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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비실용의 실용성, 쓸모없음의 효용성…기초과학으로 돌아가자
작성자  (121.♡.249.163)
상식에 기반한 소통과 협력의 리더십은 법학·의학·경영뿐 아니라 기초과학에서도 융합과 혁신의 기본‘한국형 인재’들이 장래가 보장되는 의학으로만 쏠리는 현실에서, ‘빠른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를 만들어내기 위해선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생각의 방법이 다른 인재들이 자연스레 과학에 뛰어들어 미래를 창조할 수 있게 해줘야
몇년 전 대한민국의 명의로 꼽히는 분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2주 입원하면서 수술하고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의사에 대한 존경심이 평소보다 훨씬 클 때였다. 마치 그분이 내 병을 치료해준 것처럼 고마움도 샘솟았다. 그때 그분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칼잡이 의사는 천재일 필요가 없어요. 선생님이 연구하시는 물리학이야말로 천재들이 꼭 필요한 곳이지요.” 천재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던 나는 민망함에 겸연쩍은 웃음만 지었다.
분야는 전혀 다르지만 내게 똑같은 말을 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들의 직업은 판사였다. 개인적인 경험담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직업군에서 “이 동네에는 굳이 천재가 필요하진 않다”고 말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검사를 만나본 적은 거의 없지만 그들도 아마도 비슷한 말을 했을 것 같다.
나는 의료 분야를 전혀 알지 못하니 그 명의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직접 살리는 일을 하는 분들이니, 이왕이면 천재가 많은 것도 좋을 것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김사부나 <중증외상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백강혁 같은 천재 의사가 많을수록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반면 법관의 경우 “판사들은 천재일 필요가 없다”는 말에 내심 공감이 간다. 법관의 가장 큰 덕목은 천재성이라기보다 원칙과 상식이 아닐까. 지난 4월4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한 결정문을 보고서 많은 사람이 크게 감동했던 것은 그 결정문에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번득이는 법 논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고도 상식적인 원칙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의 상식적인 원리가 수호되었다는 면에서 크게 안도하고 감동까지 받은 것 같다.
한국에서 반백 년 넘게 살아오며 법관의 천재성은 오히려 강자의 편에 서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경국대전과 관습 헌법을 거론하며 수도 이전을 반대했던 논리나 지금까지의 관행을 뒤엎고 구속 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해 내란수괴 혐의자를 석방한 판결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법관들의 천재성이 발현된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물리학에 천재들이 많이 몰리면 좋겠지만 물리학이 소수의 천재만 하는 학문인 것은 아니다. 특히 20세기에는 천문학적인 돈과 수많은 사람이 모여 큰 규모의 연구를 진행하는 이른바 ‘빅사이언스(big science)’가 등장하기도 했다. 대우주의 새로운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더 큰 망원경이 필요하고, 미시세계의 새로운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더 큰 입자가속기가 필요하다. 과학은 머릿속의 망상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실험으로 검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 인간 지성의 경계를 한 걸음 더 넘어서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더 큰 장비와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예전과 비교해서 배워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아져 짧은 시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양자역학이 태동하고 발전할 무렵에는 세기의 천재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혁명에 가까운 발전을 이룩했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디랙 등의 선도자들은 20대의 업적으로 30대에 노벨상을 받았다. 21세기에는 이런 사례를 찾기 어렵다. 업적을 검증하기까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의 숨은 노고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어느 분야에서나 지금은 혼자 잘하는 시대가 아니다. 소통과 협력의 리더십이 있어야 융합과 혁신을 할 수 있다. 그런 인력풀 속에서 개개인의 잠재된 천재성이 발현될 가능성도 더 커진다. 아마도 기초과학은 이 어려운 일을 가장 잘해내는 분야일 것이다. 소통과 협력의 리더십은 기업에서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국내 대기업 강연을 할 때마다 내게 요청하는 사항은 어떻게 하면 조직 내 ‘사일로’ 문화를 혁파하고 협력과 융합이 가능한지 과학에서의 모범사례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사일로’란 간단히 말해 자기 부서 이기주의이다.
한국 사회는 아무래도 소통과 협력의 리더십이 부족하다. 그런 개념을 가르치고 체험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치원부터 남보다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입시가 끝난 대학생들도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요즘 대학생들은 ‘팀플’을 아주 싫어한다. 이런 풍토가 취업 뒤 회사의 사일로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미치오 가쿠는 예전에 미국의 과학기술계를 세계 최고로 유지하는 비밀병기로 이른바 ‘천재비자’를 언급했었다. ‘천재비자’란 H1B 비자로서 전문직 종사자를 위한 취업비자이다. 외국의 인재를 유치해 세계적인 인재로 키워내고 그것이 곧 우리의 경쟁력이 되도록 하는 면에서 한국은 매우 취약하다. 작년에 네이처인덱스는 한국특집호를 발간하면서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 가성비가 놀랍도록 저조하다고 지적하며 그 해결책 중 하나로 국제연구협력 증진과 글로벌 인재유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국내 인재들 사이의 소통과 협력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외국인이라니. 우리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대우로 모셔 오더라도 ‘먹튀’만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역시 재능 있는 인재들이 의대로만 쏠리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게 사실이다. 기초과학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비용을 써야 하는 분야라서 정부가 나서서 보호하고 지원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한국의 똑똑한 천재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의대나 로스쿨을 선택한다. <중증외상센터>의 백강혁 같은 천재의사들이 많으면 좋겠지만, 천하의 모든 인재가 이렇게 장래가 보장되는 직업군으로만 쏠리는 현상은 국가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재능 낭비이다. 그러나 그들 개개인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셈이니 이들만 탓할 수는 없다. 이런 세태를 바꿀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우리 사회의 ‘천재성 낭비’를 막아야 한다. 안 그래도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예나 지금이나 결국 우리가 믿을 것은 사람 말고 없지 않은가.
추구하는 인재상도 달라져야 한다. 20세기의 인재상은 남들이 만든 규칙 속에서 남들이 제기한 문제를 빨리 잘 푸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뭔가를 물어봤을 때 가장 빨리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양한 지식을 암기하고 계산을 빨리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한국형 천재’가 바로 이들이다. 지금은 AI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런 능력 자체도 물론 아주 훌륭한 자산이다. 덕분에 우리는 선진국을 빨리 추격해서(이른바 ‘fast follower’) 대략 21세기에 접어들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한국형 천재와 비슷한 인재가 ‘산업 현장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이다. 산업화가 한창일 때는 분명 이런 인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에는 이런 인재일수록 산업 현장에서 곧바로 퇴출당할 가능성도 크다. 우리 정부는 아직도 이런 인재를 기르겠다고 난리다. 툭하면 무슨 무슨 학과를 설립하겠다든지 지원금으로 대학을 다그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가장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시도에 도전적이어야 할 대학을 이런 식으로 옥죄면 어떻게 창의적인 인재가 나올 수 있겠나.
한국형 천재는 한계도 명확하다. 남들이 정해준 규칙은 잘 따르지만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문제를 선도적으로 설정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아직 한국에서 노벨 과학상이 나오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나는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벨상이야 못 받아도 그만이지만, 힘겹게 올라선 선진국의 대열에서 겨우 막내로만 남거나 다시 중진국으로 추락하는 경우를 막으려면 전략을 바꿔야 한다. 다행히 이제는 수많은 사람이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한국이 탈바꿈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선도자’가 될 비결은 무엇일까? 그 대답 역시 기초과학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21세기, 특히 AI가 인류 문명을 바꾸려고 하는 지금의 전환기에는 다양한 지식 또는 말단의 기술 한둘을 가지고 있는 ‘한국형 천재’보다 지난 칼럼에서도 지적했듯이 서로 다른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정보를 습득해 때에 따라 필요한 지식을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형 인재가 필요하다.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급변하는 현장에서 전례 없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선도자의 역할은 방향을 제시하고 없는 규칙을 만들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 역할을 가장 훌륭하게 해낸 것이 바로 기초과학이다. 기초과학의 진정한 가치는 즉각적인 쓰임새라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생각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가 적어도 과학정책에서만큼은 비실용적인 것들의 실용성, 쓸모없는 것들의 효용성을 먼저 보호하고 지켜주기 바란다. 며칠 전인 19일 국무회의에서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위한 이공계지원특별법을 의결한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되리라 기대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이다. 기초과학이든, AI든 단발 이벤트성 정책으로는 우리 사회의 ‘낭비되는 천재성’을 막을 길이 없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뛰어난 젊은 인재들이 기초과학, 그리고 과학기술계에 자연스럽게 뛰어들어 미래를 창조하는 도전에 과감하게 나설 수 있는 생태계를 차분하면서도 끈질기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근본적인 혁신은 근본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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