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불법사업장의 세공노동자고용보험 사각지대 내몰려“정부가 실태조사 해달라”
“여기 좀 봐주십시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내정자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던 길, 마침 농성 중이던 김정봉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부지회장이 외쳤다. 김 내정자가 다가갔다. 김 부지회장은 “주얼리 제조 노동자들은 고용보험 의무 가입자임에도 70~80%가 미가입자”라며 “업체들이 근로기준법만 제대로 지키게 해달라”고 했다. 그는 ‘불법 사업장’이 방치되지 않도록 노동부의 근로감독과 실태조사를 촉구했다. 김 내정자는 “자료를 살펴보고 (노동부) 간부들과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고민해서 토론해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귀금속 세공노동자인 김 부지회장은 25일 통화에서 “장관 내정자가 올 줄 알고 기다렸던 게 아니라 매일 오후 4시 <전태일 평전> 읽기를 한다. 마침 내정자가 출근한다는 소식을 듣고 요구사항을 외친 것”이라고 했다. 김 부지회장 등은 13일째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정부의 근로감독을 촉구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김 부지회장은 2018년에도 정의당 노동본부장이던 김 내정자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정의당과 노조는 함께 ‘화려한 귀금속 뒤의 갑질, 종로 귀금속 세공노동자 간담회’를 열었다. 노조는 당시 귀금속 세공노동자들이 화공약품에 노출되고, 작은 사업장들이 노동법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문제를 호소했다. 김 부지회장은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김 부지회장은 지난 1월 해고됐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5월 원직복직 명령이 담긴 판정서를 수령했지만 회사가 폐업하며 돌아갈 일터가 사라졌다. 회사 대표는 밤새 문서를 파쇄하고 기습 이사를 시도했다.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한 시민들이 이를 막아 이사는 막을 수 있었지만 대표는 결국 며칠 후 폐업 신고를 마쳤다. 이후 노동자들에게 퇴직금도 주지 않은 채 해외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용노동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노조와 사업주 면담 자리를 주선하라는 요구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부지회장은 세공노동자 같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겪는 부당해고, 4대 보험 미가입 등 부당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싸우고 있다. 청산가리, 황산 같은 화공약품이나 높은 열을 다루는 위험한 작업환경을 안전하게 개선하는 것도 목표다.
노조 설문조사 결과 100개 넘는 사업장에서 고용보험 미가입 등 근로기준법을 어긴 사례가 나왔다.
김 부지회장이 바라는 것은 복직이나 보상이 아니다. 그는 “‘불법 사업장’이 방치되고 있으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는 것”이라며 “작은 사업장들은 노동자들이 해결하기 어려우니 정부가 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해 나서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실태조사가 시급하다고 했다. 그는 “업계가 노동법을 지킬 수 있게 조사해달라는 것”이라며 “전수조사가 힘들면 귀금속 골목의 일정 블록이라도 조사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김 부지회장은 “노동자 출신 장관 내정자가 왔으니 ‘있는 노동법’을 지킬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2018년 간담회도 함께했고 우리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니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문제를 풀어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