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폰테크 말할 수 있는 빚이 있고, 말할 수 없는 빚이 있다. 말할 수 있는 빚은 ‘반은 은행 거야’라는 말로 자신의 집을 소개하거나, 운영에 부침을 겪는 업주가 희망을 찾을 때의 것이다. 겸손하고, 성실하고, 명예롭다. 반면 말할 수 없는 빚은 말해진 적 없기에 예를 들 수가 없다. 생존이나 중독에서 기인했을 것이라 짐작할 뿐. 숨기고 감추느라 어둠 속에서 축축해진 그것들의 이미지는 오만하고, 나태하고, 굴욕적이다.
말할 수 없는 빚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나는 지극히 사적인 채무에 대해서만 말하자고 다짐했다. 병든 몸으로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얻은 괴로운 부채,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야 했던 슬픈 밤, 빚을 갚으며 많은 사람들이 내게 내어준 손과 품 같은 것을. 내게 빚은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수치스러운 절망이었고, 그 고립된 언어로 나는 나 자신을 회복시키는 글을 쓰고자 했다.
그러나 나의 부채감이 내가 속한 사회와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글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국회 앞에 장갑차가 등장했던 어느 겨울 이후의 글쓰기는 더더욱 그랬다.
악보다 위선이 더 나쁜 것이라 외치는 이들의 폭주에 어떤 상황에서도 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맞섰다. 그 싸움판 안에서 나는 채무자일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부채를 안기는 대부업자가 되기도, 누군가에겐 빚을 갚으라 고함치는 추심업자가 되기도 했다.
빚에도 얼굴이 있다면
어떤 빚은 종종 죄로 환원된다. 사람들은 대개 빚을 지고 갚지 못하는 이들의 사정을 공적인 문제로 확대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 질병과 사고로 인해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중독과 탈선으로 스스로 삶을 망가뜨린 사람들은 빚을 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무능하고 방탕한 존재가 된다.
세상은 이들의 고통을 당연한 불행으로 여기고, 이들의 실패는 개인의 불찰로 축소하여 재기의 기회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최근 정부는 113만명의 장기 연체 채무를 탕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상환 능력을 상실한 장기 연체자의 빚을 전액 탕감하고, 자영업자에겐 원금의 90%까지 감면하는 방안이다. 정책의 내용이 알려지자 곧바로 반발이 일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주장, 채무에 관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비난, 빚 갚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세상이라는 푸념까지. 낯설지 않았다.
정부의 탕감 조건은 ‘연체 기록 7년 이상, 연체 금액 5000만원 이하의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채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성실히 갚은 사람에 대한 배신’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채무조정은 이미 빚을 갚은 이들에게 상실감을 주거나 공정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채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는 언제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채무의 고통을, 죄가 아닌 상황으로 규정하며 재기의 가능성을 만드는 최소한의 방안이다.
일기의 마지막 장
“대출금을 갚았어요. 신용점수가 올랐는지 확인하세요!” 병실에 앉아 금융 앱에서 보낸 메시지를 읽는다. 명랑한 메신저 알림음은 이자만큼 늘어나던 삶의 무게를 가볍게 비웃는다. 제일 힘들었을 때는 잠만 자고 싶었다. 말없이 잠들고, 가능하면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그 감정들을 언어로 옮기고 싶었다. 나의 슬픔과 억울함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동안엔 부채만 늘었다. 글을 연재하는 내내 마감을 제때 지키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기한을 멋대로 어기며 죄송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빚을 진 경험을 쓰면서 동시에 빚을 지는 나는 얼마나 오만하고 나태하며 굴욕적인가. 어떤 문장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병이 재발하는 기분이었다. 채무를 쓴다는 게 나를 회복시키기는커녕 더욱 고립시키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을 결코 멈추지 못했다. 의무감이나 책임감 때문이 아니라, 일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자괴감, 더 나아갈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그 두 개의 감정은 마치 채무의 고통과 같았다. 자괴감과 무력감에서 동력을 얻다니, 어쩌면 나는 채무의 고통에 중독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이 끝없이 빚을 지고 갚는 과정이라면,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고통에 적응해야 하고 그 불완전한 상태를 긍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악담을 써서 건넨다. 부디 당신에게도 채무가, 채무의 고통이 찾아들기를. 고통과 삶을 단단하게 묶어줄 빚이 찾아오기를.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신임 원내대표, 제1야당인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송언석 신임 원내대표와 오찬회동을 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8일 만이다. 의제를 정하지 않은 상견례 성격의 자리였지만 1시간45분간 국정 현안을 두고 격의 없는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모두발언에서 김민석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추경 편성, 사법부 독립 등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 대통령 재판과 관련된 입법은 하지 않을 것, 재임 중 재판 진행 여부는 사법부 판단에 맡길 것, 임기 중 재판 중단 시 퇴임 후 재판받을 것을 약속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송 원내대표는 김 후보자가 국회 인준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며 “이런 분이 총리가 된다면 여야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심사숙고하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김 후보자 문제와 관련해 “청문회 과정에서 본인의 해명을 지켜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또 가족 신상을 문제 삼는 분위기 때문에 능력 있는 이들이 입각을 꺼린다면서 국정운영 역량 검증과 도덕성 검증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당 입장에 공감한다고 했다. 자신의 재판 문제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체로 원론적인 답변을 한 셈이다.
이 대통령과 양당 지도부는 무엇보다 국익이 걸린 외교·안보에서 협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참석 결과를 전하면서 “대외 문제에 관한 건 잘 조율해서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비대위원장도 “여·야·정이 지혜를 모아 외교·안보·통상에서 국익을 실현하는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했다. 지금 같은 국제질서 격변기에 정치 지도자들이 응당 보여야 할 자세이다.
전임 윤석열 정부 3년간 대통령과 야당의 대화는 완전히 끊어졌다. 대통령은 야당을 적대시했고, 그런 인식이 비상계엄으로 표출됐다. 윤석열 탄핵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안 돼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만나 협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자주 소통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출발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의견 차이가 없을 순 없으나 국익과 민생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꾸준히 소통하며 공통점을 찾아 협치 기반을 넓혀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