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 희귀질환인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 A씨(26)는 7세때 이 질환을 처음 진단받았다. 신장 기능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증상 탓에 12살엔 뇌사자에게서 신장 이식까지 받았다. 하지만 연이은 재발로 신장은 다시 나빠졌고, 아버지로부터 받기로 한 두 번째 신장 이식마저 도저히 수술을 받을 수 없는 몸 상태라 결국 무산됐다. A씨는 “아픈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상담학을 전공하고도 계속 병원을 다녀야 해서 전공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며 “언젠가는 다시 치료를 받고 내가 바라는 일을 하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은 면역체계의 일부가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등의 원인으로 혈관 내에 혈전이 형성되면서 혈류를 막아 다양한 증상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혈관이 밀집된 신장을 비롯해 주요 장기의 기능 저하가 나타나고 혈소판 감소와 빈혈, 뇌졸중, 심근경색 등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까지 동반한다.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 치료제의 국민건강보험 급여 사전심의 절차가 까다로운 탓에 환자들이 급여 적용을 받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9일 의료계 취재를 종합하면 에쿨리주맙·라불리주맙 등의 치료제는 국내 승인을 받았으며 건보 급여를 적용받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급여 적용을 위해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사전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심의를 통과하려면 진단요건 4개 항목을 모두 충족하면서 제외기준 9개 항목에 하나도 해당하지 않아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2018~2024년 사전심의에서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 환자가 승인받은 비율은 18%에 그쳤다. 건보 적용을 받지 못하고 이 약을 쓰면 환자가 부담하는 약값만 연간 3000만~4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치료제를 쓰지 못하는 환자들은 혈장교환술, 혈장주입술, 투석 등 보조적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에쿨리주맙 같은 치료제가 등장하며 질환 재발률과 사망위험이 감소하는 효과를 보여 표준치료제로 자리잡았지만 대다수 환자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인 셈이다.
한경희 제주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은 신장 기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급성신부전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발병 즉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떨어졌던 신장 기능의 회복은 거의 불가능해진다”며 “환자들은 가벼운 감기에도 질환이 재발해 급격히 악화될 수 있으므로 가급적 48시간 내에 에쿨리주맙·라불리주맙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환자의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치료제가 가장 효과를 보이는 ‘골든타임’은 48시간이다. 그러나 환자들이 병원을 통해 사전심의를 요청하면 심사기간이 최대 14일에 달해 치료 적기를 놓칠 우려도 크다. 응급상황일 경우 사전심의 신청과 동시에 치료제 투여가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현실에선 먼저 투약을 했다가 나중에 심의 기준에 미달하는 검사 수치가 나와 고가의 약값을 고스란히 부담할까봐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퍼져 있다.
이런 현실 탓에 의료계에서도 매일 달라지는 환자의 단기적 검사 수치로 급여 여부를 판단하는 현행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기적인 합병증과 임상적 필요성까지 고려하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경희 교수는 “현행 사전심의제도는 치료 필요성보다 진단 기준 충족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시급한 치료가 필요한 환자도 사용 승인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평원도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에 대한 치료제 사전심의 승인 비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현행 기준이 엄격하게 마련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심평원 관계자는 “엄격한 현행 기준을 개선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두 번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법안이다. 쌀값이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정부가 이를 의무매입해 쌀값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지만, 재정 부담이 크다는 점은 숙제다. 정부의 쌀값 안정 정책에 부합하는 경우만 조건부로 의무매입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농식품부는 지난 19일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향후 양곡법 개정안 추진 내용을 담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정안에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해 온 기존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양곡법 재추진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다. 이날 업무보고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22일 “개정안과 관련해 구체화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최근 국회에서 쌀 과잉생산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된 법안이 발의되기도 하고, 타 작물 재배 지원금을 늘리는 등의 정책과 병행 시 재정 부담도 낮아질 수 있어 기존 우려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곡법 개정안의 핵심은 쌀 과잉공급으로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정부가 과잉 공급분을 사들이는 것이다. 현행법은 ‘필요 시 매입’으로 규정해 정부 재량을 열어뒀다. 개정안은 이를 의무매입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쌀값 안정과 농가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식량 안보 차원도 있다. 일본은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올해 쌀값이 1년 전보다 2배 가량 뛰면서 혼란을 빚었다.
과거 정부에선 “쌀 과잉생산을 고착화해 쌀값 하락을 유발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이 대통령 당선 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양곡관리법을 바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에는 이미 12개의 양곡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5일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미곡 가격이 폭락·폭등 하는 경우 미곡의 초과생산량을 매입하거나 정부관리 양곡을 판매하도록 하는 양곡가격안정제도 내용이 담겼다. 정부가 양곡수급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의무매입 기준·가격 등을 심의하도록 했다.
관건은 ‘의무매입’ 조항으로 생기는 재정 부담을 어떻게 완화할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에 따르면 양곡법 개정안 시행시 2030년 연간 1조4000억원 재정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벼 재배면적 감축을 추진해온 정부 당국의 기조와 충돌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쌀값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될 경우 농민 입장에서는 벼 재배를 줄일 이유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농경연은 양곡법 개정안 시행 시 2030년에 63만톤의 쌀이 초과공급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조건부 의무매입’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벼 재배면적 감축 노력’을 이행한 농가만 의무매입을 하는 등의 조건을 다는 것이다.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양곡법 개정안을 보면 정부의 감축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쌀값이 하락할 때에 정부가 매입하도록 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전 정부에서는 의무매입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 프레임 씌웠으나 이미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시행되는 정책”이라며 “효과적인 시행을 위해 세부사항을 위원회에만 맡기는 게 아니라 국회가 입법으로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