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크리처 지난 18일 찾아간 전북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 1033-1번지 일대.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있는 좁은 농로를 지나자 광활한 들녘이 끝없이 펼쳐졌다.
들녘은 초록빛 고구마 잎으로 뒤덮여 있다. 뒤편으로 태양광 패널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지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지만, 20년 전 이곳은 김제공항이 들어서기로 예정된 공항부지였다. 공항 건설 계획이 취소되면서 지금은 고구마와 배추를 기르는 너른 밭으로 남았다. 주민들은 그래서 이 곳을 “고구마 공항”, “배추 공항”이라 부른다.
2005년 당시 공사 현장을 지켜봤던 주민 강오석씨는(61)는“공항 건설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길래 활주로를 깔고 비행기 띄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공사가 멈추더니 결국 밭으로 변해버렸다”면서 “공사 중단으로 소음과 재산권 침해 위협에서 벗어난 점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제공항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내륙 항공 허브를 만들겠다”며 시작한 국책사업이었다. 2002년 용지 매입과 건설사 선정까지 마쳤다. 이듬해 감사원이 “수요 예측이 과장됐고, 경제성도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2008년에 사업은 공식 폐기됐고, 2023년에는 ‘공항 부지’ 용도 지정도 풀렸다. 정부가 부지 매입 등에 투입한 국비는 480억원에 달한다. 농사용으로 부지를 임대하고 현재 얻는 수입은 연 2억8800만원이다. 공항 부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밭으로 활용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사실상 방치된 이 땅에 변화가 찾아온 건 지난해 가을이다. 김제시가 서울지방항공청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부지 매입 절차에 들어가면서다. 시는 매입가로 600억원대를 예상 중이다.
시는 해당 부지 147만㎡와 주변 땅을 합쳐 총 263만㎡ 규모의 ‘지능형 농업로봇단지(전북첨단과학기술단지)’를 조성을 추진 중이다. 2026년부터 민간투자 방식으로 총 5878억원을 투입해 ‘농생명 융복합 허브’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전북도에서도 호응해 전체 부지 활용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마쳤다. 시는 ‘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및 글로벌생명경제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77조와 연계해 국가산업단지 지정도 추진 중이다. 서해영 김제시 성장전략실장은 “김제공항이 국책사업 실폐 사례로 남았지만, 이번에는 지역에서 실패를 수습해 미래 전략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다만 과제가 남았다. 국가산단 허가를 정부에서 받아야하는데, 국토교통부는 신규 산단 지정에 신중한 입장이다. 시는 대통령 공약인 ‘AI 신산업 육성’ 및 ‘국가균형발전’ 기조와의 연계를 강조하면 명분은 충분하다고 보고있다.
지역사회 내 반론도 만만찮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부지 소유권부터 정주 여건, 기업 유치 가능성까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며 “전북 도민이라면 새만금, 탄소산업, 혁신도시를 다 겪어봤다. 거창한 시작 뒤 남는 건 빈껍데기뿐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제공항은 주민 동의 없이 추진된 대표적 실패 사례였다”며 “지속 가능한 미래 전략이 되려면 행정 주도가 아닌 지역사회와의 폭넓은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이 주최하고 스포츠경향이 주관하는 2025 경향 뮤지컬콩쿠르 본선이 열린 23일 서울 강동구 호원아트홀에서 초등부 정세이가 ‘위키드’를 열창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한낮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고, 들녘이 옅은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시간. 남한강의 물결과 들판의 곡선이 맞닿는 여주 ‘강산애길’은 계절의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코스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자전거 자유여행 대표코스 60선’에도 이름을 올린 이 길은 구간마다 문화 명소와 다채로운 수목이 이어져 마치 ‘풍경의 서재’를 산책하듯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34㎞를 완주하지 않아도 괜찮다. 쉬엄쉬엄 달리며 역사의 숨결과 자연의 정취를 느끼는 것만으로 이미 값진 여정이니까.
들판 위 시 한 편 #금당천 뚝방길
남한강 국토종주길과 생태천, 우둔산 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강산애길 라이딩은 여주 여행자센터에서 시작된다. 기존 숙박시설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공공형 도미토리로, 휴식은 물론 코스 안내부터 안전장비 점검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페달을 밟아 처음 마주하는 금당천 뚝방길은 남한강 지류를 따라 조성된 자연 구간이다. 지역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도 사랑받는 이 길은 수변 생태가 유지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들꽃이 손끝에 닿을 듯 가깝다. 페달 속도에 따라 풍경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뚝방길을 조금 더 달리면 마치 흰 물감을 뿌려둔 듯한 거대한 나무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천연기념물 ‘여주 신접리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다. 여름이면 400여마리 백로들의 군무가, 가을이면 철새들의 힘찬 날갯짓이 자연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마을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를 감상하며 잠시 숨을 고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세월에 새겨진 역사 #고달사지
다시 페달을 조금 더 힘 있게 밟아볼 차례다. 주암교를 지나 산자락으로 향하면 고달사지로 오르는 굽이진 산길이 나타난다. 경사는 5~10% 수준으로, 차량이 적어 비교적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초급 라이더는 페이스를 조절하고, 중급 이상은 속도를 즐기며 오르기 좋다.
오르막 끝에 다다르면 고찰 고달사지가 나타난다. 고달사지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돼 고려 시대까지 번성한 절이다. 현재는 탑과 석등, 기단만 남아 있지만, 돌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과 불경의 흔적이 사찰이 지녔던 위엄을 보여준다. 천년의 무게와 장인의 손길이 고요히 전해진다.
산길을 내려오면 천남지구 공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남한강과 여주보를 배경으로 강바람에 흔들리는 물억새가 자연의 선율을 더한다. 강 건너편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영릉이 자리해 역사적 고즈넉함까지 느낄 수 있다. 잘 정비된 산책로와 넓은 잔디 덕분에 ‘인증샷’ 명소로도 손색없다.
예로부터 문인들이 찬미한 양섬은 ‘여주 8경’답게 깊어가는 계절의 매력을 온전히 보여준다. 고운 흙길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강과 숲, 섬이 만들어내는 느긋한 리듬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길 사이사이에는 신유박해 시기 숨었던 천주교 신자들의 추모비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의 흔적도 자리해 과거와 현재가 조용히 공존한다는 기분이 든다.
빛으로 쓰인 예술 #남한강 출렁다리
출출함을 달래고 싶다면 원도심 여주 한글시장으로 향해 보자. 세종대왕과 한글을 테마로 한 디자인이 곳곳에 배치돼 있으며 토속적인 색채와 상인의 이야기가 더해져 지역의 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여주대교를 건너 종착지인 여행자센터에 도착하면 5분 남짓 거리에 ‘특별 부록’이 기다린다. 지난 5월 개통한 남한강 출렁다리로, 총 길이 515m, 국내 최대 규모 보행자 전용 현수교다. 특히 해가 지면 미디어 파사드 조명이 켜져 석양과 어우러진 장엄한 장면을 연출한다. 개통 3개월 만에 100만명 넘게 찾은 떠오르는 명소다.
#함께 달려볼까, 여주 자전거 페스티벌
여주시는 2025년을 ‘여주 관광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여행자센터(바이크텔) 개소, 자전거 시티 투어, 자전거 관광안내자 양성 등 자전거 친화 도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9월 13일 여주시립 폰박물관 앞 잔디공원에서는 ‘2025 여주 자전거 페스티벌’이 열린다. 다인승 패밀리 자전거 체험, 유·아동 밸런스바이크 대회, 먹거리 존 등 가족과 연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경향신문이 주최하고 스포츠경향이 주관하는 2025 경향 뮤지컬콩쿠르 본선이 열린 23일 서울 강동구 호원아트홀에서 초등부 나유현이 ‘Annie’를 열창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