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할인코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이란 충돌에 대한 군사 개입 방안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유럽 정상들은 ‘불가피한 개입’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실수’ 등 엇갈린 메시지를 내놓았다. 유럽 주요국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된 이후 ‘긴장 완화는 필요하지만 이란 핵 개발에는 반대한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왔다. 유럽이 이번 국면에서 사실상 아무런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17일(현지시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 캐나다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이스라엘이 우리 모두를 위해 하는 더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공습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란 정권의 테러를 몇 달, 몇 년 더 봐야 했을 것”이라고 했다.
메르츠 총리는 “이란 정권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준비가 됐다면 군사 개입이 더는 필요 없다”면서도 “그렇지 않으면 이란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한 파괴가 의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미국의 군사 개입을 촉구한 것이다.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군사적 수단으로 이란 정권을 교체하려는 시도는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미국이 모두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이라크에서 일어난 일, 지난 10년간 리비아에서 일어난 일이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보는 사람이 있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라크는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치안이 불안정해지면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키우는 무대가 됐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축출된 후 10년 넘게 정치 공백과 내전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 역시 이날 “미국이 개입하면 중동 지역을 더 광범위한 분쟁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며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해결하는 최선책은 외교적 해법이며 유럽은 필요한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확전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선제공격을 비난하지는 않는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우려하던 차에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것이 내심 반가우면서도 이스라엘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사태를 확대할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부르쿠 오즈첼릭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하는 유럽 국가도 이란 핵 문제에선 이스라엘의 동맹이 될 수 있다면서 “다만 이스라엘이 너무 멀리 나가면 유럽의 지지는 약해질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이란 체제 붕괴에 따른 역내 혼란으로 이어진다면 유럽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럽이 이번 국면에선 영향력을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은 역사의 방관자로 남아 공동성명과 선언을 작성하는 데 능숙하지만 실질적인 사건은 파괴적인 힘을 휘두를 준비가 된 일방주의자들이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서 조기 귀국한 것은 다자주의뿐 아니라 유럽의 존재감 부재를 부각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전날 G7 정상들이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촉구하며 발표한 공동성명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동참을 설득하기 위해 이란을 더 비난하는 쪽으로 문구가 수정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후 이란 측과 접촉해온 유럽의 한 외교관은 “(유럽은) 논의에 끼지도 못했고, 당연히 동의한 적도 없는 미·이스라엘의 전략에 관한 메시지를 이란에 전달하는 신세로 전락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주문. 피고인은 무죄.”
지난 5일 법정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에게 무죄가 선고되던 순간, 이들을 대리한 조현주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법정 밖에 나가서도 노조 관계자를 껴안고 흐느끼던 그는 한동안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화물연대는 윤석열 정권 ‘노조 때리기’의 대표적인 피해자다. 2022년 11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시작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를 막겠다며 각종 수단을 동원했다.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해 현장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화시키고 수사기관도 압박을 이어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화물연대를 노조가 아닌 ‘사업자 단체’로 규정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공정위가 노조를 고발한 건 처음이었다.
2023년 8월 재판에 넘겨진 화물연대가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장장 2년이 걸렸다. 그동안 노조는 큰 타격을 입었고, 윤 전 대통령은 12·3 불법계엄으로 파면돼 정권이 바뀌었다. 조 변호사와 박연수 화물연대 기획실장은 지난 10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미 3년 전부터 계엄 상황이었다. 지금이라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 기본권을 인정한 판결이 나와서 기쁘다”고 밝혔다. 검찰은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2022년 12월2일 공정위가 서울 강서구에 있는 노조 사무실을 조사하겠다며 왔을 때 박 실장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공정위가 왜 우리를?”
화물연대는 2002년 조직됐다. 현재 조합원이 2만5000여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특수고용노동자(특고)란 불안정한 지위를 조금씩 개선해왔고, 20년 넘게 대정부 교섭을 진행하며 각종 협약도 만들었다.
박 실장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이 특고의 독특한 지위를 악용한 신종 노조 탄압 수법이라고 생각했다”며 “유죄가 나왔다면 공정위를 통해 노동법 사각지대의 노동자를 탄압하는 방식이 면죄부를 얻을 수 있어 우려가 컸다”고 전했다.
공정위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당시 파업 현장은 물론 노조의 결속력 자체가 타격을 입었다. 그전까지 아무 문제 없이 협상 테이블에 나섰던 화주들이 노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화물노동자들의 최저임금 격인 안전운임제가 사라지면서 현장 운임 수준이 급격히 떨어졌고,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과적·과속·과로를 하는 일이 늘었다.
박 실장은 “노조의 기본은 교섭과 파업인데, 윤석열 정부는 두 가지 다 탄압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크게 흔들었다”며 “공정거래법을 이용한 탄압과 업무개시명령 발동 이후 노동자들의 현장은 내내 계엄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번에 무죄 선고를 내린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박찬범 판사는 안전운임제에 대해 “최저 생계를 위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박 판사는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들이 과속·과적 등 사고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도입된 것으로, 단순히 운임을 높여달라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과 안전을 법으로 보장해달라는 취지”라면서 “그 자체로 근로조건과 직결된 것으로 구성원들이 집단으로 운송을 거부함으로써 파업을 한 것은 단체행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변호사는 “당시 안전운임제를 지키기 위해 파업한 것 자체가 근로 조건에 대한 단체행동권의 행사라고 본 첫 판결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건 혼자는 약하기 때문에 연대해서 같이 싸우기 위한 것”이라며 “그런데도 공정위와 검찰은 헌법상 보장되는 노동자의 연대를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하려 했다. 노동기본권을 위축시키려고 무리하게 현장 조사를 시도하고, 기소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실장은 “특고 노동자는 사회적 안전망이 절실하다. 이번 판결로 안전운임제 필요성과 중요성이 다시 인정됐다”며 “앞으로도 제도 확대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