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분할 검찰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원회로부터 ‘알맹이가 빠졌다’며 업무보고를 퇴짜 맞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국정기획위는 이재명 정부의 ‘검찰개혁’이 빠져있다는 취지로 중단시켰지만 검찰 내부에선 “정부가 개혁하고 국회가 입법하면 될 사안을 왜 우리에게 가져오라 하냐”며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지난 여러 수사로 인해 우리가 할 말이 없는 것도 맞다”는 자조섞인 반응도 나온다.
지난 20일 국정기획위가 대검찰청의 업무보고 30분만에 “알맹이가 없다”고 퇴짜를 놓은 뒤 검찰 내부는 뒤숭숭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일단 대검 등 검찰 간부들 사이에선 겉으로는 말을 아끼면서도 속으로는 불편한 속내가 엿보였다.
국정기획위가 짚은 대목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줄곧 강조해온 공약인 ‘검찰개혁 관련 방안’ 등이 빠져있다는 것이었다. 22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대검이 낸 업무보고 자료에는 형사부·여성아동범죄조사부·범죄수익환수부 등 민생범죄와 관련된 부서를 강화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불공정거래·중대재해 등에 엄정 대처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에선 ‘기강잡기’로 보는 시각이 먼저 나왔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정부에서) 의도한 건 아니었을지라도 우리로선 새 정부 들어 ‘군기’를 잡는다고 느낀다”며 “나름 실무진과 긴밀히 협의해 준비했는데 중단되니 황당하고, 최악인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정부가 직접 세운 개혁안을 시행하고 국회가 검찰청법 등 개정 입법을 하면 될 일을 왜 검찰에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며 “결국 윽박지르기 식으로 기강을 잡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개혁의 권한은 정부·국회에 있는데, 개혁될 당사자에게 ‘어떻게 자신을 개혁할지 답안을 갖고 오라’는 식”이라고 했다.
이 같은 반발 옆에서 자조 섞인 반응도 잇따르고 있다. 다른 검찰 간부는 통화에서 “어찌됐든 국민들에게 기소권 남용이라고 보일 만한 사건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우리 스스로 자초한 상황일 수도 있는 만큼 개혁은 불가피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향후 개혁이 과도한 수준으로 가면 되려 국민의 이익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점도 있다”며 “수사·기소 분리 등 검찰 권한을 내려놓을 건 내려놓되 한쪽에 치우친 게 아니라 안정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정책기획관실은 국정기획위에 다시 제출할 업무보고용 자료를 보강하고 있다. 국정기획위는 오는 24일까지 업무보고 자료를 다시 제출하라고 했고, 25일 업무보고를 재차 받기로 했다. 검찰은 이 대통령의 ‘검찰 권한 축소 및 통제 강화를 통한 국민 기본권 확대’ 공약을 중심으로 한 자료 보강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창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검경개혁소위 위원장은 “정부의 기조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조직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라며 “검찰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모양새만 취하는 식의 내용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버스 배차 간격을 지키지 못하면 시말서를 쓰는 등 업무상 스트레스로 적응 장애 진단을 받았는데도 ‘개인적 문제’라며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2일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2일 서울고등법원 제3행정부(재판장 윤강열)는 서울의 한 시내버스 업체 소속 기사였던 구자연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구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은 “운행업무 평가 결과의 실명 공개, 시말서 징구로 인한 원고의 적응 장애를 버스 운행사원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하는 업무 지시에 대한 개인의 스트레스 문제라고 한정하거나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1998년부터 버스 기사로 일했던 구씨는 2018년 A사에 입사했다. 회사는 2021년 11월부터 매월 버스정보안내 단말기(BIS) 데이터를 게시판에 실명으로 공개했다. 배차 정시성 기준에 미달하는 직원들은 사무실로 불러 시말서를 쓰게 했다. 서울시가 2021년 7월 시내버스 회사 평가 항목 중 ‘배차 정시성’ 기준을 강화하고, 매년 65개 회사 중 상위 40곳에 성과이윤을 차등지급하기 시작하면서 뒤따른 조치로 파악된다.
구씨는 위험천만하게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노선의 신호 체계와 주기를 알기 때문에 배차 시간에 쫓기면 무리하게 액셀을 밟아서라도 갔다”고 했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압박을 견디지 못해 퇴사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구씨는 2022년 5월 서울시청 앞에서 시내버스 정시성 평가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구씨는 2021년 11월8일, 2021년 12월20일, 2022년 2월8일, 2022년 3월25일 등 네 차례 정시 배차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썼다. ‘정시 배차를 맞추다가 사고 날 뻔했다’고 항의하다 노무차장에게 “버스 기사 자격이 없다” “형편 없는 사람이다” “인간 같지도 않다”는 등 폭언을 듣기도 했다. 구씨는 2022년 4월부터 불면증, 적응 장애 치료를 받았다. 그해 7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건 발병에는 업무적 요인보다 개인적 요인이 더 영향을 줬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는 그해 8월 구씨에게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그러나 법원은 구씨가 공개된 장소에서 업무상 질책을 들어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로 인해 적응 장애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업무상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배차 정시성 준수가 교통 상황이나 다른 외부적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버스 운행사원의 개인적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과제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노무차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통상의 정도를 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초래하는 상황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또 법원은 “대중교통은 승객과 시민 전체의 안전과 직결되므로 버스 운행사원에 대해 교통 체증, 난폭 운전 등과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에서 보호해야 한다”며 “운행 업무와 관련한 배차 정시성 평가를 시행하는 경우에는 공공서비스 제공자인 운행사원에 대해 충분한 협의와 실질적 숙의를 거친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구씨는 현재 부동산 중개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일을 겪은 뒤로 시내버스를 모는 건 트라우마가 됐다. 유치원 통학버스를 1년간 몰았지만 이마저도 버거웠다. 그래도 구씨는 “동료들의 처우가 개선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회사와 복직 가능 여부를 다퉈볼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