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폰테크 국회 정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20일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자 “인사청문회를 국정운영 발목잡기를 위한 수단으로 삼겠다는 노골적 의사표시”라며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민주당 정보위원들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공당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조차 저버린 무책임한 정치술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위원들은 “오늘 아침 국민의힘 정보위원장과 간사가 ‘원내지도부의 지시’라며 ‘첫 인사 검증에서부터 쉽게 합의를 내줄 수 없다’며 원내대표 회담과 이재명 대통령과의 대담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위원들은 이어 “10시 예정됐던 전체회의를 단 30분 전인 9시30분에 (회의 취소)통보하고 9시45분에 행정실을 통해 공지했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위원들은 “혹시 자당 분열 위기를 넘어가기 위한 조바심의 표현은 아닌가”라며 “퇴행적 정치술수야말로 국민 지지를 잃고 지난 대선에서 참패한 결정적 이유임을 똑똑히 자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위원들은 “(국민의힘은) 국정 파트너로서 자성하고 최소한의 협치 의지라도 보여야 할 때”라며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을 정략적 이유로 질질 끌지 말고, 오늘이라도 정상 절차로 복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지난 19일 실시됐다. 정보위는 이날 오전 정보위 회의를 열고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할 계획이었으나 무산됐다.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은 23일 개혁신당 대선 결과를 평가하면서 “선거 기간에 보니 이준석 (전 개혁신당 대선) 후보의 비호감도도 굉장히 높은 수치”라며 “개혁신당이 보다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려면 이준석 후보의 비호감도를 어떻게 낮추느냐 이 점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전 고문은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 주최로 열린 대선 평가 세미나 <우리는 길을 찾거나, 만들 것이다> 기념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김문수 (전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받은 표의 반 정도 가까이는 국민의힘이나 김문수 후보에 대한 선호도에서 간 것이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으로 갔다”며 “그 표가 이준석 후보한테 옮겨오지 않고 다 김문수 후보에게 가느냐 이걸 개혁신당이 냉철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미나에 참여한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사람들한테 남은 것은 이준석의 네거티브 전략밖에 없고, 미래 자산도 상당히 잠식된 것 아니냐는 평가들이 있다”며 “특정 세대와 젠더에 집중된 지지층은 열광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더 빠지지는 않겠지만, 확장성에 굉장히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감정을 자극해서 반사표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의힘을 제치고 싶다면 보편정당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대, 30대 여성을 적으로 돌려놓고 어떻게 보편 정당을 지향하느냐”고 말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고령층과 대화할 수 있는 아젠다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에서 만난 정향숙씨(49)는 손에 배인 땀을 연신 훔쳤다. 산업재해와 업무상 질병을 판단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정씨에 대한 심의·판정을 열기 전이었다. 판정 결과는 이날 결정된 뒤 1~2주 뒤에 정씨에게 통보될 예정이었다. 정씨의 손에는 전날 밤까지 고친 최후진술서가 들려 있었다. 초조한 표정의 정씨는 숨을 크게 내쉰 뒤 “저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21년 간 근무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진술서를 찬찬히 읽었다.
정씨는 만 열여덟 살이던 1994년 삼성전자 경기 기흥공장에 취업했다. 공장엔 정씨 또래의 여성들이 많았다. 회사는 “섬세한 여성의 손을 이용해야 한다”며 반도체 칩을 만들 때 사용하는 둥근 모양의 기판인 웨이퍼를 수작업으로 다루게 했다. ‘반도체 호황’을 맞은 공장에서 정씨의 몸은 쉴 틈이 없었다. 5kg 무게의 웨이퍼 박스 2~3개를 들고 나르는 동안 허리디스크가 생겼고 손가락이 휘었다. 만성적 생리통과 중이염에 수시로 병원에 가면서도 정씨는 허투루 일하지 않았다. 2015년 ‘희망퇴직’을 당했을 땐 “열심히 일한 사람을 이렇게 쫓아내나” 싶어 야속했지만 그래도 회사를 믿었다고 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회사는 제대로 보상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정씨는 2022년 희귀질환인 ‘거대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2018년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지 4년 만이었다. 의사는 두개골 바닥에 종양이 생겼다고 말했다. 세 차례 수술을 받은 결과 종양은 제거됐지만 정씨는 왼쪽 청력과 얼굴 일부에 감각을 잃었다. “내 몸이 왜 이렇게 아플까.” 정씨의 머릿속에 21년간 몸담았던 공장이 스쳐지나갔다. 정씨의 눈·코·귀·입으로 들어왔던 각종 유기용제와 화학부산물들이 떠올랐다. 지난 세월 간 겪은 수많은 질병이 산업재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다른 정씨는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 ‘반올림’을 찾아갔다.
정씨는 “고 황유미씨 이후로 반도체 산업재해는 많이 사라진 줄만 알았다”고 말했다. 그런 정씨에게 반올림의 노무사는 반도체 산업재해 피해자 리스트를 보여줬다. 정씨와 같은 공장라인에서 일한 사람들의 이름이 보였다. 백혈병, 뇌종양, 피부암, 위암 등으로 사망한 사람, 정씨와 같은 거대세포종으로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100만명당 1명꼴로 발생한다는 거대세포종을 진단받은 사람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만 정씨를 포함해 2명이 나온 셈이다. 정씨의 대리인인 이고은 노무사는 “기흥공장에서 반올림을 통해 산재를 신청한 사례만 46건이 있고, 정씨가 근무한 공장 6~9라인은 각종 희귀질환이 많이 발생한 라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2018년 삼성전자는 기흥공장의 반도체·LCD 생산라인에서 1년 이상 일하다가 관련 질병을 얻은 피해자에게 2028년까지 보상하는 지원보상위원회를 구성했다. 2007년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고 황유미씨(당시 23세)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후 아버지 황상기씨가 싸워 회사와 합의해낸 결과다. 하지만 정씨는 지원보상위원회의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거대세포종’이라는 질병이 지원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회사를 향한 믿음이 깨진 정씨는 그렇게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한 과정을 시작했다.
이날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선 정씨는 울음을 참고 발언을 이어갔다. 떨리는 목소리로 정씨가 말했다. “저는 (제 병에 대해) 어떤 과장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상태가 단지 ‘운’이나 ‘개인 탓’으로 치부되는 것이 억울합니다. 이 병은 제 오랜 근무의 결과입니다. 그 사실만은 꼭 인정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