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폰테크 “밤 8시만 되면 온 동네가 깜깜했어요. 사람도, 불빛도 사라졌죠.”
지난 20일 찾아간 전북 남원시 율치마을. 조규만 통장(69)은 옛 서남대학교 운동장 한복판에 서서 한참 동안 텅 빈 건물을 바라봤다. 학생들로 오가던 이곳은 2018년 2월 서남대 폐교 이후 잡초로 뒤덮였다. 조씨는 “대학이 떠나자 마을도 함께 죽었다”고 말했다.
1991년 개교한 서남대는 한때 ‘대학도시 남원’의 상징이었다. 캠퍼스를 중심으로 원룸과 식당, 카페가 들어섰다. 하지만 재단 내부 비리와 부실 운영으로 신뢰를 잃은 학교는 결국 문을 닫았고, 지역 상권은 급속히 무너졌다. 1990년대 초 약 12만명 수준이던 남원시 인구는 올해 7만5000여 명으로 줄었다.
폐교 이후 7년간 흉물로 남아있던 옛 서남대 터에 최근들어 활기가 돌고 있다. 전북대학교가 건물과 부지 등을 활용해 ‘남원 글로컬캠퍼스’ 조성 사업에 나서면서다. 폐교 부지를 정주형 캠퍼스로 재생하는 전국 최초 사례로, 총 604억원이 사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2027년 개교를 목표로 현재 캠퍼스 재생 공사가 한창이다. 정비된 운동장과 철거된 건물 자리에는 왕벚나무와 소나무, 홍단풍 등 4000여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다. 새로 조성된 녹지와 산책로는 마을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조씨는 “이제야 다시 사람 사는 동네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남원시는 이 캠퍼스를 ‘시민과 학생이 함께 머무는 활력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폐교 부지를 선제적으로 매입했다. 공사가 중단된 건물을 철거하는 한편 도로 포장, CCTV 설치, 소하천 정비 등 환경 개선 작업도 벌였다.
캠퍼스에는 한국어학당,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공유 창업 공간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장기 체류와 지역 정착을 고려한 설계다.
2026년부터는 K-엔터테인먼트학과(정원 70명), 글로컬커머스학과(100명), 한국어학과(80명) 등 3개 학과가 신설돼, 연간 250명 이상의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할 계획이다. 유학생들은 1학년 동안 한국어와 문화, 역사 등 기초 교양을 이수한 뒤 전공을 배우기 된다. 전북대는 이 캠퍼스에 최대 1000명의 유학생 수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전국에 30곳 넘는 폐교 대학이 있지만, 지역과 함께 캠퍼스를 재생하려는 시도는 남원이 유일하다”며 “유학생이 공부와 취업, 창업, 정착까지 이어갈 수 있는 통합형 캠퍼스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공공의대 설립 논의도 탄력을 받고 있다. 폐교 당시 서남대에 있던 의대정원(49명)이 전북대와 원광대로 할당됐다. 남원시는 이 정원을 되찾아와 공공의대를 설립하자는 입장이다. 공공의대 설립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지난해 7월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남원·임실·순창)을 비롯한 국회의원 70여 명이 이 사안 관련 법안을 공동 발의한 바있다.
남원시는 공공의대가 설립되면 지역 공공의료 인력 양성과 의료서비스 개선, 나아가 정주 여건 강화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경식 남원시장은 “글로컬캠퍼스는 단순한 대학 재생이 아니라 남원의 정체성과 자존을 지키는 마지막 기회”라며 “공공의대 설립과 연계해 교육·보건·복지 인프라를 확충하고, 유학생 유치와 청년 정착까지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지역 모델을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자영업을 하는 A씨는 코로나19 때 생긴 빚으로 지난해 개인회생 절차를 밟았다. 가게 운영자금이 필요했던 A씨는 은행이나 카드사 등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웠다. 불법 사금융에 손을 댔다. 180만원을 갚는 조건으로 100만원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이자는 자꾸만 불어났다. 불법 사채를 불법 사채로, 이른바 ‘돌려막기’를 해야 했다. 불법 사채업체 22곳에서 갚아야 할 돈은 2000만원까지 불어났다.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A씨는 불법 사금융 피해를 대신 해결해준다는 민간 ‘솔루션’ 업체를 찾았다. 솔루션 업체에 수수료를 주면 빚을 갚으라는 위협을 막아준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업체는 솔루션 비용으로 돈을 빌린 사채업체 1곳당 8만원을 요구했다. 그는 지인에게 돈을 빌려 200만원 가까운 돈을 솔루션 업체에 냈다.
A씨는 솔루션 업체를 이용하면 법정 최고이자율(20%)을 넘겨 원금 이상을 이자로 낸 업자들과의 채무관계가 정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상환 기한이 일부 연장된 것 외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A씨는 “당장 급한 마음에 솔루션 업체를 이용했다”며 “돈은 돈대로 썼는데 앞으로의 상황이 막막하다”고 후회했다.
A씨 같은 불법 사금융 피해자를 돕고자 정부가 운영하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정작 급박함을 호소하는 이들의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 조력까지 열흘 이상 기다려야 하는 한계 때문이다. 일부는 사기 우려가 있는 ‘솔루션’ 업체를 이용하느라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불법 사금융 피해자와 변호사 연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는 불법 사금융업자로부터 법정 최고 금리를 초과한 대출을 받거나 불법 추심 우려 등이 있는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무료로 법률 서비스를 지원하는 제도다. 더이상 불법 사채업체에게 시달리지 않도록 정부가 해결해주는 제도다.
금융 취약계층을 노린 불법 사금융이 늘어나면서 채무자 대리인 지원 건수도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2020년만 해도 919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3096건으로 3배 이상 늘었고, 올해 6월 현재까지 이미 지난해 건수를 넘어섰다. 올해는 특히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연말까지 약 8000건에 달하는 법률 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문제는 피해자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길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채무자 대리인 신청이 접수되면 1~2일 내로 법률구조공단에 이관된다. 법률구조공단에서는 처리기한을 14일로 잡고 1차 상담을 거쳐 변호사를 배정한다. 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접수된 사건의 90%는 2주 내로 처리된다”며 “평균적으로 10~14일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최대 2주라는 기간조차 불법 사채업체에 시달리는 이들은 이 제도를 이용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장벽이라고 말한다. A씨도 이 기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신속함을 강조하는 ‘솔루션’ 업체를 찾은 것. 특히 유튜브를 비롯해 인터넷상에는 솔루션 업체들이 ‘신속처리’를 내걸고 피해자들을 현혹하는 광고가 상당하다.
해결사 역할을 해준다는 솔루션 업체 중에는 피해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곳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펜션업을 하다가 빚을 져 솔루션 업체까지 이용했던 B씨는 “채무를 종결하려면 30만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보냈는데 알고 보니 그냥 종결된 상태였다”며 “돈만 받아 간 것”이라고 말했다. 솔루션 업체들의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불법 사채와 솔루션 업체를 같이 운영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금감원은 솔루션 업체 피해를 주의하라며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피해자들이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더 쉽게 접근하고 빨리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이 시급히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불법 사금융 근절을 위한 범부처 TF를 통해 관련 사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