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레플리카 (※본 작품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은 기대보다 의심을 먼저 하게 됩니다. 유명 연출진과 배우, 떠들썩한 홍보로 대중의 관심을 모은 기대작일수록 더욱 그렇죠. 올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이하 ‘다지니’) 역시 그 중심에 선 화제작입니다. <더 글로리> 이후 김은숙 작가가 오랜만에 선보인 로맨스 장르물로, 청춘 스타 수지와 김우빈이 주연을 맡으며 공개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로맨스 장인들이 뭉친 드라마답게 작품 홍보 역시 ‘로맨스’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저 역시 공개 전까지만 해도 ‘램프의 정령 지니와 감정 결여 인간 가영이 세 가지 소원을 두고 벌이는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라고 작품을 소개했는데요, 작품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혹시 보고 싶은 OTT 목록에 올려두었다가 주변의 ‘불호’ 평에 망설이고 있었다면, 이번주 오마주를 눈여겨보시죠.
‘알라딘과 요술램프’라는 익숙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지만 다지니는 훨씬 복잡한 구조를 지닌 작품입니다. 가장 큰 줄기는 천 년 만에 깨어난 램프의 정령 ‘지니’와 인간 ‘가영’의 이야기입니다. 가영은 두바이 사막을 여행하던 중 우연히 램프를 발견해 그 주인이 되죠. 한가지 독특한 점은 그가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사이코패스’라는 점입니다.
타고난 기질 탓에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은 가영은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의 극진한 보살핌과 피나는 교육으로 ‘사회화가 학습된 사이코패스’로 자랍니다. 공부도 잘했고 번듯한 직업도 갖고 있지만, 정해진 규칙과 루틴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죠. 그렇기에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지니의 존재는 그저 귀찮을 뿐입니다. 모든 것이 계획된 가영에게 소원이란 애초에 필요 없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가영의 성향은 우리가 알고 있는 ‘램프의 요정과 세 가지 소원’의 클리셰를 절묘하게 비틀어냅니다. 가영은 지니의 끈질긴 설득이 귀찮기만 하고, 지니는 그런 가영에게 소원을 빌어 달라며 ‘구걸’하는 상황이 됩니다. 티격태격하며 시골길을 걷던 두 사람은 ‘인간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타락한다’는 지니의 명제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가영은 그것이 틀렸음을 증명하겠다며 내기를 제안합니다.
조건은 이렇습니다. 이 길을 지나는 5명의 소원을 들어주되, 그중 3명이 나쁜 소원을 빌면 지니의 승리, 착한 소원을 빌면 가영의 승리. 그리고 패자는 죽음으로 대가를 치른다는, 목숨을 건 ‘5판 3선승제’ 내기입니다. 이 내기를 계기로 드라마는 또 다른 이야기의 문을 엽니다.
비정규직 마트 직원 강임선, 젊은 귀농 유튜브 커플, 가영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그녀를 질투하는 은행원 보경, 마을의 연쇄살인마, 그리고 시골길을 지나다 우연히 램프의 주인이 된 개의 이야기가 5가지 액자식 구성으로 펼쳐집니다.
내기의 근본적인 의미는 선과 악에 대한 실험처럼 보입니다. 제각각 소원을 비는 인간(그리고 개)들을 통해 숨겨진 욕망과 본성, 욕심, 질투, 열등감, 그리고 순수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을 법한 욕망이 각기 다른 형태로 펼쳐지며 ‘소원은 축복이자 형벌’이라는 이 작품의 철학적 메시지를 구체화합니다. 각 인물들이 소원이 어떤 결과가 되어 그들에게 돌아오는지 지켜보는 과정이 꽤 흥미롭습니다.
중반 이후부터는 지니와 가영의 과거 서사가 중심에 놓입니다. 두바이 사막에서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의 첫 인연은 오래전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네 번의 생을 거쳐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지니와 천사들의 전쟁, 불멸을 얻은 반인반령 칼리드의 탐욕, 지니와 가영의 가슴 절절한 이별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욕망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속박하는가’라는 철학적이고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사이코패스 인간 가영이 지니를 만나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닌 ‘인간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립니다. 판타지도 있고, 로맨스도 있고, 다소 과장된 코미디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 드라마를 설명하기는 모자란 듯 합니다. 과거와 현재, 사막과 도시, 신과 인간의 세계를 오가는 스케일과 볼거리도 화려합니다. 이번 주말, 특별한 재미를 원한다면 이 비범하고 신비로운 이야기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국가무형문화유산 제126호 국행수륙재 회향식이 봉행되고 있다. 국행수륙재는 1397년 태조 이성계가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진관사에 행차해 59칸 규모의 수륙사를 세우면서 시작된 불교 전통의례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