당이 하라는 대로 했으면 오늘 대한민국은 4000억원을 론스타에 지급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태운 전세기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잇따라 도착하면서 이들을 전세기에 태워 보낸 주체와 그 의도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 남아공은 이번 사태에 대해 팔레스타인인을 가자지구에서 영구 추방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O R 탐보 국제공항에 팔레스타인인 153명을 태운 전세기가 도착했다. 이들은 남아공 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지 않았고 도착할 때까지 자신들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이들은 12시간 가까이 비행기에 대기한 이후에 남아공의 입국 허가를 받고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로널드 라몰라 남아공 외교장관은 17일(현지시간) “이 비행기의 도착을 둘러싼 정황을 의심하고 있다”며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청소하려는 명확한 의도가 감지된다”고 밝혔다. 라몰라 장관은 “우리는 더 이상 비행기가 오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세계 각지로 이주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된 조직된 작전”이라고 말했다. 남아공에 팔레스타인인을 단체로 태운 의문의 전세기가 도착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8일에도 팔레스타인인 176명을 태운 비행기가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지난 14일 “그들이 추방된 것 같다”며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 90일간 체류를 허가했다. 이들 중 23명은 제3국으로 다시 출국했고 나머지 130명은 자선단체 ‘기프트 오브 더 기버스’ 주선으로 숙소를 제공받아 남아공에 머물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를 경험한 남아공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비판해왔으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스라엘을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하기도 했다. 외신에 따르면 ‘알마지드 유럽’이라는 단체가 이들의 항공편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이 비행기에 탑승한 팔레스타인인 2명을 인터뷰했는데, 이들은 가자지구를 떠나게 해주겠다는 온라인 광고를 보고 연락을 취한 뒤 1인당 2000달러(약 293만원)을 지불했다. 가자지구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 이스라엘 공항에서 출발한 이들은 케냐 나이로비를 경유한 후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남아공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관은 “가자지구 주민의 비극적인 인도적 상황을 악용한 미등록 사기 단체가 이들의 이주를 주선했다”고 주장했다. 가자지구 의사인 아메드 셰하다는 지난달 도착한 팔레스타인인 176명 중 한 명이다. 그는 1인당 1600달러(약 936만원)를 가상통화로 선불로 낸 뒤 목적지를 알지도 못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가자지구의 상황이 너무 끔찍해 위험을 감수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토메르 야나르 린드라는 이스라엘·에스토니아 이중국적자가 알마즈드 유럽을 이끌고 있으며, 린드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강제 이송을 담당하는 이스라엘군 부대와 협력해 여러 건의 난민 수송을 지원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는 알마즈드 유럽의 홈페이지를 보면 사무실 소재지가 동예루살렘인 것으로 표시돼 있지만, 그곳에서 사무실을 찾을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또 홈페이지에 올라온 홍보 사례가 사실과 달리 조작된 것이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알마즈드 유럽 홈페이지에 게시된 전화 등으로 연락해봤지만 모두 응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최종 마무리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과 관련해 “안타깝게도 국제 질서 변경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우리가 수동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협상이었다”며 “좋은 상황을 만들기보단 나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우리가 뭔가를 새롭게 획득하기 위한, 그야말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협상이었으면 어떤 결과가 나더라도 즐거운 일이었을 텐데”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회의에 참석한 7대 그룹 총수들을 향해선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 지금까지 정부와 기업이 이렇게 합이 잘 맞아서 공동 대응을 한 사례가 없었던 것 같다”며 “전적으로 우리 기업인 여러분들 정말 헌신과 노력 덕분이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을 가리키며 “터프 사나이, 정말 애 많이 쓰셨다”며 “안보실장, 정책실장, 우리 참모들도, 각료들도 협상단도, 특히 기업인 여러분 애쓰셨다. 고맙다”며 웃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에서도 “버티기도 참 힘든 상황에서 뒤에서 자꾸 발목을 잡거나 ‘왜 이거를 빨리 안 들어주느냐’라고 하는 것은 참 견디기 어려웠다”며 협상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대외적 관계에서는 국내에서 정치적 입장이 좀 다르더라도 국익과 국민을 위해서 합리적 목소리를 내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위성락 안보실장 등 이른바 ‘대통령실 3실장’은 같은 날 밤 이 대통령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영상을 통해 “아, 올해가 을사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험난했던 협상 후일담을 공개했다. 관세협상을 담당한 김 실장은 지난 8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측이 보내온 협상안에 대해 “기절초풍이라고 해야 할지, 진짜 말도 안 되는 안이었다”며 일본과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도 을사년이었다는 점이 상기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적어도 감내가 가능한 안을 위해 끝까지 사투했고 강경하게 마지막까지 대치했다”며 “더는 양보가 안 된다’는 우리의 선이 있었다”고 전했다. 위 실장은 “주요 플레이어들이 마지막 순간에 입장을 재고하고 상대를 배려해 서로가 물러섰다”며 협상이 극적 타결된 배경을 설명했다. 위 실장은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며 “첫째로 대통령이 대처를 잘했고, 참모들도 지혜를 모아 대처 방안을 잘 궁리했다”고 말했다. 강 실장은 협상 타결 직전 상황에 대해 “긴장감이 극대화돼 있었고 이견은 좁혀지지 않은 상태였다”며 “끝나고 긴장이 탁 풀렸다”고 돌아봤다. 강 실장은 그간 협상 준비 상황과 관련해 “(한·미 간) 23차례나 장관급 회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안보실장은 주로 진척이 있는 것에 대해 (내부) 설득을 하는 편이었고, 제가 제일 완강한 입장에 서 있었다”며 “더 완강한 건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의정부법률사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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