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간소송변호사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든다. 먹는 일은 즐거워도 지지고 볶고 수챗구멍 닦는 일까지는 고역이다. 하물며 적게는 100명, 많게는 수천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학교급식 현장의 신역은 얼마나 고되겠는가. 기피 업종이 되어버린 학교급식 종사자들의 고충에 잔반 처리도 한몫한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의 불쾌감도 있겠으나 멀쩡한 음식을 버릴 때 마음도 무겁다. 손은 많이 가건만 학생들이 젓가락을 잘 대지 않는 나물 반찬이나 생선 요리가 종종 그렇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메뉴에서 빼어버릇하면 학교급식의 의의는 흩어진다. 학교급식은 고른 영양을 기본으로 밥, 국, 반찬 등 전통식의 골격을 갖추고 음식 경험을 넓히는 교육 행위이기 때문이다. 수학 싫다고 수학 과목을 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체급식에는 배식대에 올라가지 않는 미배식 잔식, 즉 예비식이 있다. 밥 모자라면 라면 먹자는 집밥과 학교급식의 운영 원리는 다르다. 급식 인원에 맞춰 식재료를 발주하고 혹여 결식이 발생해서는 안 되므로 음식을 바특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시험 기간에 급식을 거르거나 결석생이 많을 때는 예비식이 남는다. 코로나19 사태 때도 급작스레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며 배식대에 오르지 못한 귀한 음식들이 그대로 버려지기도 했다. 가정에서는 장바구니에 담기 힘든 최고-국내산·친환경- 식재료들로 만든 음식이 말이다.
반면 학교 밖에는 끼니가 절실한 사람이 많다.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이나 도시락에 의지해야 하는 저소득 노인들이 그렇다. 요즘처럼 불경기에는 노인들만 식사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1인 가구 청년들도 먹거리 취약계층인 경우가 많다. 노인정에서 이루어지는 공동급식도 빠듯한 예산 탓에 맛과 영양, 전문성이 학교급식에 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조리 전문가들이 만든 청결하고 영양을 갖춘 급식 예비식이 공급된다면 어떨까. 이미 미국·프랑스·일본 등에서도 급식 예비식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한식은 젖은 음식이 많아 학교 밖으로 나가 상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뜻이 아무리 좋아도 괜한 일을 벌여 덤터기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송곳처럼 먼저 뚫고 나간 주체들이 있다. 시흥시학교급식지원센터가 시작하고 뒤이어 안양·군포·의왕·과천 공동급식지원센터가 학교, 지역 복지관 등과 연계해 예비식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식중독 같은 사고 책임은 급식센터와 교육청이 지기로 하면서 부담을 덜었다. 배송은 학교에 콜드체인으로 식재료를 공급하는 전문 배송업체가 맡으니 본래 상할 염려는 거의 없었다. 배송된 음식을 복지관 직원과 봉사자들이 세척 및 회수 가능한 용기에 보기 좋게 담아 대상자들에게 제공한다. 음식만 건네는 것이 아니라 영양 및 위생 교육과 더불어 안부도 챙긴다. 이 사업은 잔반 저감사업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비단 환경·경제적 효과만 불러온 것이 아니다. 제공받은 주민들의 만족도가 매번 별 다섯 개를 찍으며, 고맙다는 인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급식 관계자들이 갖게 된 뿌듯함은 부수적 효과를 넘어 가장 큰 성과로 꼽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 학교급식 유지의 최저선인 2000명도 채 안 되는 농촌 지자체도 많다.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고령 주민은 점점 더 늘어난다. 따라서 저출생·고령화 시대에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급식을 넘어 먹거리 취약계층을 돌보는 공공급식으로의 전환은 절실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역에 기반한 ‘먹거리 통합돌봄’을 약속했다. 급식 예비식 기부사업도 하나의 사례다. 농촌만이라도 학교가 공공급식의 거점이 되는 것도 방안이다. 다만 번아웃 상태의 급식 현장에 열정까지 강제할 수는 없다. 사람과 돈, 관심의 세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먼저 현장을 돌보고 그다음에 이웃을 돌보는 것이 순리다.
인천 시내버스 노사가 7시간 넘는 조정 회의 끝에 임금·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을 타결했다.
인천시는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인천지역노조와 사측이 11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서 열린 3차 조정 회의에서 임단협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노사는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에 따른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임금을 9.3%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노조와 사측은 그동안 각각 임금 14.9% 인상안과 5.2% 인상안 등을 제시해 이견이 있었다.
지노위가 이날 중재안을 제시하고 양측이 이를 수용하면서 회의 시작 7시간여만에 합의가 이뤄졌다.
인천시는 노사 합의에 따라 올해 약 320억원의 재정을 추가로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천에서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시내버스 업체 34곳 중 자동차노련이 대표 노조인 곳은 29개 업체(버스 1707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인천시 관계자는 “노사가 상생을 위해 조금씩 양보해줘서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의 고위급 무역 협상단은 미국 유학파나 미국과 긴밀하게 얽힌 ‘미국통’은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미국 측으로부터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협상을 이끌고 있다.
허 부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오랜 측근이다. 1955년생이며 푸젠성의 농촌에서 태어난 허 부총리는 시 주석과 마찬가지로 문화대혁명 시절 농촌에서 재교육 명목의 노동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1979년 샤먼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금융학을 전공했다. 1981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시 주석이 1985년 샤먼시 부시장으로 취임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허 부총리는 샤먼시 재정국 부국장이었다. 그는 푸젠성 관료 시절부터 규율에 충실하고 실무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샤먼, 푸저우, 톈진 등지에서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성과를 내 ‘철거왕’이라고도 불렸다.
시 주석은 집권 후 일대일로 프로젝트 책임자로 허 부총리를 낙점하고 2014년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부주임으로 임명했다. 허 부총리는 2017년 발개위 주임으로 승진했으며, 2022년에는 중국공산당 서열 24위 이내로 구성되는 정치국 위원이 됐다. 시 주석의 해외 순방마다 동행했다고 전해진다. 2023년 국무원 부총리가 돼 거시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영어를 잘 못하며 해외 기업인이나 외교관들로부터는 매력적 화술이나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한 투자유치 행사에서 그를 만난 해외 기업인은 “인공지능(AI)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점은 단점 아닌 강점으로도 인식됐다. 야심을 품지 않고 시 주석의 경제 철학을 충직하게 실현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버드 박사 출신이자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 무역협상을 이끌었던 류허 전 부총리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류 전 부총리는 개방을 중시하는 개혁주의자이지만, 허 부총리는 ‘대외 개방이 당의 통제력이나 국내 정치 안정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해진다.
최근에는 화법이 부드럽고 세련돼졌다고 평가도 나왔으며, ‘해결사’ 역할을 잘 해내 해외 기업인들이 앞다퉈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이 됐다. 시 주석의 신뢰를 전폭적으로 받고 있다는 점이 협상가로서 큰 무기다.
왕원타오 상무부장은 지난달 제네바 협상에는 불참했으나 런던 협상에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 미국 협상단에 포함되자 맞상대로 테이블에 앉았다.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지휘하는 인물이다.
왕 부장은 1964년 장쑤성 난퉁에서 태어났으며 1985년 상하이 푸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마카오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상하이에서 주로 공직경력을 쌓았다. 시야가 넓고 일을 시원시원하게 처리하는 ‘상하이 스타일 공무원’으로 불린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키와 목소리가 크고 힘과 속도로 일을 처리한다”는 평가가 있다.
왕 부장은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중국의 부유한 지역에서 보냈지만 2018~2020년 헤이룽장성 성장을 지내면서 인구 유출과 산업 쇠퇴, 투자 부진 등의 문제와 씨름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투자 유치 성과를 냈다고 전해진다.
통상 관련 경험이 없었지만 2020년 상무부장에 임명됐다. 중국이 미국과의 1차 무역전쟁을 마무리하고 대미 의존 탈피, 내수확대 등의 후속 전략을 세우던 시기다. 지난해 유럽연합(EU)과의 자동차 관세 분쟁을 거치면서 대외 협상 경험을 축적했다.
리청강 상무부 국제무역담판대표 겸 부부장은 지난 4월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던 무렵 돌연 통상대표로 임명됐다. 1967년 안후이성 타이후에서 태어났으며 베이징대 법학과 거쳐 독일 함부르크대학교에서 법학과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협상팀 내 유일한 유학파다.
리 대표는 협상팀 내 유일한 ‘통상전문관료’이기도 하다. 세계무역기구(WTO) 중국 대사를 지냈고 상무부에서 수십년간 국제 협상을 맡아왔다. 트럼프 1기 때는 상무부 부장조리(차관보급)로 있었다. 세련된 매너로 해외 통상 관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제네바와 런던에서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해 언론에 설명하는 일도 주로 리 대표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