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 과정 이란 핵시설을 겨누면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이 핵심 에너지 시설 등으로 공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사흘째 이어지는 이란과 이스라엘 간 충돌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미국이나 걸프 국가가 휘말려 ‘5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15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이란 수도 테헤란에 있는 이란 국방부 건물, 핵 관련 시설로 추정되는 방어혁신연구기구 건물을 공격했다. 전날엔 이란 최대 가스시설인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샤란 정유저장소 등 에너지 시설에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지난 13일 이란의 나탄즈 핵 시설을 공격한 데 이어 공습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연설에서 “(지금까지 공습은) 앞으로 이란이 직면하게 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작전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CNN은 미 백악관 및 이스라엘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이 몇주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이란 정권의 전복을 노리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스라엘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측근인 군 수뇌부와 핵 과학자를 표적으로 삼은 것을 보면 지휘체계를 뒤흔들어 이란 정권의 안정성을 해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BBC 등은 분석했다.
이란은 즉각 보복에 나섰지만, 선택지가 마땅치 않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미국과의 협상으로 복귀해 핵 문제를 합의할 경우 ‘굴욕’으로 비쳐 지지 기반인 강경파 반발이 불거질 것이 뻔하며, 이스라엘을 상대로 반격을 이어가기엔 이미 군사력이 상당 부분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BBC는 이란이 예멘 후티 반군 등 대리 세력을 통하거나 중동 내 배치된 미군 부대 등 미국의 시설과 인력을 직접 타격할 수도 있다며, 이는 미국이 직접 개입할 가능성을 키우고 중동 정세는 급변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승산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중동 내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도 있다.
이란이 당장은 협상으로 복귀하는 모양새를 취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오히려 핵무장 명분을 강화하고 이란 내 강경파의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란이 사우디 등 트럼프 정부와 소통이 가능한 걸프 국가와 접촉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엘리 제란마예 유럽외교협회(ECFR) 이란 전문가는 뉴욕타임스(NYT)에 “이란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한 후 체면을 살리고 적당한 선에서 상황을 마무리할 방안을 모색하려 할 것”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무기 개발 징후가 없다”는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DNI)의 보고를 일축하고 핵 협상 대신 군사적 개입 쪽으로 대이란 정책의 무게중심을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을 단축하고 귀국하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취재진이 개버드 국장의 의회 증언을 거론하며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얼마나 가까이 왔다고 보느냐고 묻자 “그녀가 말한 것은 상관없다. 나는 이란이 곧 핵무기를 갖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25일 개버드 국장은 연방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정보당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한다”며 “이란 최고지도자는 그가 2003년 중단시킨 핵무기 프로그램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개버드 국장은 다만 “이란의 농축 우라늄 비축량은 핵무기가 없는 국가로는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국가정보국장실은 이스라엘이 ‘일어서는 사자’ 작전을 감행하기 직전 이란의 기폭장치 실험 재개와 관련해 미국에 제공한 첩보에 대해서도 “핵무기 제조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의도와 배치되는 정보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2003년 당시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결정을 떠올리게 한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내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는 정보를 무시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그나마 부시 전 대통령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에게 위성사진과 오디오 녹음파일을 들려 보내 유엔을 설득하려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단계를 건너뛰고 본능에만 의거해 결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의 불필요한 대외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인사들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고립주의자로 꼽히는 개버드 국장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을 뒤집었다. 그는 이날 상원 비공개 청문회에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내가 지난 3월 의회에서 말한 것과 같은 내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