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폰테크 그 여자 병인 줄 알았다, 그 남자 나이 탓 했었다 | |||||
|---|---|---|---|---|---|
| 작성자 | (61.♡.223.142) | 작성일 | 25-11-15 20:55 | ||
|
폰테크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 갱년기의 사전적 정의다. 대개 40대부터 서서히 시작하는 갱년기는 50세를 전후해 본격적으로 체내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나타나면서 여러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증상까지 불러온다. 남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성 기능과 관련된 변화가 생기며,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몸과 마음 전반에 걸쳐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심하면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건강하게 관리하면 특별한 조치 없이 적응하며 지나갈 수 있는 이 시기를 잘 이해할수록 노년기로의 이행이 보다 수월해진다.
일반적으로 갱년기 증상은 여성이 더 많이 체감하는 경우가 많다. 수십년간 유지되던 여성호르몬 분비가 급격히 줄면서 안면홍조, 불면, 우울감 등 신체적·정신적 변화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난소의 노화로, 월경이 점차 뜸해지면서 주기가 불규칙해지는 과정을 지나 배란과 여성호르몬 분비가 중단되면 결국 생식 활동이 멈추고 월경이 완전히 그치게 되는 것이다. 갱년기에 겪기 쉬운 또 다른 흔한 증상으로는 혈관운동에 변화가 나타나 생기는 안면홍조와 수족냉증, 가슴이 두근거리는 심계항진을 들 수 있다. 신경과 근육에도 영향이 미치므로 어깨 결림과 두통·요통·관절통 등을 느끼기도 쉽다. 정신적으로는 수면장애, 불면, 불안, 무기력 같은 증상이 생기며, 감정 기복이 심해지기도 한다. 이창훈 강동경희대병원 한방부인과 교수는 “갱년기가 중·후반으로 넘어가면 피부 건조와 손발 저림,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이상감각도 흔해지고, 질건조증과 질염, 방광염, 배뇨통 등 비뇨생식계의 위축 증상도 뚜렷해진다”며 “이와 함께 호르몬 저하로 인한 골다공증 위험 증가 역시 갱년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한의학에서는 갱년기 증상을 치료할 때 체질과 증상에 따라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맞춤형 치료법에 초점을 맞춘다. 한의학에선 갱년기를 오장육부 전반의 정기(精氣)가 일정 수준 이하로 쇠퇴한 시기로 보기 때문에 생식 기능뿐 아니라 몸 곳곳의 장기와 부위가 저마다 다르게 약해지는 개인별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한방에서의 갱년기 진단 역시 검사를 거쳐 진행하는데, 대표적인 검사 종류로는 경락기능검사, 자율신경검사(HRV), 설진(혀의 형태 및 설태의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관찰하는 진단법) 등이 있으며 검사 결과와 환자의 증상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치료를 진행한다. 호르몬 변화로 신체기능 저하여성 75%는 치료 없이도 호전남성, ‘호르몬 보충’ 치료 효과 건강한 노년 향한 과도기 인식꾸준한 운동·균형 잡힌 식사를 한의학적 여성 갱년기 치료는 여성호르몬을 직접 보충하기보다는 오장육부의 기능 불균형을 조절해 불편한 증상을 완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갱년기의 근본 원인을 노화에 따른 신허(腎虛)로 보는데, 단순히 신장 기능의 저하라고 해석하기보다는 기력 저하와 질환의 만성화로 풀이할 수 있다. 여기에 혈액순환이 잘 안되고(血瘀·혈어), 가슴이 답답하며(肝鬱·간울), 얼굴이 화끈거리는(心肝火旺·심간화왕) 등의 증상도 장부 기능의 불균형으로 봐서 함께 치료한다. 치료에는 대체로 한약과 침을 함께 활용해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표적인 한약 처방으로는 계피탕, 사오계피탕, 청심련자음, 가미소요산, 계피문단탕 등이 사용된다. 다만 갱년기 증상이 환자의 환경과 성격, 오장육부 쇠퇴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더라도 여성 중 75%는 별다른 치료 없이 호전된다. 그러므로 변화에 자연스레 적응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지내다 때때로 심한 증상이 있을 때 이를 완화하는 치료를 병행하면 일상의 불편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창훈 교수는 “여성의 갱년기는 노화에 적응하는 시간으로, 걱정과 달리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도 있다”며 “체질에 맞는 치료법으로 증상을 완화하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 슬기로운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남성의 갱년기 역시 주된 원인은 호르몬 변화에 있다. 하지만 여성의 갱년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증상이 더 서서히 진행돼 자연스러운 노화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남성 갱년기 증상으로는 성욕감퇴 및 발기부전과 같은 성 기능 이상, 우울증과 분노, 무기력감 등 정신적 증상, 근력과 근육량 감소 및 내장 지방 증가 등이 있다. 이외에도 만성피로, 불면증 및 식은땀 등의 증상이 동반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복합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남성의 갱년기 증상은 한편으로 당뇨·고지혈증·비만 등 대사증후군과 심혈관계 질환, 수면 부족 등이 얽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그 배경에 있는 과음과 흡연, 스트레스 등의 요인은 남성호르몬 생성을 저하하는 작용도 하기 때문에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박민구 고려대 안암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남성 갱년기는 방치하면 삶의 질 저하뿐 아니라 건강수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증상을 인지하는 즉시 정확한 진단을 통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성호르몬 수치가 정상 이하로 떨어지는 속도가 비교적 빠르고 감소한 호르몬의 영향으로 신체·정신적 변화가 심할 경우 갱년기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후기발현 성선기능저하증’이라고도 하는 갱년기 남성호르몬 감소 증상은 이 호르몬을 보충하면 쉽게 완화된다. 근육 주사 및 비강 내 겔 제제 도포 등을 통해 체내로 테스토스테론을 보충하는 방식이다. 단, 일부 환자에게는 혈색소 및 전립선 수치 상승 등이 나타날 수 있어 치료 전 반드시 전립선 상태를 파악해야 하며 치료 중에도 주기적인 검사를 통해 관련 수치를 확인해야 한다. 남성호르몬 보충요법은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경우, 심혈관계 질환으로 급성기 치료를 받은 지 6개월 이내일 때에는 시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남녀 공히 갱년기를 건강하게 지나갈 수 있게 돕는 가장 좋은 생활습관으로는 꾸준한 운동이 꼽힌다. 노년기에 더욱 줄어드는 근육을 미리 키워둘 수 있게 근력운동을 하면서 심폐 기능을 향상시키는 유산소운동까지 함께 하는 것이 좋다. 박민구 교수는 “건강한 노년을 위해선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사, 스트레스 조절과 함께 전문의를 통해 남성 갱년기에 대한 주기적인 평가와 관리를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대통령실 3실장이 한·미 관세·안보 협상의 후일담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강훈식 비서실장과 김용범 정책실장, 위성락 안보실장은 지난 14일 밤 이재명 대통령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영상에서 한·미 협상이 타결됐던 지난달 29일 경주 한·미 정상회담 전후 상황을 소개했다. ‘케미폭발 대통령실 3실장’이란 제목의 영상은 양국의 관세·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발표된 뒤에 공개됐다. 양국이 정상회담 이후에도 세부 협의를 이어왔던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관세 협상을 담당했던 김 실장은 지난 8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 측이 보내온 협상안에 대해 “기절초풍이라고 해야 할지, 진짜 말도 안 되는 안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 올해가 을사년(乙巳年)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일본과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도 을사년이었다는 점이 상기될 정도로, 시작부터 불평등 정도가 심했던 고난도 협상이었다는 취지로 보인다. 김 실장은 “완전 최악이었다”며 “미국 측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오는데 우리와 입장이 안 좁혀지니 엄청 화를 냈고,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도 전달됐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적어도 감내가 가능한 안을 위해 끝까지 사투했고 강경하게 마지막까지 대치했다”며 “‘더는 양보가 안 된다’는 우리의 선이 있었다”고 전했다. 위 실장은 “주요 플레이어들이 마지막 순간에 입장을 재고하고 상대를 배려해 서로가 물러섰다”며 협상이 극적 타결된 배경을 설명했다. 위 실장은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며 “첫째로 대통령이 대처를 잘했고, 참모들도 지혜를 모아 대처 방안을 잘 궁리했다”고 평가했다. 강 실장은 협상 타결 직전 상황에 대해 “긴장감이 극대화돼있었고 이견은 좁혀지지 않은 상태였다”며 “끝나고 긴장이 탁 풀렸다”고 돌아봤다. 강 실장은 그간 협상 준비 상황과 관련해 “(한·미 간) 23차례나 장관급 회담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정책·안보실장은 주로 진척이 있는 것에 대해 (내부) 설득을 하는 편이었고, 제가 제일 완강한 입장에 서 있었다”며 “더 완강한 건 대통령이었다”고 전했다. ‘임정요인의 묘’가 있는 곳임으로 알리는 안내판은 낡고 녹슬었다. 옆에는 시들어 말라가는 나무가 초라히 서 있었다. 지난 5일 찾은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임정요인 묘역으로 가는 계단에는 밟혀 터진 은행열매가 발디딜 틈 없이 널려 있었다. 계단은 악취로 가득했다. 묘역에는 수십 년간 방치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맨 왼쪽에 자리잡은 임시정부 군무부장 조성환 선생의 묘비석은 어른 손바닥보다 큰 얼룩이 글씨 위로 번져 있었다. 이날 만난 주민 박모씨(78·공덕동)는 “얼룩이 저 상태로 있었던 건 십수 년도 더 된 일”이라며 “여기서 큰 행사도 많이 치르는데 왜 아무도 저걸 신경쓰지 않나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정요인 묘’에는 조성환 선생 외에도 김구 선생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한 임정주석 이동녕 선생과 비서장 차리석 선생 등 세 분이 안장돼 있다. 이들은 한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고, 임시정부의 수립과 존속을 위해 노력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남은 건 초라하게 방치된 무덤밖에 없다. 임정요인 묘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삼의사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이봉창·백정기·윤봉길 의사의 유해가 이곳에 묻혀 있다. 이들은 해방된 조국땅을 밟지 못하고 일본에서 끝내 숨졌고, 1946년에야 유해로 돌아와 효창공원에 묻혔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끝내 찾지 못해 무덤 맨 왼쪽에 가묘상태로 남아있다. 김구 선생은 삼의사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묘역을 받치는 석축에 ‘유방백세’(遺芳百世·의사님들의 크고 높은 공적이 영원히 후세에 전해지리라)를 새겼다. 그 자체로 큰 역사적 가치가 있지만, 이를 알리는 안내판 하나 놓여있지 않았다. 석축은 현재 곳곳이 뒤틀리고 내려앉고 있다. 비록 가묘지만 안중근 의사의 묘 봉분 윗부분은 짐승이 판 듯 흙이 패여 있었다. 잡초가 묘역 곳곳을 뒤덮었지만 이를 관리해주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다. 이들 묘역 서편에 홀로 있는 김구 선생의 묘 역시 그의 업적에 비하면 초라하다. 유네스코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김구 탄생 150주년이 되는 2026년을 유네스코(UNESCO) 기념해로 공식 지정했다. 다산 정약용(2012년), 김대건 신부(2021)에 이어 세 번째다. 그의 업적과 문화적 영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안장된 효창공원은 국립묘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에 자리잡은 시립공원에 불과하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관계자는 11일 “김구 선생의 묘역은 백범기념관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어 기념사업회 차원에서 잡초관리, 주변정리 정도만 하고 있다”며 “하지만 엄밀히 말해 기념사업회는 묘역을 관리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효창공원은 현재 용산구청에 관리권한이 있다. 공원관리도 용산구시설관리공단이 맡고 있다. 일제와 싸운 주요 독립운동가들의 묘가 자리잡고 있지만, 근린공원 수준의 관리만 받고 있는 셈이다. 한 관계자는 “시설공단의 역할도 묘역관리가 아니라 근린공원 관리이기 때문에 공단이 관리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효창공원의 위치 역시 고립돼 있다. 물론 이곳이 원래부터 고립된 공간은 아니었다. 효창공원 앞은 한때 확트인 공간이었지만 현재는 효창운동장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형태가 됐다. 효창운동장이 들어선 목적 자체가 효창공원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백범김구기념관에 따르면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김구 선생의 묘소가 효창공원에 위치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묘소를 교외로 옮기려 했지만 실패하자 1959년 제2회 아세아축구대회 유치를 구실로 효창공원 바로 앞에 효창운동장을 조성했다. 이날도 효창공원 앞 정문은 바로 앞 효창운동장에는 JTBC 예능프로그램 <뭉쳐야 찬다>제작진 차량과 일부 팬클럽의 커피차, 효창운동장 방문객 차량 등으로 혼잡했다. 효창공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2019년 서울시, 용산구와 함께 독립유공자 묘역을 국가묘역으로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계획을 발표했지만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끝내 무산됐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당초 이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 목표시점은 2024년이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독립운동가의 묘역이 최초로 만들어진 곳이 이곳 효창공원으로, 국립현충원보다 훨씬 앞선다”면서 “그런 공간이 최소한의 관리도 없이 방치돼 있는 게 적절한지 다같이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효창공원을 승격하려는 움직임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6명은 지난 6월 30일 효창공원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현충원’으로 승격하는 내용의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안양법무법인 |
|||||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