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b중계 마을을 걷다 보면 오래된 이층 목조 주택이 눈에 띈다. 전 일본 총리 호소카와 가문이 일제강점기에 춘포의 농지를 매입하며 지은 농가다. 시골집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그 집의 이국적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춘포의 또 다른 이름, 대장촌이 떠오른다. 큰 농장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일본인 지주들이 대규모 농장을 운영했다고 하여 불린 이름이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지우려 했지만, 지금도 동네 어르신들의 입에 붙은 건 춘포가 아니라 대장촌인 듯하다. 한 장소에 새겨진 역사는 언어에 오래 남는 법이니까. 내게도 그런 언어가 있다. 다라이, 땡깡, 요지, 단도리 같은 일본어. 할머니에게서 배운 말이다. 의식적으로 지웠으나 주의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소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웠던 할머니는 한글을 제대로 쓸 줄 몰라 경조사 봉투에 이름과 메시지를 적어야 할 때면 나를 부르시곤 했다. 할머니의 말을 옮겨 적는 대가로 내가 받은 것은 과자와 이야기였는데, 사실 나는...
소설가 한강의 <희랍어 시간>은 희랍어를 배우는 사람 이야기다. 나도 신학교에서 희랍어 그러니까 그리스어를 쬐끔 배웠지. 처음 배울 적엔 그리스어로 시를 쓰고 싶었으나 꿈만 창대했다. 지난해 순례단과 함께 그리스 정교회의 ‘교종’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를 이스탄불에서 뵙기도 했다. 영접실에 갔더니 초콜릿과 함께 그리스인들이 즐기는 식전주 ‘우조’를 내어주어 한 잔 쭉. 모르고 마신 성직자들 볼이 순식간에 빨개졌어. 술이야 항상 끊었다고 말하는데, 끊은 기념으로 한 잔은 즐겁다. 강제로 금주해야 할 ‘가막소’의 내란 장군들과 우두머리는 상당히 괴로울 테지만. 암튼 그날 정교회 미사는 평소보다 짧았는데도 3시간. 고대 그리스어 찬트가 시종 이어지고, 수십번 앉았다 섰다 운동도 되덩만.그리스어로 ‘편지’란 ‘에피스톨레’라 한다. 바울과 요한의 편지가 에피스톨레다. 한 인격을 향해 정중한 편지를 써서 보내는 건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 편지는 급기야 성서가 되었다....
2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미술관 주최 미디어아트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에서 특별 초청된 미술 공연 ‘페인터즈’ 출연 배우들이 대형 이젤에 신윤복의 ‘쌍검대무’ 속 무녀들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전시회는 4월 30일까지 열린다. 정지윤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