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토요일, 어머니와 함께 요양원에 계시는 집안 어르신 한 분을 찾아뵙기로 했다. 평생 활달했으나 아흔을 훌쩍 넘겼으니 기력은 예전만 못하실 게 분명하다. 치매나 알츠하이머는 없다지만, 기억도 그때만 못하실 것은 불문가지. 특별히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으니 공동의 기억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짧은 면회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벌써 머리가 하얗다. 그래도 피붙이니 두어 가지 이야깃거리는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토요일을 기다린다.
한 사람은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는 법인데, 그렇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그이가 걸어온 길의 흔적을 따라 잊었던 기억들을 되찾으며, 때론 안도했고 종종 행복했다. 절판되어 아쉬운 책 목록 중 단연 앞자리에 놓아둔,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노 가이거의 <유배 중인 나의 왕>은 알츠하이머로 삶의 희망을 놓아버린 아버지를 곁에서 살펴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아버지는 열일곱 나이에 나치에 징집돼 아비규환 전쟁을 겪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꿈 많던 소년이 아니었다. 까칠함과 괴팍을 넘나드는 사람이었으니 자식들조차 아버지의 적잖은 변화가 알츠하이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병은 아버지에게 ‘교묘히 눈에 띄지 않게’ 그물을 던졌다.
아버지는 “번번이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빼앗아가거나 훔쳐갔다”고 역정을 냈다. 집착도 심했다. 집 앞 자작나무가 잘 있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 물었고, 때론 저 나무가 집을 덮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평생 살아온 집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도 적잖았다.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모든 사람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부모님이 강인하고 삶이 무엇을 요구하든 의연하게 버틸 거라고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님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다.”
2015년 영화 <스틸 앨리스>의 주인공 앨리스(줄리언 무어)는 세 아이의 엄마, 사랑받는 아내, 존경받는 교수였다. 하지만 행복한 앨리스 앞에 깊은 어둠이 드리웠다. 건망증이 부쩍 심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 앞에 닥친 현실은 막막 그 자체, 조발성 알츠하이머였다. 하필 그의 전공은 언어학이었다. 말과 글이 앨리스의 전부였는데, 서서히 그 전부가 어눌해지고 기억이 희미해졌다. 어떤 철학자가 주장한 ‘내가 기억하는 나가 곧 자아’라는 말이 맞다면, 앨리스는 자아가 희미해지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 철학자의 말을 거부한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지만 ‘지금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 거야’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현실을 애써 부정하던 남편, 발병 초반에는 갈등했지만 엄마의 변화를 누구보다 따뜻하게 품어내는 큰딸 등 가족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래야 함을 상기시킨다. 영화의 원작은 알츠하이머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이자 소설가인 리사 제노바의 동명 소설인데, ‘품절 상태’라 독자들의 손에 들릴 수 없어 안타깝다.
옛말에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운다고 했다. 아이뿐이었을까. 그 옛날에도 적지 않았을 치매 노인들을 보듬은 것 역시 마을이었다. 기억을 잃었을 뿐,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 바로 그이 아니던가. 과학기술이 날로 발달해 우리 후손들은 ‘실리콘 형태의 뇌’, 즉 디지털 매체로 영원히 기억을 잃지 않을 거라고 한다. 혼자서 걱정한다. 그 기억은 나, 아니 나의 자아일까. 곁을 내어주던 그 사람들이 없는데, 사라지지 않는 기억은 대체 무슨 소용일까.
제주시 중앙로에 위치한 ‘제주중앙지하상가’는 1980년대 조성된 제주 유일의 지하상가이자 쇼핑 중심지였다. 서귀포시에 사는 도민들이 제주시를 방문할 때면 중앙지하상가는 필수 방문 코스였다. 물론 현재도 의류, 액세서리, 화장품, 신발 등 400개 안팎의 점포가 운영 중이다.
하지만 도시 확장으로 새 도심지, 새 상권이 생기면서 중앙지하상가 일대는 어느덧 정주인구도, 생활인구도 줄어든 원도심이 됐다. 지하상가에 없던 공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지하상가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상가 4개 호실은 임차인 개인 사정으로 2년 가까이 짐만 쌓아두는 창고로 쓰였다. 공실은 북적대야 할 쇼핑거리에 바이러스처럼 휑한 기운을 전염시킨다. 주변 상인들은 “2년간 문을 닫으니 주변까지 어둡고 황폐한 분위기였다”고 했다. 경기 침체로 손님이 줄어든 상황에서 공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민원이 잇따랐다.
민관이 손을 잡았다. 코로나 이후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앙지하상가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제주도 소상공인과와 문화정책과, 제주도립미술관, 중앙지하상가 상인회, 한국미술협회 제주도지회가 머리를 맞댔다. 민관이 힘을 합치자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임차인 설득과 상가 정리, 공간 리모델링, 전시작품 설치, 명칭 공모, 개소식까지 4개월만에 완료했다.
제주중앙지하상가의 공실은 이달초 문화공간인 ‘갤러리 숨비마루’로 재탄생했다.
2일 갤러리 숨비마루는 십자가 모양으로 조성된 중앙지하상가의 중심부에서 환하게 불을 밝히고 도민과 관광객을 맞았다. 맞은편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방문객들이 갤러리를 찾아 작품을 둘러봤다. 최근 지하상가 고객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갤러리를 둘러봤다.
현재 갤러리에서는 도립미술관 소장 작품을 활용한 대체불가토큰(NFT) 발행 디지털 전시가 열리고 있다. 도미술대전 대상 수상작가 9명의 작품 10점이 걸렸다. 갤러리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상시 운영된다
고정호 중앙지하상점가조합 이사장은 “코로나 이후 쇼핑 문화가 온라인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지하상가 같은 상점가는 특화 전략이 없으면 낙후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같은 시대 변화, 경기 불황 속 분위기를 더욱 침체시켰던 공실이 갤러리로 바뀐 모습은 그야말로 환골탈태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민, 관광객이 자연스럽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편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다양하게 전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는 올해 상인회와 도민, 관광객의 반응을 지켜보고 의견을 종합해 내년 다양한 전시를 기획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갤러리는 상권 활성화, 도민 문화공간 조성이 목적”이라면서 “ 올해 시범운영 후 상인회와 논의해 내년 운영 방향을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검찰개혁을 진두지휘할 초대 법무부 장관에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64·사진)이 내정됐다.
정 내정자는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로서 ‘38년 지기’이자 ‘친명좌장’으로 불린다. 이 대통령이 대선에 처음 도전할 때부터 도운 이른바 ‘7인회’의 주축이다. 사석에서 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사로도 꼽힌다.
정 내정자는 1961년 강원 양구에서 태어났다. 서울 대신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18기로 입소해 이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에서 활동하다가 2000년 새천년민주당 부대변인을 맡으며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고 2012년 19대 총선부터 지난해 22대까지 4연속 당선된 5선 의원이다. 2017년 대선에서는 이 대통령 선거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고, 2022년 대선에서는 총괄특보단장을 지냈다.
어릴 적 우리 집 목사관엔 동네에선 ‘처음’ 갖춘 살림살이들이 여럿 있었다. 교회 손님이 많다 보니 얼음이 얼리는 큼지막한 냉장고가 있었다. 교회에 쓸 피아노도 처음, 어깨너머 피아노를 치는 누이들을 부러워했는데 가끔 내 멋대로 삑사리 연주회, 듣고 있던 참새들이 가소롭다면서 짹짹댔다. 전화기도 동네에선 처음 놓았고, 컬러텔레비전도 아마 몇 번째였던 거 같아. 집에서 극장 구경을 하게 되다니, 참말 별세계 신세계였다.
얼음을 꺼내 먹을 수 있는 냉장고는 여름만 되면 엄지 척, 짱이었다. 돈 내고 사 먹던 아이스크림을 직접 냉동실을 이용해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미숫가루를 설탕물에 풀어설랑 적당한 용기에 넣어 냉동실에 얼림. 식인종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불량식품’이라고 부른다덩만 집에서 만들어 먹는 아이스크림은 불량식품 아님. 미숫가루 얼음을 볼이 빵빵해지게 입에 넣고 굴리면서 여름을 즐겼다. 살인적인 뙤약볕에도, 그나마 살인미수 미숫가루만 있으면 죽지 않고 살아. 구약, 신약, 마약 가루가 다 소용없고 내 사랑 미숫가루면 여름을 날 수 있으리라.
농협 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 멥쌀 보리쌀 미숫가루를 놓고 팔길래 사 들고 왔다. 꿀을 타고 찬물에 풀어 마셨는데 자연스럽게 살인 미소. 엄마가 만들어주셨던 미숫가루 얼음도 기억나고, 얼음을 둥둥 띄워설랑 이가 어덜덜 떨리도록 시원했던 우뭇가사리 냉국도 생각나. 사이좋게 둘이서 반반 나눠 먹었던 내 여동생. 지난겨울 비행기 참사로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여동생 생각이 나서 먹다가 또 울었다. 피식하면, 남몰래 운다.
무책임한, 살인적인 나라에서 고작 미숫가루를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잃은 가족을 그리는 이 심정, 과연 누가 알까나.
부산 동부경찰서는 살인미수혐의로 A씨(60대)를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30일 낮 12시쯤 부산 동구 좌천동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관리소장 B씨(50대·여)의 얼굴에 시너를 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얼굴에 시너가 묻은 B씨는 관리사무소로 밖으로 뛰어나온 뒤 문을 잠그고 몸을 피했다.
이후 A씨는 현장을 벗어나 달아났으나 경찰의 설득으로 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
A씨는 라이터를 소지하고 있었으나 실제 불을 붙이지는 못했다.
A씨는 2023년 7월까지 이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했으며 B씨와 업무상 마찰을 빚은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