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동행매니저 나혜석(1846~1948), 그리고 천경자(1924~2015). 둘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여성 화가이자 여행자였다. 당대 여성들보다 한 발 앞선 모습으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두 작가의 작품을 각각 조명하는 전시가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는 천경자의 작고 10주기를 맞아 열리는 전시로, 그의 채색화 80여점을 한데 모았다. 천경자는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와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 등 자신의 나이를 쪽수에 빗댄 작품을 남겼다. 전시 제목은 올해가 천경자가 탄생한 지 101년째가 되는 해임을 상기시키며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천경자의 문제 제기로 1991년 시작된 논란은 지금까지도 진행중이다. 지난달 전시 개막을 앞두고도 천경자의 유족이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 내린 국가를 상대로 2019년 낸 1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이 대법원에서 유족 측의 최종 패소로 끝나 이 논란은 다시 소환됐다. 전시는 현대의 위작 논란으로 주로 소비된 천경자의 그림을 재조명하자는 취지에서 18개 기관과 여러 개인 소장자들로부터 그의 작품을 모았다.
‘미인도’를 내세우지 않아도 천경자의 작품은 아름답다. ‘고(孤)’(1974)나 ‘노천명’(1973)을 비롯한 여성 초상화는 또렷한 이목구비와 다채로운 색조로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한때 배우를 꿈꿨기에 ‘팬지’(1973)에서는 마릴린 먼로의 얼굴이 그려진 화병을, ‘청춘의 문’(1968)에서는 스웨덴 출신의 전설적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를 그렸다. 아름다움 말고도 전시에서 보이는 천경자 그림의 특징은 세계 곳곳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이다. 해외여행이 대중화되기도 한참 전인 1970년대, 지금도 가기 어려운 남태평양이나 아프리카를 누비고 신문이나 잡지에 그림과 여행기를 싣기도 했다.
1972년 베트남 전쟁에 파견돼 그린 ‘꽃과 병사의 포성’은 전장의 병사와 헬기, 그 사이로 붉고 푸른 자연을 대비시켰다. 전쟁의 참상과 아름다움이라는 대조적인 풍경을 동시에 그리면서도 이질적이지 않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와 ‘초원 Ⅱ’(1978)에서는 아프리카에 방문했을 때 본 초원과 코끼리가 그려져 있다. 그 위에는 고독함과 외로움을 상징하는 나체의 여성이 엎드려 있다. 홍익대 교수직까지 내던지고 떠난 천경자의 여행은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수단이자 자신을 성찰하고 여성 초상을 정립하기 위한 계기였다. 전시는 내년 1월25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2만원.
천경자보다 먼저 화가이자 여행가, 페미니스트로 활동했던 나혜석은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머무르는 순간, 흐르는 마음’에서 조명되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열리는 전시는 나혜석을 비롯해 작가 13명의 작품 55점을 함께 전시하고 있지만, 전시의 시작은 나혜석이 남긴 사진첩이다. 나혜석의 막내아들이던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가 소장하고 있다가 2017년 수원시에 기증한 것이다. 사진 96점과 자필 설명 101건을 담은 사진첩이 수년간의 복원 및 해석을 거쳐 전체가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남편 김우영의 일본 유학 시기부터, 나혜석이 해인사에 머물던 1930년대까지 걸친 사진들은 거의 모두 인물을 담고 있으며, 가족사진이 많다. 나혜석이 가족을 생각하며 품었던 애틋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일본으로 건너간 뒤 가족에 대한 많은 그림을 남긴 이중섭의 작품들로 이어진다.
나혜석은 그림의 소재를 얻기 위해 국내외로 여행을 다녔다. 1927년에는 김우영과 세계 예술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세계 여행을 떠났는데, 전시는 그 시기 유럽 유학 중이던 이종우, 백남순 등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막바지엔 또 다른 여성 화가인 박래현과 천경자의 작품도 배치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보기 드물게 일본에서 유학했으며,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며 창작의 길을 모색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박래현이 1960년대 세계여행 후 시도한 동양적 추상화 ‘작품 16’(1968)과 천경자의 대표작 ‘여인상’(1985)이 배치됐다. 전시는 내년 1월11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4000원.
조국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하루 앞둔 8일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맞춤형 사회안전망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븍에 올린 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세계는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우리의 문화적 자부심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의 현실은 여전히 척박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 위원장은 문학인의 70%가 문학 활동으로 월 50만 원 미만의 소득을 얻는다는 내용의 2021년 정부 통계를 인용하며 “많은 문학인들이 생계를 위해 다른 경제활동을 병행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조 위원장은 “진정한 문화강국은 창작자들이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극소수의 스타 문화예술인에 가려진 대다수의 문화예술인의 현실을 챙겨야 한다”고 했다.
조 위원장은 창작 활동이 지속할 수 있는 토대 구축, 다양한 형태의 창작 공간이 확충 지원, 청년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창작 플랫폼 구축 등을 제시했다.
조 위원장은 “작년 겨울 우리 국민은 한강 작가가 던진 물음(‘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에 응답했다. 불법 계엄 앞에 1980년 오월의 광주 정신이 광장의 빛으로 되살아났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