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변호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두번째 신형 구축함 진수식 연설에서 한국을 향한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4월 진수식 연설에서 한반도 긴장 고조의 원인으로 한국을 지목한 것과는 대비된다. 정부가 최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선제적으로 중지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라진조선소에서 열린 해군 구축함 ‘강건함’의 진수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을 진행했다고 노동신문이 1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해군력 강화 의지를 재차 드러내면서 그 근거로 주변 정세와 관련한 자신의 평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우리 국가의 안전환경은 핵전쟁을 유발시킬 수 있는 적들의 모험적인 군사력 시위 행위”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위태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들어 미국과 추종 국가 군대의 도발적 흉심은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라며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수는 분명히 위험 한계를 훨씬 넘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침략적인 상대에 대해 비등된 힘으로써 매사 반사적으로 반응할 것”이라며 “압도적인 군사적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기존 북한의 시각과 유사하다.
김 위원장이 말한 ‘추종 국가’에 한국이 포함될 수 있으나, 한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25일 최현함 진수식 연설에서는 한국을 여러 차례 거론하며 한반도 긴장 고조의 책임을 한·미에 돌렸다. “핵전쟁을 현실화하려는 미국과 한국의 사전 준비가 가장 엄중한 단계에 접어든 상황”, “미·한의 새로운 핵전쟁 계획” 등 내용이다.
한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이런 연설 내용 변화에 주목했다. 장윤정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지난 4월 진수식 연설에서는 ‘한국, 한국군, 미·한’ 등이 9차례 나왔다”라며 “반면 이번 연설에서는 관련 언급이 없었다”고 밝혔다. 장 부대변인은 그 배경을 두고는 “예단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11일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 중지했고, 북한도 전날부터 대남 방송을 멈췄다. 통일부는 “최근 새 정부 출범 이후 변화된 한반도·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한 신중한 메시지 관리 가능성 차원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이날 강건함이 지난 4월 진수한 ‘최현함’과 동일한 “초강력의 신형 다목적 구축함”이라고 밝혔다. 최현함은 5000t급으로 ‘북한판 이지스 구축함’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장착된 레이더 등 주요 장비의 외형이 러시아의 그것과 유사해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진수식 연설에서 “이런 전함을 순수 자력으로 건조해내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몇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이날 강건함을 내년 중반쯤 해군에 인도할 예정이라고 했다. 강건은 빨치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때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고, 정권 수립 후 초대 인민군 총참모장 겸 민족보위성 부상을 지낸 인물이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예상치 못한 황당한 사고로 당황실색했던 일도 있었지만” 계획대로 “완전한 복구를 결속지었다”고 밝혔다. 강건함은 지난달 21일 청진조선소에서 열린 진수식 과정에서 바다에 쓰러졌다. 현장에서 사고를 목격한 김 위원장은 “심각한 중대 사고이며 범죄적 행위”라며 관련자 처벌과 함정 수리 등을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사실도 공개했다. 그는 ‘청진조선소 현대화직장 제관1작업반장 조금혁’이 순직했다며 “조국은 그의 참다운 생애에 두고두고 감사하고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 행사에 그의 아내와 아들이 참가했을 것”이라며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면서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을 수여하겠다고 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구축함 진수를 당 정책 관철의 구체적 성과로 제시해 김 위원장의 리더십과 체제의 과학성을 부각하려는 것”이라며 “내부 결속과 대외 신뢰도를 높이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최현급이나 그 이상급의 구축함을 매년 두척씩 건조할 예정이라며 “새세대 전투함선들은 해군의 작전 범위와 작전 능력을 전략적인 수준으로 향상시키게 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1년 반도 채 안되는 짧은 기간에 두 척”을 건조했다고 주장하며 “경이적인 사변”이라고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상 구축함 건조는 미국 8~9년, 중국 6년, 가장 빠른 한국도 2~3년이 걸린다”라며 “얼마나 능력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향후 시험사격과 통합운용시험 등을 통해 기술 수준을 가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신문이 이날 공개한 사진을 보면 해군사령관이 김명식 대장에서 박광섭 상장(중장)으로 교체됐다. 진수식 실패 책임을 물어 김 대장을 경질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진수식에는 김 위원장의 딸 주애가 동행했다. 노광철 국방상, 김정식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김광혁 공군사령관, 김용환 국방과학원장, 최선희 외무상, 조용원 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도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