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상간소송변호사 “이순신과 원균의 차이가 있어요. 이순신은 일기(난중일기)를 남겼고, 원균은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측근들에게 남긴 말의 요지란다. 물론 승장(이순신)과 패장(원균)이라는 점에서 찬사(이순신)와 비판(원균)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은 이순신에 비해 원균이 ‘만고의 역적’으로 전락한 이유 중 하나가 ‘이순신’처럼 기록을 남기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이순신의 원균 뒷담화한번 살펴보자. 먼저 이순신(1545~1598)은 <난중일기>에서 원균(1540~1597)을 80~120번 정도 언급했다.“원균의 술주정에 배 안의 모든 장병들이 놀라고 분개하니 고약스러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1593년 5월 14일)“왜적을 토벌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더니 원균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다’고 핑계대면서 대답이 없었다.(1593년 6월11일)“원균이 온갖 계략으로...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재집행이 시작된 15일 아침 7시쯤 경찰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경내 진입을 위해 사다리를 투입했다. 이를 이용해 정문에 배치된 대통령경호처 차벽을 넘어가는 등 진입작전을 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관들도 정문 쪽에 추가로 대거 투입됐다.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참여하는 공조수사본부는 윤 대통령 측에 체포·수색영장을 제시했으나 윤 대통령 측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이날 아침 7시쯤 경찰과 공수처 수사관들은 영장 집행을 위해 강제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6시10분쯤 경찰 호송차량 한 대를 관저 정문 입구 쪽으로 댔다. 차량 안에는 윤 대통령 체포조 수사관들이 탄 것으로 전해졌다.7시25분쯤에는 경찰 수사관들이 대거 추가로 정문 쪽에 투입됐다.앞서 새벽 5시쯤 공조본은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 등을 만나 영장을 제시했다. 윤 변호사 등은 이 집행이 불법이라고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