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소년보호사건변호사 대를 이은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할아버지는 원하지 않는 전쟁에 끌려가 원하지 않는 죽임을 당하셨고, 가해자의 종교 시설에 묶여 있습니다. 저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야스쿠니 조선인 합사 피해자의 후손인 박선엽씨(56)의 각오다.
지난 19일, 박씨의 가족 등 6명의 유가족은 야스쿠니신사에 무단 합사된 선조들의 이름을 빼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박씨의 할아버지 박헌태씨는 1944년 일본 육군으로 끌려가 같은 해 중국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한다. 1959년에 ‘나카하라 헌태’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야스쿠니에 무단 합사됐다. 박씨의 할아버지처럼 유가족의 뜻과 상관없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조선인은 2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후 소송은 시작됐다.
2001년에는 ‘재한 군인·군속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이 문제가 포함됐지만 10년에 걸친 재판 끝에 패소했다. 2007년에는 ‘무단 합사 철폐 1차 소송’을 냈지만 6년 만에 기각, 2013년에 2차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 역시 올해 1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기각 판결을 내렸다. ‘1959년 합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척기간(소송 가능 기간) 20년이 지났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2001년의 첫 소송에 참여한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 대표는 “일본 정부가 유족에게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다는 사실을 알려준 후에 우리가 소송을 진행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비밀로 하고 있다가 원고의 힘으로 진실을 알아내 여기까지 왔다는데 어떻게 제척기간이 성립할 수 있는가”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족 자격으로 재판을 지켜본 박선엽씨 등 유가족이 ‘합사 철폐 3차 소송’에 나선 것이다. 희생자의 손주 세대가 소송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대를 이은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박선엽씨는 소송 지원자들이 모인 보고 집회에서 “저의 아버지가 남겨준 마지막 숙제를 제가 마무리하겠다는 각오로 소송에 임하고자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의 손에는 할아버지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무단 합사 유족은 일본 후생노동성을 찾아 전쟁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인·군속 유골의 조속한 DNA 감정과 반환을 촉구했다. 하지만 “반환 방법 등 외교 교섭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2014년부터 교섭이 시작됐지만 일본 정부의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에는 조선인 노동자 136명이 숨진 조세이 탄광에서 유골이 발견되었지만, 일본 정부는 DNA 감정을 포함한 진상 규명 작업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이희자 대표는 “조세이 탄광과 야스쿠니 합사 문제에는 식민 지배로부터 이어진 민족 차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일본의 자세를 지적했다.
지난달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래지향’이라는 구호만 반복됐다. 하지만 미래지향의 한·일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역사 정의와 피해자 존엄 회복이 바로 그것이다. 한·일 양국 정부는 시민들의 의지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피해자가 소외된 ‘미래지향’은 거짓에 불과하다.
중국이 앞으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에 적용되는 특별대우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제사회에서 지도력 강화를 노리는 중국이 자신들의 개도국 지위를 문제 삼아온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명분을 쌓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개발구상(GDI) 고위급회의에서 “중국은 책임 있는 주요 개도국으로서 현재와 미래의 WTO 협상에서 새로운 특별대우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에 머물고 있으며 GDI는 중국이 별도로 마련한 행사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중국의 결정은 “WTO 개혁을 위한 중요한 뉴스”라며 “수년간 노고의 결실이다. 이 문제에 관해 중국의 리더십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WTO는 개도국에 환경 등의 규범 이행 유예, 무역 자유화 의무 완화, 기술·재정 지원, 농업·식량안보 등을 위한 보호조치 등 특혜를 제공한다. 개도국 지위를 가늠하는 기준은 없으며 가입국이 스스로 선언할 수 있다. 다만 다른 회원국이 이의 제기를 하면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의 경우 1995년 WTO 가입 시 개도국으로 선언했으며 2019년 10월 개도국 지위를 공식 포기했다.
국제 정세 고려한 결정…중국, 개도국 지위는 유지
미국은 WTO가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개도국에 불공정한 특혜를 제공한다고 비판하며 세계 제2 경제대국인 중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기를 요구해왔다. 중국의 개도국 지위를 이유로 WTO 개혁 논의도 사실상 거부했다.
중국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리청강 중국 무역담판대표 겸 상무부 부부장은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발표가 “국내외 정세를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면서 “중국의 개도국 지위와 정체성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리 부부장은 이번 선언은 “다자간 무역체제를 확고히 수호하고 글로벌 개발 구상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무역과 투자 활성화에 활력과 자신감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무역 문제에서 개도국 지위는 유지하되 특혜를 포기함으로써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에 주로 있는 개도국)를 향해 중국이 개도국의 대변자이자 미국을 대신하는 세계 규범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중국의 확고한 의지와 대국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주는 조치”라고 자평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선언은 중국의 개도국 특혜가 부당하다고 분노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호의를 얻으려는 노력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이번 선언의 의미에 대해 “중국이 다자간 무역체제에 지속적으로 헌신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이는 WTO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미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룰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국의 이번 발표가 “수년은 늦었다”며 “WTO 협상 의제가 부재하고 개혁 속도가 더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발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실질적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