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판촉물 맨홀 등 밀폐공간에서 작업하다 질식하는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는데, 최근 5년간 검찰에 송치된 밀폐공간 질식 사망사고 대부분이 산소·유해가스 농도 측정과 보호구 제공 등 기본적인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검찰에 송치된 밀폐공간 관련 중대재해 사건은 14건이었다. 이중 12건(85.7%)이 산소·유해가스 농도 측정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0건은(71.4%) 보호구를 제공하지 않았고, 9건(64.2%)은 감시인을 배치하지 않는 등 규정을 어겼다.
밀폐공간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산소 결핍이나 유해가스로 인한 질식, 화재, 폭발 등의 위험이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질식사고는 치명률이 높아, 재해자 2명 중 1명이 사망할 정도다. 최근 10년간(2015~2024년) 질식재해 사망률은 42.3%로, 1% 내외인 일반 사고성 재해 사망률의 40배가 넘는다.
노동부는 산소·유해가스 농도 측정, 환기 실시, 보호구 착용을 밀폐공간 작업 필수3대 안전수칙으로 안내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19조는 밀폐공간 작업 시 사업주는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적정 공기 상태가 유지되는지 평가하도록 하는 책임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환기가 곤란할 경우 공기호흡기 또는 송기마스크와 같은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 제623조는 노동자가 밀폐공간에서 작업하는 동안 감시인을 지정해 밀폐공간 외부에 배치하고, 작업자에게 이상이 있을 경우 구조요청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한다.
현재 수사 중이라 검찰에 아직 송치되지 않은 사고까지 감안하면 안전보건 위반 사례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통계에는 현재 수사 중인 서울 금천구와 인천 계양구의 맨홀 사망사고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수사 중 사례를 포함하면 최근 5년간 발생한 밀폐공간 질식사고는 총 38건이다. 2021년 4건이던 사고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8~9건씩 발생했다. 전체 질식 사고 중 맨홀에서 발생한 사고가 9건(23.6%)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밀폐공간 질식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유해하거나 위험한 밀폐공간 작업에 종사하는 작업자에겐 의무적으로 특별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5년간 밀폐공간 작업 특별안전보건교육 미실시로 75명이 적발됐다. 지난해 6명에서 올해 8월 기준 16명으로 증가했다. 현행 산안법에는 특별교육 실적을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는 절차가 없어 노동부조차 교육 이행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호영 의원은 “최근 급증한 밀폐공간 작업 질식 사망사고 대부분이 기초적인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아 발생한 전형적인 인재”라며 “노동부는 밀폐공간 작업 특별안전보건교육 이행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는 등 불필요한 사망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사법권의 독립 혹은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표현이 헌법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나 그 개념에 관한 논란은 접어두자. 사법개혁 논의와 관련해 지난 9월24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을 접견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사법부의 독립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재판이 독립돼 있어야만 국민 모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지켜지고 또 그래야 판결의 신뢰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는 입법부·행정부·사법부로 권력을 분립한다.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부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은 대통령제의 시초인 미국 헌법 초기부터 인식됐다. 사법부는 임명직이지만 선출직인 입법부 및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해야 한다. 법원은 세금을 부과해 징수할 수도 없고 다른 기관에 대해 판결을 집행할 강제력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사법부가 판결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민의 존중과 승복을 획득해야 한다. 법관의 독립에 관해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의 독립 외에 여론으로부터의 독립까지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사법부는 법 앞의 평등을 지키고 소수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에 대중의 다수 의견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라면 맞는 말이지만, 사법부의 권위가 국민의 의견이나 인정 여부와 무관하다는 뜻이면 곤란하다. 공직자는 선출직이 아니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선출직이 아니기에 국민의 지지를 얻는 방법이 오히려 복잡미묘하다.
법원의 권위에 관해서는 스티븐 브라이어 전 미국 연방대법관의 생각이 좋은 참고가 된다. 그는 하버드 로스쿨 행정법 교수를 지내고, 1980년부터 1994년까지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1994년부터 2022년까지 연방대법관으로 재직했다. 그는 국가기관 권한의 한계, 민주주의와 법원의 역할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고, 대법관 재직 중에도 이에 관한 저서들을 출간했다.
그는 대법관 재직 마지막 해에 <법원의 권위와 정치의 위험>이라는 책을 냈다. 2022년 초 듀크대 로스쿨이 운영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 책 얘기를 하며, 법원의 권위와 법의 지배에 관한 소회를 밝혔다. 그중 핵심적 발언이다. “법의 지배가 말이 아니라 현실로 구현되려면 법관 혹은 법률가를 상대로만 얘기해서는 안 된다. 저잣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상대해야 한다. 다들 이걸 잊어버리는데, 이 나라 인구 3억3100만명 가운데 3억3000만명은 법률가가 아니다. 법원의 판결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더라도 법원 판결을 따르는 것이 결국 스스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납득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 사례는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유동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갤럽이나 퓨리서치센터 같은 기관은 미국 국민의 법원에 대한 신뢰 수준을 장기간에 걸쳐 조사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2025년 현재 연방대법원에 대한 신뢰는 사상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법원에 대한 신뢰가 일관된 하락 추세였거나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퓨리서치센터 자료를 보면, 2000년 부시 대 고어 판결 이후 대법원에 대한 신뢰도가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그 뒤에도 등락이 반복됐다. 트럼프 1기가 마칠 무렵에는 대법원에 대한 신뢰가 약 70%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그 이후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2020년 이후 연방대법원은 보수 진영이 9명 중 6명으로 압도적 우위를 굳혔고, 대표적으로 50년 동안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파기했다. 법원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지점은, 그런 판결의 결론 자체도 있지만, 보수 진영 대법관들이 인준 청문회에서 스스로 밝힌 견해를 뒤집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법관 증원을 비롯해 법원 개혁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법원으로서는 정치인이 관련된 몇몇 사건 때문에 과도한 비난을 받고 외부의 개입을 겪는다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부’ 사건의 문제라면, ‘일부’ 구성원의 일탈 문제라면, 그 때문에 법원 전체가 신뢰를 상실하는 결과를 방치할 이유는 없다. 사법부의 독립을 건드리면 결국 국민에게 해가 된다는 얘기를 사법부 스스로 강조한다고 설득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사법부가 외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의 오류나 결점을 시정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는 일이 아니다. 반대로 사법부의 책임성과 투명성이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주어야 할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