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 카페 통일교 청탁 및 정치권 로비 의혹의 ‘최종 결재자’로 지목된 한학자 통일교 총재에 대해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한 총재가 특검의 세 차례 소환조사 통보에 불응하다 자진출석해 조사를 받은 지 하루 만이다.
특검은 이날 오전 한 총재에 대해 정치자금법·청탁금지법 위반, 업무상 횡령, 증거인멸교사 등 4가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한 총재는 ‘통일교 교인 국민의힘 집단 입당 가입 의혹’과 관련해 정당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지만,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 등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이번 구속영장에는 이 혐의를 담지 않았다고 특검은 설명했다.
특검은 한 총재의 전 비서실장인 정모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씨도 한 총재와 같은 5가지 혐의를 받는데, 마찬가지로 이번 구속영장 청구에서 정당법 위반 혐의는 제외했다. 정씨는 지난달 8일 처음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한 달여 만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로써 통일교 청탁 및 로비 의혹을 주도한 통일교 지도부 모두 구속 기로에 서게 됐다. 한 총재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오는 22일 오후 1시30분 열린다. 정씨는 같은 날 오후 4시부터 심문을 받는다.
한 총재는 2022년 1월 통일교의 민원 청탁 및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원을 대가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전달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을 받는다. 통일교 자금으로 국민의힘 광역시도당 등에 총 2억1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도 있다. 이들 사건에서 정씨는 공범 관계다.
한 총재와 정씨는 2022년 4~7월 통일교의 각종 민원 해결을 위해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 ‘8000만원대 청탁용 선물’을 전달한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도 받는다. 특검은 이 두 사람이 권 의원과 김 여사에게 전달한 금품을 마련하는 데 통일교 자금을 썼다고 보고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2022년 10월 권 의원이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 윤영호씨에게 전한 한 총재 등의 미국 원정도박 수사 소식을 듣고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있다.
특검은 지난 16일 권 의원의 신병을 확보한 데 이어 다음 날인 17일 한 총재를 조사했다. 애초 특검이 한 총재를 소환하려고 한 날짜는 지난 8일이었다. 그러나 한 총재가 특검 조사를 앞두고 돌연 병원에 입원해 심장 시술을 받으면서 조사가 미뤄졌다. 그러다 권 의원의 영장 심사가 진행된 지난 16일에야 한 총재는 “17일 자진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특검은 한 총재가 권 의원에 대한 구속여부 결정을 지켜본 후 임의로 출석날짜를 정했다고 보고,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등을 이유로 이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통일교 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한 총재는 부정맥이 재발해 생명의 위태로움이 있었음에도 특검의 출석요구에 당당히 자진 출석해 필요한 모든 대답을 했다”며 “그런데도 도주 우려와 증거인멸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특검이 법이 아닌 여론과 실적을 의식한 조치로 보이고, 국제적 종교지도자에 대한 부당한 탄압이다”고 밝혔다.
권 의원은 이날 구속 이후 첫 소환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권 의원이 2022년 2~3월 경기 가평에 있는 통일교 천정궁에서 한 총재를 만나 현금이 든 쇼핑백을 받았다는 의혹, 2022년 10월 한 총재 등의 미국 원정도박 경찰 수사 정보를 통일교 측에 제공해 증거인멸 등 수사에 대비하도록 했다는 추가 의혹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대해 대통령실이 하루 만에 명확히 선을 그으면서 검찰개혁 후속 입법을 두고 벌인 주도권 싸움에 이어 여당과 대통령실 간 이견이 또다시 노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은 지지층 여론을 존중해야 하는 여당과 전체 국민을 아울러야 하는 대통령실의 입장 차이 때문에 민감한 사안에서 이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당·대 간 이견을 어떻게 조율하는지가 향후 국정운영 안정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통령실의 선 긋기는 조 대법원장 거취와 관련한 당·대 간 공감대가 사실상 없었다고 시인한 셈이다.
당·대 간 온도 차는 앞서 검찰개혁 후속 입법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를 두고도 드러났다. 지난 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는 검찰개혁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국무총리실 산하 ‘범정부 검찰제도개혁 태스크포스(TF)’ 구성을 두고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과 정 대표 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우 수석이 발표문에 TF 성격과 관련해 ‘정부가 주도하여’라는 문구를 포함하자고 제안하자, 정 대표가 ‘총리실 산하와 중복된 의미’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대 간 의견 조율 미비를 지적하는 질문에 “일정한 패턴이 형성됐다”며 “계속 경험하게 될 새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이 ‘추석 전 검찰청 폐지’처럼 강도 높은 개혁 과제의 시점을 먼저 제시하고 관련 작업에 착수하면, 대통령실에서 사실상 속도 조절에 나서는 최근의 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민생·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장 사퇴 등 당에서 새롭게 띄운 이슈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숨기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통령실의 입장에 당이 반응하는 것이 우선이던 시절이 있었다”며 “최근에는 당에서 시작된 것에 대통령실의 입장은 어떠냐고 물어보는 패턴에 대해 좀 불편하다”고 말했다.
주요 사안을 놓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당과 대통령실이 소구하는 지지층 차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당원들을 주요 지지 기반으로 대표에 당선됐다. 개혁 의제나 대야 관계에 있어 당원들이 선호하는 강경 행보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여러 차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며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까지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입장 차가 민감한 사안을 다룰 때마다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관계자는 “지지층 의견을 우선 존중할 수밖에 없는 당의 스탠스와 여당 지지층뿐 아니라 야당 지지층, 중도층까지 통합 운영(고려)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실 입장이 가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당과 대통령실의) 과제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당·대는 사법·언론개혁 관련 입법과 대야 관계 설정 등을 두고 이견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정부 1년 평가 성격이 짙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과정에서 당·대 간 더 섬세한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