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상품권현금화 나라가 아직도 산만하고 어수선하다. 내란이 청산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특검이 진실을 하나둘 밝혀내며, 내란 가담자들을 찾아내 가두고 있다. 국민의힘이 공격적이어서도 아니다. 국민의힘은 나라를 흔들 능력을 상실했다.
더불어민주당 때문이다. 민주당은 근거 없는 의혹으로 대법원장 축출을 주장하며 사법부를 흔들었다. 모처럼 여야가 합의한 특검법·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뒤집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연일 소동을 피웠다.
민주주의 가치를 따르는 정당이라면 삼권분립 훼손에 저항하고 사법부 독립을 옹호해야 한다. 합의 파기로 협치 정신을 저버린 행위를 고발하고, 입법 독주를 막아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이 이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은 헌정질서 파괴에 책임이 있는 국민의힘을 민주주의 수호자로 일으켜 세우고 있다. 기력을 잃은 국민의힘에 숨을 불어넣고, 내란 동조 집단이 내란 저지 세력에 맞설 명분을 안겨주었다.
사법부 개혁을 하려면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어도 합당한 절차와 방법을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 핵심은 절차적 정의이다. 윤석열도 그걸 무시해서 탄핵당했다. 대법원장에 문제가 있다면 탄핵 절차를 따르면 된다. 탄핵 사유를 제시할 수 없으면 입을 닫아야 한다. 그런데도 큰소리치는 이유는 뭘까? 스스로를 절대선으로 믿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에서 선과 악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나의 선은 상대의 관점에서 악이다. 국민의힘 눈에 ‘민주당 놈들’은 ‘노상원 수첩대로 됐으면 좋겠다’고 빌고 싶은 대상이다.
선과 악의 대결은 만화에서나 나온다.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느냐가 상대의 얼굴을 결정한다. 양당 갈등은 서로가 선이라고 자처하는 선과 선, 상대를 악으로 낙인찍는 악과 악의 대결이다. 이런 대결은 물러서거나 타협하는 것을 부도덕하고 비겁하며 조직을 배신하는 행위로 간주한다.
선악의 정치는 진영 정치와 짝을 이룬다. 진영 정치는 ‘우리 편이면 선, 다른 편이면 악’이란 이분법에 기반한다. 이런 정치에서 사람들은 우리 편에 유리해도 상대편을 불리하게 하지 않으면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들 91%가 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국민의힘 지지자 가운데는 13%만이 그렇게 응답했다. 시민들은 서로 다른 평행우주에 살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국정 성과가 나기 어렵고, 성과를 내도 다른 우주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으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뿐 아니다. 진영 정치는 곤충을 숙주로 하는 연가시가 숙주를 물에 빠지도록 조종하는 것처럼 집권 세력을 비합리적 선택으로 이끈다. 민주당의 여야 합의 파기가 좋은 예다. 금융감독기구 개편 포기, 당내 갈등, 양당 대립 격화라는 대가를 치르고 집권 세력이 손에 쥔 것은 겨우 특검 활동 시한 보름 연장이다.
대통령까지 파기에 가세했지만 손익계산이 맞지 않는다. 집권 세력의 목표는 보름 연장이 아니라, 파기 자체였던 것 같다.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피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만 깜빡했던 무엇이 있었다. 집권당 대표도 대통령도 거부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그 무엇. 바로 국민의힘과는 타협 아닌 대결만 가능하다는 분열의 논리다.
이게 바로 내란 이후에도 내전이 계속되는 이유다. 윤석열이 더 이상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국민의힘은 목소리를 잃었지만, 나라가 아직도 전쟁 같은 정치를 하는 이유다. 민주당은 알아야 한다. 내란을 저지해 민주주의를 지키고 집권이란 보상을 받았다고 해서 야당 배제, 입법 독주, 대화 거부의 자격도 얻은 것은 아니다.
내란 극복은 내전 정치의 종식, 다시 말해 정치 복원으로 완성된다. 정치 복원은 무장 군인이 더 이상 국회의사당에 들이닥치지 않는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통할 수 없는 두 세계의 벽을 허물려는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집권 세력은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가기 전에 내란이 준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첫째, 집권자가 자제심을 잃고 권력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은 위험을 부른다. 둘째, 다수당 입법 독주는 나라 전체를 분열의 수렁에 빠뜨린다. 셋째, 민주주의에선 권한을 최대로 동원한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 넷째, 상대를 절멸시키고 싶은 증오심을 내려놓고 대화하지 않으면 자신을 망친다.
세대·성별·응원팀 등 구분 없이야구장 그 자체가 ‘핫플레이스’SNS도 젊은층 유입 증가 한몫누구나 즐기는 ‘팬문화’로 정착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유니폼을 입고 부모 손을 잡은 어린이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온 30대 자녀까지, 형형색색 유니폼을 입은 팬들은 특정 세대와 성별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기 시작 수시간 전부터 경기장 근처는 선수들 출근길을 보려는 팬들로 붐빈다. 경기장 안은 마치 유원지 같다. 포토카드 기계에서 사진을 찍고 SNS에서 본 먹거리를 사 인증샷을 찍는다. 어느 팀 유니폼을 입어도 상관없다. 심지어 축구 유니폼을 입고 가도 되는 곳, 바로 야구장이다.
출범 44년 차 프로야구가 지난 27일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로 단일 시즌 1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지난해 첫 1000만 관중 시대를 연 프로야구의 인기는 갈수록 뜨거워진다. SNS의 시대, 경기의 재미뿐 아니라 야구장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이유로 팬들에게는 이미 ‘핫플레이스’다.
‘직관’의 상징, 응원문화가 대표적이다. 한화 팬 노은서씨(22)는 “함께 응원하는 사람들과 같은 순간을 공유하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응원하면서 흥분이 고조되고 승부가 뒤집히는 순간 같이 환호하는 재미는 중계로는 절대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연애할 때 아내와 두산 경기를 많이 보러 다녔다는 김모씨(43)는 “가끔 아이를 데리고 온다. 아이가 야구 규칙을 완벽하게 알지는 못한다. 선수는 아직 잘 모르고 그냥 춤추러 오는 것 같다”며 “지금 ‘두린이’인데 나중에 커서 배신을 해도 괜찮다. 그래도 같이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아들(11)은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를 수 있어서 재밌다. 레크리에이션 시간 같다”며 웃었다.
OB 베어스 시절부터 두산 팬인 김장원씨(65)는 “옛날에는 야구장이 텅 비었었는데 지금은 표 사기도 어렵다니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딸이 표를 끊어주면 가끔 아내나 친구들하고 온다”며 “응원가가 어렵거나 율동이 격하지 않아서 나이 많은 사람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다. 같이 젊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식음료 섭취가 자유롭고 입·퇴장에 제약이 없어 ‘직관’의 문턱이 낮다는 점도 매력이다. 수원시민 함선희씨(54)는 “KT가 수원의 자부심이라는 팬심으로 창단 때부터 딸과 응원을 다니고 있다. 오늘도 내가 먼저 왔고 딸은 퇴근하고 경기장으로 오기로 했다”고 전했다. SSG 유니폼을 입은 박정진씨(34)는 “퇴근하고 바로 왔는데 30분 늦었다. 저녁은 와서 먹으면 되고 밖에서 사올 수도 있다. 여자친구도 곧 도착한다”며 “여자친구가 SSG 팬이라 같이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젠 나 혼자도 다닌다. 관중이 같이 노는 분위기라 ‘혼밥’보다 혼자 놀기 난도가 낮다”고 말했다.
경기 시간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길지만 입장권은 비교적 저렴한, ‘가성비’도 야구의 강점이다. 김성원씨(22)는 “구단에서 프로모션으로 외야석을 3000원에 팔기에 티켓을 샀다. 꼭 몇천원 아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집이 서울이고 티켓값이 교통비보다 싸니까 안 올 이유가 없다”며 “경기가 끝나면 콘서트나 불꽃놀이도 한다. 그 뒤 친구들이랑 맥주 한잔하고 헤어지면 주말이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말했다.
젊은 팬층 유입을 늘린 요인으로 SNS를 빼놓을 수 없다. 먹거리나 선수들의 팬서비스 영상이 공유되면 현장 팬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다.
한화 팬인 남자친구와 대전을 찾은 LG 팬 김은빈씨(26)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야구장 가는 게 유행이다. 어느 야구장을 가면 무엇을 먹어야 한다는 영상이 SNS에 많이 올라온다”고 했다. SSG 선수들 사인이 적힌 유니폼을 입은 윤모씨(23)는 “이렇게까지 팬서비스 좋은 스포츠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선수와 거리가 가깝고 내야석에 앉으면 선수들 표정도 다 보여서 현장감이 더 좋다. 별로 비싸지도 않다”고 했다.
박정진씨는 “2000년대 초반까지 좋아하는 가수 CD를 모으는 것이 팬 문화였다면 지금은 유니폼으로 바뀐 게 아닐까 싶다. 가격이 저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취미로 즐기기에 비싸다는 생각도 안 든다. 선만 넘지 않는다면 건전한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