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 저신용자 군사 사상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적을 굴복시키는 폭력행위”라고 정의했다. 욕망에 기반한 감정을 내세워 적과 아군으로 나눠 싸움을 일으키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아마도 인간 존재는 기본적으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성의 철학자 칸트 또한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고, 국가가 해야 할 최고의 정치적 선은 영원한 평화 수립이라 했으며, <영구평화론>이라는 책을 쓰기까지 했다. 전쟁은 정치적 도구라는 말은 그저 수사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인간의 추악한 모든 면을 발산하는 지옥에 다름 아니다.
분단 80주년, 6·25전쟁 75주년이다. 미국이 기획하고 소련이 묵인한 한반도 분단은 해방과 동시에 이뤄졌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질서를 모색한 카이로 선언, 얄타 회담, 포츠담 선언에 한반도 백성은 어떠한 발언권도 없었다. 모스크바의 미·영·소 삼상회의에서 결정한 신탁통치안도 우리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다. 결과는 남북한 사망자 약 300만명, 부상자 약 500만명, 이산가족 1000여만명이었다. 정전 후 남북은 군비를 확장하고, 여전히 100만명 이상의 군인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이 전쟁으로 냉전은 심화되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무장을 가속화시켰다.
6·25전쟁에 대한 원인 분석은 각양각색이다. 남북한은 각각 남침·북침을 주장하고, 학자들은 미·일 강화조약 및 반공동맹 견제와 세계 적화를 위한 스탈린의 결정이라는 전통주의, 북한의 남침을 유도한 미국의 전략이라는 수정주의로 나뉘었다. 북한·중국·소련의 공모였다는 신정통주의, 조선시대부터 쌓여온 계급갈등이 표면화되었다는 신수정주의도 있다. 이는 관련국들의 자료가 점차 공개되면서 바라보는 시각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대체로 미·소의 냉전, 한국 내부의 좌우 대립, 정책 결정자들의 오판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한 복합적 성격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분단과 정전 후 남북한은 각자의 길을 갔다. 남한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독재와 군사정권, 민주주의의 길을 걸어왔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선택하고 권력 세습국가로 가고 있다. 한국 사회는 흡사 1954년 발표된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 대왕>의 풍경을 보여준다. 핵전쟁 후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이 벌이는 사회상이다. 등장인물이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가치 수호에 대한 권력지향 본능의 폭주, 이성과 문명을 향한 야만과 광기의 대립, 무지와 맹목성을 계몽하고자 하는 선지자적 열정 등은 마치 전후 이 나라의 모습을 예견한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거대한 불안이 한반도를 덮치고 있음을 느낀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 이스라엘·미국의 이란 폭격은 세계가 무정부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 약육강식 세계는 고슴도치처럼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냉전은 이념이 문제였지만 이제는 실리라는 이름의 욕망 외에는 없다. 불타나 묵자처럼 세계 연결성을 강조하는 것보다 헤라클레이토스나 헤겔처럼 세상을 대립·투쟁 관계로 보는 시각이 확대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고 한 말에 공감한다. 우리가 더 자유롭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 근본 모순인 남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새 정권이 종전·평화 협정 체결을 한다면 역사적 업적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쟁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미국과 러시아에 분단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그들이 우리를 맘대로 유린했어도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국제적 패싸움의 대리전으로 남북한 모두 희생양이 되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우리 자신이 먼저 북한을 감싸안을 수 있는 도량을 갖춰야 한다.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설사 통일이 되어도 마음의 분단은 여전할 것이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대의를 명확히 세우고, 구체적인 한반도 평화 로드맵 위에 국민들도 직접 참여해 오랜 아픔을 함께 치유했으면 한다. 이제 남북의 우리가 결단할 때다.
한산한 도로에 가로등이 일제히 켜진다. 바다가 밀려가고 쓸려온다. 해협을 훑고 간 빛이 내 방 오래된 거울에 쏟아진다. 작년 여름 같은 거울에 조금 다른 빛이 걸려 넘어졌다. 그런 데서 시간을 알아차리게 된다. 우리는 어딘가로 흐르고 있다.
어젯밤에도 같은 꿈을 꿨다. 그 문턱에서 나는 매번 고꾸라진다. 어떤 시간은 실패다. 나를 비집고 나와 밤을 팽창하는 실패들.
시간을 다르게 감각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지난 몇 주를 보냈다.
“나는 그림이 시간을 요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에나에서의 한 달>을 쓴 히샴 마타르는 하루에 단 하나의 그림만 감상한다. 매일 같은 작품 앞에서 몇 시간씩 보낸다. 계속 처음 보는 사람처럼 히샴은 새 질문을 길어 올린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그의 눈길이 도착한다. 이제는 다른 그림으로 옮겨가기까지 서너 달은 기본이고 일 년이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말한다.
시간만큼이나 풍경도 속도가 다르다. 뮤지션 여유와 설빈이 부르는 노래는 떠나온 자리를 응시한다. 내 것이었던 동네와 의자, 사람과 폭죽을 오래 쓰다듬는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오직 나만 아는 그 불빛이 나를 비추네/ 그래 나는 너무 어린 나를 돌보지 않았어/ 더는 불가능한 길을 따라 달리고 있네.”
두 목소리가 교차하는 걸 듣고 있으면, 시간이 한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몸으로 속해 있던 거대한 하나의 협곡. 거대한 하나의 바다. 그 안에 머무는 풍경이 수천 개 조약돌로 쪼개진다.
시간의 목격자들은 다 다르게 증언한다. 시간은 시소라고 한다. 고장 난 티브이라고 한다. 맑은 바람이 지나는 들판이고 노래라고 한다. 그런 우리도 언젠가는 비슷한 찰나를 경험할 텐데, 여유와 설빈 두 사람 음성으로 그 장면을 알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을 잃었네.”
시간의 목격자들은 불꽃의 안부를 묻는다. 불꽃이 꺼지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꺼져가는 것들 사이에서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서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