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소년범죄변호사 [정동칼럼]노동의 기쁨 혹은 소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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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9.♡.145.202) | 작성일 | 25-10-14 00:50 | ||
용인소년범죄변호사 추석 연휴에 땅콩을 수확했다. 땅콩 줄기를 캐어 꼬투리를 딴 후 깨끗이 씻어 널어 말렸다. 이 단순한 동작을 10시간 이상 반복하고 무거운 걸 들었다 놨다 하며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나니, 녹초가 되었다.
그래도 즐거운 노동이었다. 가끔 하는 일이라 그런가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지 싶다. 노동이란 게 기쁜 일이 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노동’이란 “몸을 움직여 일함”으로 정의된다. 몸을 움직이는 모든 일이 힘든 건 아니다. 어떻게 우리의 몸을 움직여 일하는지, 노동의 조건이 중요하다. 휴식할 시간과 공간이 없고, 영양 있는 식사를 할 수 없고, 노동의 결실에서 소외된다면, 그 일은 극한의 고통이 된다. 반대로 일이 고된 만큼 충분히 휴식하고, 체력을 보충시키는 좋은 음식을 먹고, 내가 심고 수확한 작물을 보며 기쁨을 만끽할 때, 노동은 즐거운 일이 된다. 모든 노동이 그러할 것이다. 노동이란 자신을 ‘쓰고’ 소진하는 무엇이 아니라,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며 나를 채우는 결실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라면, 노동은 삶의 본질이자 이유가 된다. 1944년 국제노동기구의 목표를 천명한 그 유명한 필라델피아 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사람은 ‘쓰는’ 무엇이 아니라는 묵직한 선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동자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법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람을 ‘사용자’라고 부른다. 수업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사용자’라는 말을 쓰지만, 언제나 머뭇거린다. ‘사용’의 사전적 정의에는 “사람을 다루어 이용함”이 들어 있다. 애초에 ‘고용’이란 단어가 쓸 용(用)자를 포함하고, 사전적으로 “삯을 주고 사람을 부림”이라고 풀이된다. ‘사람을 쓴다’는 말은 일상어이기도 하다. 말은 그저 기호가 아니라 세계관을 담는다. ‘사용자’라는 언어 기호가 가진 몰인간성이, 노동에 대한 관점을 반영하고 또 만든다고 생각한다. 인구를 인력으로 보고 노동자를 노동력으로 취급하며, 사람을 쓰고 쓰임을 당하는 도구로 바라보게 한다. 마치 사용자는 ‘사람을 다루어 이용’할 권리가 있는 듯 인식되고, 노동자는 ‘시키는 일을 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몸을 스스로 움직여 일하는 의미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몸이 지배당하는 상태로 노동의 의미가 변질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용허가제’를 곱씹게 된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하는 중소제조업, 건설업, 농축수산업 등 사업장에서의 외국인 고용을 허용하는 제도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의 노동자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일단 국내에 온 이주노동자를 다른 직장으로 이동할 수 없게 묶어두어 강제노동을 용인한다. 이주노동자는 채용 절차상 어떤 직장에서 일하게 되는지 모른 채 고용주에 의해 선발되어 입국하는데도, ‘사용자’가 허락하거나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의 자유의사로 다른 직장으로 갈 수가 없다. 농축수산업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더 열악하다.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서 농축수산업이 적용 제외되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만 해당하는 규정은 아니지만, 내국인이 떠난 자리를 메꾸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의 휴일은 대부분 월 2~4일이다. 휴일이 없다는 응답도 많다. 주 4일 근무를 논하는 시대에 이런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이 어떻게 사회적 파장 없이 용인되고 있는지 믿기 힘든 정도다. 게다가 주거환경이 열악해, 숙소에서 지친 몸을 회복하기는커녕 생명에 위협을 받기도 한다. 고용허가제는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외국인이 취업하면 최소한 배우자와 자녀가 함께 생활하도록 동반비자가 허용된다. 그런데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에겐 이를 불허한다. 왜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일하면서도 저숙련 노동이라는 이유로 가족과 분리되어 생활해야 하는지 합리적인 설명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추석에 가족과 함께하는 동료들을 보며 이주노동자는 어떤 마음이 들까. 한 해의 수확을 축하하고 나누는 추석에, 정작 작물을 재배하는 일을 한 노동자가 그 노동의 결실에서 소외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명절 식탁에 올라갈 작물을 생산한 이주노동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물론 이주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연휴 동안 쉴 수 없었던 수많은 노동자가 있다. 누군가에겐 길지만 누군가에게는 짧거나 없었을 휴일에 대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더 나은 내년 명절을 기약하면 좋겠다. ■교육부 △학생맞춤통합지원과장 나현주 ■고용노동부 ◇국장급 전보 △정책기획관 박종환 △안전보건감독국장 오영민 나혜석(1846~1948), 그리고 천경자(1924~2015). 둘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여성 화가이자 여행자였다. 당대 여성들보다 한 발 앞선 모습으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두 작가의 작품을 각각 조명하는 전시가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는 천경자의 작고 10주기를 맞아 열리는 전시로, 그의 채색화 80여점을 한데 모았다. 천경자는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와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 등 자신의 나이를 쪽수에 빗댄 작품을 남겼다. 전시 제목은 올해가 천경자가 탄생한 지 101년째가 되는 해임을 상기시키며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천경자의 문제 제기로 1991년 시작된 논란은 지금까지도 진행중이다. 지난달 전시 개막을 앞두고도 천경자의 유족이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 내린 국가를 상대로 2019년 낸 1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이 대법원에서 유족 측의 최종 패소로 끝나 이 논란은 다시 소환됐다. 전시는 현대의 위작 논란으로 주로 소비된 천경자의 그림을 재조명하자는 취지에서 18개 기관과 여러 개인 소장자들로부터 그의 작품을 모았다. ‘미인도’를 내세우지 않아도 천경자의 작품은 아름답다. ‘고(孤)’(1974)나 ‘노천명’(1973)을 비롯한 여성 초상화는 또렷한 이목구비와 다채로운 색조로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한때 배우를 꿈꿨기에 ‘팬지’(1973)에서는 마릴린 먼로의 얼굴이 그려진 화병을, ‘청춘의 문’(1968)에서는 스웨덴 출신의 전설적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를 그렸다. 아름다움 말고도 전시에서 보이는 천경자 그림의 특징은 세계 곳곳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이다. 해외여행이 대중화되기도 한참 전인 1970년대, 지금도 가기 어려운 남태평양이나 아프리카를 누비고 신문이나 잡지에 그림과 여행기를 싣기도 했다. 1972년 베트남 전쟁에 파견돼 그린 ‘꽃과 병사의 포성’은 전장의 병사와 헬기, 그 사이로 붉고 푸른 자연을 대비시켰다. 전쟁의 참상과 아름다움이라는 대조적인 풍경을 동시에 그리면서도 이질적이지 않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와 ‘초원 Ⅱ’(1978)에서는 아프리카에 방문했을 때 본 초원과 코끼리가 그려져 있다. 그 위에는 고독함과 외로움을 상징하는 나체의 여성이 엎드려 있다. 홍익대 교수직까지 내던지고 떠난 천경자의 여행은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수단이자 자신을 성찰하고 여성 초상을 정립하기 위한 계기였다. 전시는 내년 1월25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2만원. 천경자보다 먼저 화가이자 여행가, 페미니스트로 활동했던 나혜석은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머무르는 순간, 흐르는 마음’에서 조명되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열리는 전시는 나혜석을 비롯해 작가 13명의 작품 55점을 함께 전시하고 있지만, 전시의 시작은 나혜석이 남긴 사진첩이다. 나혜석의 막내아들이던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가 소장하고 있다가 2017년 수원시에 기증한 것이다. 사진 96점과 자필 설명 101건을 담은 사진첩이 수년간의 복원 및 해석을 거쳐 전체가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남편 김우영의 일본 유학 시기부터, 나혜석이 해인사에 머물던 1930년대까지 걸친 사진들은 거의 모두 인물을 담고 있으며, 가족사진이 많다. 나혜석이 가족을 생각하며 품었던 애틋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일본으로 건너간 뒤 가족에 대한 많은 그림을 남긴 이중섭의 작품들로 이어진다. 나혜석은 그림의 소재를 얻기 위해 국내외로 여행을 다녔다. 1927년에는 김우영과 세계 예술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세계 여행을 떠났는데, 전시는 그 시기 유럽 유학 중이던 이종우, 백남순 등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막바지엔 또 다른 여성 화가인 박래현과 천경자의 작품도 배치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보기 드물게 일본에서 유학했으며,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며 창작의 길을 모색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박래현이 1960년대 세계여행 후 시도한 동양적 추상화 ‘작품 16’(1968)과 천경자의 대표작 ‘여인상’(1985)이 배치됐다. 전시는 내년 1월11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4000원. 칙칙이구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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