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교착상태에 빠진 세계무역기구(WTO)를 대체할 새로운 자유무역체계 구축을 추진에 나섰다. 세계 경제의 15%를 차지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합류 가능성을 열어둔 점에 눈에 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 정상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WTO 대체기구 설립을 제안한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면서 “회원국들에 자유무역을 원하는 여러 국가와 할 수 있는 여러 옵션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 입장에서 가장 매력적이며 흥미로운 부분은 CPTPP”라면서 “(가입국인) 아시아 국가들이 EU와 구조적 협력을 희망하고 있으며, EU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것은 WTO를 재설계하는 것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면서 WTO 내의 개혁도 필요하겠지만 WTO의 ‘오류’에서 교훈을 얻고 규범에 기반한 자유무역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CPTPP와 EU가 함께라면 막강할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CPTPP는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칠레,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태 지역 11개국이 참여해 2018년 출범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지난해 말 영국이 정식 가입하며 현재 총 12개국이 회원국이다. 한국은 가입국이 아니다.
WTO는 1995년 1월 1일 공식 출범해 국제 무역질서 확립과 분쟁 중재를 목표로 활동해왔지만, 2019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분쟁 해결 기구인 상소기구의 위원 임명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분쟁 조정 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불법사업장의 세공노동자고용보험 사각지대 내몰려“정부가 실태조사 해달라”
“여기 좀 봐주십시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내정자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던 길, 마침 농성 중이던 김정봉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부지회장이 외쳤다. 김 내정자가 다가갔다. 김 부지회장은 “주얼리 제조 노동자들은 고용보험 의무 가입자임에도 70~80%가 미가입자”라며 “업체들이 근로기준법만 제대로 지키게 해달라”고 했다. 그는 ‘불법 사업장’이 방치되지 않도록 노동부의 근로감독과 실태조사를 촉구했다. 김 내정자는 “자료를 살펴보고 (노동부) 간부들과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고민해서 토론해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귀금속 세공노동자인 김 부지회장은 25일 통화에서 “장관 내정자가 올 줄 알고 기다렸던 게 아니라 매일 오후 4시 <전태일 평전> 읽기를 한다. 마침 내정자가 출근한다는 소식을 듣고 요구사항을 외친 것”이라고 했다. 김 부지회장 등은 13일째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정부의 근로감독을 촉구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김 부지회장은 2018년에도 정의당 노동본부장이던 김 내정자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정의당과 노조는 함께 ‘화려한 귀금속 뒤의 갑질, 종로 귀금속 세공노동자 간담회’를 열었다. 노조는 당시 귀금속 세공노동자들이 화공약품에 노출되고, 작은 사업장들이 노동법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문제를 호소했다. 김 부지회장은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김 부지회장은 지난 1월 해고됐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5월 원직복직 명령이 담긴 판정서를 수령했지만 회사가 폐업하며 돌아갈 일터가 사라졌다. 회사 대표는 밤새 문서를 파쇄하고 기습 이사를 시도했다.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한 시민들이 이를 막아 이사는 막을 수 있었지만 대표는 결국 며칠 후 폐업 신고를 마쳤다. 이후 노동자들에게 퇴직금도 주지 않은 채 해외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용노동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노조와 사업주 면담 자리를 주선하라는 요구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부지회장은 세공노동자 같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겪는 부당해고, 4대 보험 미가입 등 부당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싸우고 있다. 청산가리, 황산 같은 화공약품이나 높은 열을 다루는 위험한 작업환경을 안전하게 개선하는 것도 목표다.
노조 설문조사 결과 100개 넘는 사업장에서 고용보험 미가입 등 근로기준법을 어긴 사례가 나왔다.
김 부지회장이 바라는 것은 복직이나 보상이 아니다. 그는 “‘불법 사업장’이 방치되고 있으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는 것”이라며 “작은 사업장들은 노동자들이 해결하기 어려우니 정부가 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해 나서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실태조사가 시급하다고 했다. 그는 “업계가 노동법을 지킬 수 있게 조사해달라는 것”이라며 “전수조사가 힘들면 귀금속 골목의 일정 블록이라도 조사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김 부지회장은 “노동자 출신 장관 내정자가 왔으니 ‘있는 노동법’을 지킬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2018년 간담회도 함께했고 우리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니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문제를 풀어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인간, AI, 인체·정신증강인…100년 뒤엔 새로운 인류 출현인간 존재·역할 부조화 대비인본주의 사상 더 탄탄히 해야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25일 네 종류의 인류가 공존하는 사회를 ‘휴머니즘 2.0’으로 명명하고 “사상이 도구를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연인간과 유전자 편집된 인체증강인, 바이오닉스를 통한 정신증강인, 인공지능(AI)을 공존해야 할 인류로 꼽았다.
이 총장은 이날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5 경향포럼>에서 “휴머니즘 2.0은 우리가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장은 “인문학, 인본주의 사상을 탄탄하게 하고 도구를 통제하는 기술과 제도를 만들며 국제사회와 공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21세기 ‘새로운 도구’로는 유전자가위·줄기세포와 AI, 바이오닉스를 꼽았다. 이 총장은 “AI가 나타나면서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면서 “새로운 질서를 뒷받침하는 사상, 우리의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장은 “100년 후 인간은 현재 존재하는 인류와 달라져 있을 것”이라며 “인간의 역할과 위상 등을 두고 존재론적 질문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재는 인간의 존재와 역할이 일치하는 시대로 ‘문명의 주인’ 역할을 하지만, 앞으로는 인간이 존재와 사유의 주체이되 역할이 사라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AI로 인간의 존재와 역할이 부조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AI로 기존 질서가 재편되는 사례로 일자리 문제를 꼽았다. 이 총장은 “AI가 대신 열심히 잘하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를 줄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며 “일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우리의 노력에 따라 혁명적으로 큰 전환이 될 수 있다”며 AI 발전에 따른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이 총장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인구가 줄고 있어 걱정이 많지만 AI가 해결해줄 것”이라며 “AI를 이용해 노동생산성을 올리면 제조업을 다시 살릴 수 있고, AI를 잘 활용하면 인구 감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미래학자로 카이스트에서 다학제적 연구와 교육 활동을 이어왔다. 서울대에서 학사 과정을 마친 뒤 1980년 카이스트에서 산업공학 석사를 취득하고, 프랑스 국립응용과학원(INSA Lyon)에서 전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했다.
이 총장은 기업가 정신과 스타트업을 중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넥슨, 아이디스, 네오위즈, 올라웍스 등 카이스트 1세대 창업가들을 지도해왔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된 TV 드라마 <카이스트> 속 괴짜 교수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