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학교폭력변호사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한복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는 시대다. 전통적인 스타일의 한복부터 현대적으로 변형된 형태의 다양한 한복을 구경할 수 있다. 국적불명이니 전통왜곡이니 하는 논란도 있지만 다양성 측면에서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복에 달린 고름은 정체성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복입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때문에 고름 대신 단추를 단 한복은 꽤 오래전부터 보편화되었다.
고름 대신 단추를 달도록 한 것은 1884년 고종의 주도로 실시된 갑신의제개혁 때이나 반발에 부딪혀 확산되지는 못했다. 그러다 본격화된 것은 20세기 초 천도교(동학)에 의해서다. 천도교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를 중심으로 시작된 갑진개화운동(1904년)은 상투를 자르고 실용적으로 복식을 개선하는 등 생활문화 개혁운동으로 진행됐다. 당시 대중들이 입었던 옷은 고름이 달린 흰색 한복이 주류였다. 이같은 복식은 일상생활에 불편했을 뿐 아니라 엄청난 가사노동 부담으로 더해졌다. 남녀·장유 차별이 없는 평등 이념을 중시했던 천도교로선 생활문화 개혁운동이 핵심 이념을 실천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천도교는 단추달기 운동과 함께 검게 염색한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는데도 주력했다.
<20세기 전후 한복 여밈장치로써 단추의 상용화 양상>(김윤희. 서울민속학 제7호. 2020년 12월)에 따르면 400만명의 교인을 가졌던 천도교가 주축이 되어 ‘단추달기운동’을 진행함에 따라 1929년에 이르면 두루마기에 단추를 단 사람들은 천도교인으로 간주될 정도였다. 이 논문은 의암의 사위였던 소파 방정환이 잡지 <신여성>(1931년 3월호)에 “아무 짝에도 소용 없는 옷고름을 길다랗게 늘여서 일에 거추장스럽게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고 쓴 글도 소개하고 있다.
2022년 영국 V&A 뮤지엄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달항아리 컨셉트의 모던 한복을 선보이며 호평받았던 한복 디자이너 박선옥씨(기로에 대표)는 “한복 현대화를 연구하면서 고름을 떼고 단추를 다는 작업을 할 때 한복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듯한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면서 “우연한 기회에 의암 선생의 사진에서 단추가 달린 두루마기를 착용한 발견하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오히려 한복 현대화에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서양식 남성정장을 대체할 한복 슈트를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33장인 동시에 1장이다. 만약 테일러 스위프트 없이는 못 사는 팬이라면 신보 <더 라이프 오브 어 쇼걸(The Life of a Showgirl)>(사진)은 상당한 지출을 요구할 것이다. 1장의 음반을 33가지 버전으로 발매했기 때문이다.
지난 음반도 만만치 않았다. 25개였다. 불법은 아니지만, 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앨범은 음악적 논쟁도 불러왔다. 과거로 회귀한 음악을 추구했지만, 평가는 일관된 찬사를 받았던 2020년쯤과 거리가 멀다. 차트 성적은 그와 별개로 신기록을 경신할 예정이다. K팝에서 배운 다종화 전략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얼마 전 백예린이 정규 3집 앨범 <플래시 앤드 코어(Flash and Core)>를 공개했다. 이제껏 들려준 밴드 음악을 뒤로한 채 어둡고, 실험적인 분위기로 돌아왔다. 상황은 테일러 스위프트와 유사하다. 일렉트로닉, 힙합 등 다채로운 장르 시도를 환영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기왕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쪽도 있다. 이렇게 변화를 시도하면 반응이 갈리는 일이 과거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현상이 도드라졌다. 팬덤의 입김이 실시간으로 거세진 시대여서다.
평론가 척 클로스터먼은 “현대 대중음악은 음악가의 의도 아닌 관객의 반응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고 정의했다. 영화사는 평점에 목숨 걸고, 기획사는 팬덤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중음악이야말로 현대다.
팬을 나무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느 때보다 음악가를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즉 반강제적으로 소비를 유도하는 쪽에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어쨌든 강조하고 싶은 것은 딱 하나다. 고 이어령 선생의 말처럼, 자아를 통과한 예술만이 만인의 심장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팬은 소중하지만, 눈치를 보는 순간 음악가의 생명력은 그걸로 끝이다. 기어코 설득해내는 수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