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스트리밍추천 한국 민주주의는 2개월 만에 두 번의 도전을 받았다. 한 번은 무장군인을 동원한 폭력적 방법에 의해, 또 한 번은 극단세력이 정치의 중심에 서는 비폭력적 방법에 의해. 폭력은 그 가시성으로 인해 시민들로부터 즉각 거부된다. ‘응원봉 시위’ ‘남태령 대첩’이 말해주듯, 민주주의 심화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역효과를 낸다. 한국 민주주의는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았다. 비폭력적 도전으로부터도 살아남을까? 민주주의에 대한 진짜 위협은 내란이 아니라, 극단세력이 정치 중심으로 진입한 사건이다. 폭력엔 즉각 맞선 시민들도 극단주의 확산엔 속수무책이다. 내란 전까지 극우는 사회로부터 배제된 자, 고립된 존재였다. 그들과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윤석열이 통치할 때조차 사회의 외톨이였다. 반동의 물결은 어디에서 갑자기 밀어닥친 것일까? 그것이, 잠자던 거인이 깨어나듯 깜짝 등장할 수는 없다. 지층 아래 거대한 에너지로 갇혀 있다가 지층을 뚫고 분출하듯 나타날 수도 없다. 그들은 그저 아스팔트 ...
정치학자인 브라이언 클라스가 쓴 <권력의 심리학>에는 신시내투스라는 인물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기원전 5세기에 로마를 구했다는 인물이다.당시 로마는 외적의 침입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그래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지도자를 추대하기로 했는데, 당시에 은퇴해 있던 장군이자 정치인인 신시내투스라는 인물이 지목되었다. 로마 사람들이 신시내투스를 찾아가서 부탁하자 그는 책임감에 마지못해 자리를 수락했다. 그의 임기는 6개월이었다. 그는 로마군을 이끌고 외적을 무찌른 후 자신의 역할이 끝나자 취임 한 달도 안 되어 사임했다. 그리고 자신이 농사짓던 농장으로 돌아갔다. 20년 후 로마에는 또 다른 위기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로마 내부에서 발생한 위기였다. 돈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은 자가 공화국을 뒤엎고 왕정을 세우려는 음모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도 팔순이 넘은 신시내투스가 21일간만 자리를 맡아서 위기를 해결하고 물러났다고 한다. 리비우스는 <로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