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도로에 가로등이 일제히 켜진다. 바다가 밀려가고 쓸려온다. 해협을 훑고 간 빛이 내 방 오래된 거울에 쏟아진다. 작년 여름 같은 거울에 조금 다른 빛이 걸려 넘어졌다. 그런 데서 시간을 알아차리게 된다. 우리는 어딘가로 흐르고 있다.
어젯밤에도 같은 꿈을 꿨다. 그 문턱에서 나는 매번 고꾸라진다. 어떤 시간은 실패다. 나를 비집고 나와 밤을 팽창하는 실패들.
시간을 다르게 감각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지난 몇 주를 보냈다.
“나는 그림이 시간을 요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에나에서의 한 달>을 쓴 히샴 마타르는 하루에 단 하나의 그림만 감상한다. 매일 같은 작품 앞에서 몇 시간씩 보낸다. 계속 처음 보는 사람처럼 히샴은 새 질문을 길어 올린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그의 눈길이 도착한다. 이제는 다른 그림으로 옮겨가기까지 서너 달은 기본이고 일 년이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말한다.
시간만큼이나 풍경도 속도가 다르다. 뮤지션 여유와 설빈이 부르는 노래는 떠나온 자리를 응시한다. 내 것이었던 동네와 의자, 사람과 폭죽을 오래 쓰다듬는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오직 나만 아는 그 불빛이 나를 비추네/ 그래 나는 너무 어린 나를 돌보지 않았어/ 더는 불가능한 길을 따라 달리고 있네.”
두 목소리가 교차하는 걸 듣고 있으면, 시간이 한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몸으로 속해 있던 거대한 하나의 협곡. 거대한 하나의 바다. 그 안에 머무는 풍경이 수천 개 조약돌로 쪼개진다.
시간의 목격자들은 다 다르게 증언한다. 시간은 시소라고 한다. 고장 난 티브이라고 한다. 맑은 바람이 지나는 들판이고 노래라고 한다. 그런 우리도 언젠가는 비슷한 찰나를 경험할 텐데, 여유와 설빈 두 사람 음성으로 그 장면을 알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을 잃었네.”
시간의 목격자들은 불꽃의 안부를 묻는다. 불꽃이 꺼지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꺼져가는 것들 사이에서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서일 거다.
울산 HD 골키퍼 조현우(오른쪽)가 26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TQL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조별리그 F조 도르트문트(독일)와의 최종전에서 몸을 날려 공을 막고 있다. 이미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울산은 이날도 0-1로 져 3전 전패로 승점 없이 대회를 마쳤으나 조현우는 이번 대회 한 경기 최다인 10차례 슈퍼세이브를 기록하며 찬사를 받았다.
<신시내티 | AP연합뉴스>
울산 HD 골키퍼 조현우(오른쪽)가 26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TQL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조별리그 F조 도르트문트(독일)와의 최종전에서 몸을 날려 공을 막고 있다. 이미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울산은 이날도 0-1로 져 3전 전패로 승점 없이 대회를 마쳤으나 조현우는 이번 대회 한 경기 최다인 10차례 슈퍼세이브를 기록하며 찬사를 받았다.
<신시내티 | AP연합뉴스>
네, 자폐 맞고요 코미디언도 맞습니다마이클 매크리어리 지음 | 박신영 옮김롤러코스터 | 224쪽 | 1만6800원
캐나다의 자폐 스펙트럼 코미디언 마이클 매크리어리의 자전적 에세이다. 다섯 살에 부모님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가서 자폐 진단을 받았던 일부터 코미디언으로서 무대에 서는 과정까지 그가 삶을 통해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담겨있다.
“(자폐 진단 후 내가) 혹시라도 왕따가 되진 않을지 걱정이 된 부모님은 내게 남들처럼 행동하는 법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줘야 한다는 것과 예의상 거짓말이 필요한 때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욕을 삼가며, 남들에게 바싹 붙어 서지 말고, 남이 얘기할 때는 하던 말을 멈추고 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이 모든 걸 다 배운 후 드디어 학교에 갔고, 나 말고 이런 걸 배우고 온 애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놀림이나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자폐인으로서 다른 사람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상대방이 날 바보라고 놀리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으면 난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인데 지금 장난을 치는 거구나.” 상대방이 자신과 놀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조롱하고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그는 “오히려 관객 앞에 설 때 엄청나게 안심한다. 관객들은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반응을 바로바로 보여주니까.”
무대는 그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된다. 그는 무대에서 자신의 불안과 초조를 코미디로 표현한다. 지금도 종종 들려오는 ‘자폐와 코미디가 그리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다’라는 말들에는 이렇게 답한다. “코미디라는 게 원래 금기를 깨고 사람들이 말하기 껄끄러워하는 주제를 양지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지 않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