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설치현금 “재판장님, 저희에게 남은 시간이 없습니다. 그저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랍니다. 하미에서 우리가 겪었던 일을 한국 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18일 오후 서울법원종합청사 1별관 311호 법정. 서울고법 행정11-1부(재판장 최수환) 심리로 열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신청 각하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 변론에서 원고석에 앉은 베트남 하미 마을 출신 응우옌티탄(68)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응우옌티탄은 1968년 베트남 전쟁 당시 파병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피해자다. 당시 한국 해병 제2여단이 주둔지 인근에 있던 하미 마을에서 민간인 주민 151명을 살해했다. 응우옌티탄은 수류탄에 맞아 왼쪽 다리와 허리에 파편이 박혔고, 어머니와 남동생 등 가족 다섯명을 잃었다.
그는 2022년 4월 진화위에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서를 냈지만, 이듬해 진화위는 “전쟁 시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해 발생한 사건으로까지 확대해 진실규명을 할 수 없다”며 각하했다. 이에 피해자와 유족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6월 법원은 진화위의 판단이 재량권 남용이 아니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날 열린 항소심 최종 변론에서 응우옌티탄은 재판부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어 통역을 통해 10분 넘게 아픈 기억을 생생히 묘사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서 진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법원에 호소했다. 한국을 찾은 지는 이번이 네번째지만, 법정에서 직접 피해를 증언한 건 처음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됐지만, 제가 안고 있는 아픔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것 같다. 가족들을 학살로 잃은 후 아이스크림을 하나하나 팔아 돈을 벌어야 했던 어린 시절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어떤 국가의 군대든, 전쟁 범죄를 저지르면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이미 노인이 되어 가고 있다. 제 생이 끝나기 전에 한국 정부가 하루빨리 과거 학살의 진실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게끔 법원이 판단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원고 측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이 사건의 쟁점은 피해를 인정하라는 게 아니라, 학살 피해자가 맞는지 진화위에서 조사를 해달라는 것”이라며 법원이 전향적으로 판단해달라고 했다.
임 변호사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높게 평가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과거사 국가 폭력 문제를 비교적 정의롭고 충실하게 해결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외국에서 벌어졌다는 이유로 진실규명 대상이 아니라고 본 진화위 결정이 안타깝다. 부디 재판부에서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재판부는 오는 8월13일 선고할 예정이다.
한편 응우옌티탄과 함께 한국을 찾은 베트남 퐁니 마을 출신의 동명이인 응우옌티탄(65)도 이날 국가배상 소송에 대한 재판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호소하며 대법원에 직접 의견서를 제출했다. 베트남전 당시 하미 마을 인근에 있는 퐁니 마을에서도 비슷한 학살이 벌어졌는데, 퐁니 마을 출신 피해자인 응우옌티탄은 2020년부터 대한민국을 상대로 민간인학살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에서 모두 승소했으나 국방부가 상고해 현재 대법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두 사람과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날 법정 출석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오는 23일까지 국회,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용산 대통령실 앞 등을 찾는다. 한국 정부에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국가폭력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아니 왜 이재명, 김문수 후보를 같은 사람으로 보는 거지?” 지난 대선 당시 3차례에 걸친 TV토론 영상을 분석해 후보별 ‘단독 샷’ 분량을 측정하던 중이었다. 데이터저널리즘팀은 파이썬 프로그램을 사용해 토론 영상을 분석했다. 발언 시간을 공평하게 관리하더라도 카메라가 단독으로 비추는 시간은 똑같지 않을 수 있고, 이것이 유권자의 주목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계산 결과 가장 많은 단독 샷을 받은 후보는 이재명 후보(37.2분)였다. 이어 이준석(36.9분), 권영국(34.3분), 김문수(34.1분) 후보 순이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자꾸 발생하는 오류가 작업을 더디게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영상을 장면 단위로 쪼개서 각각의 길이를 출력해준다. 이걸 토대로 후보별 단독 샷 분량을 계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2~3명의 후보가 연속으로 단독 샷을 받는 장면이 나오자 이걸 분리하지 않고 한 장면으로 인식했다. 인물이 바뀌면 장면도 바뀌었다고 판단해야 하는데 말이다. 설명 문서를 살핀 뒤에야 이유를 깨달았다. 이 프로그램은 화면의 색상 변화를 추적해서 장면의 전환을 감지한다. 4명의 후보 모두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색의 정장을 입고 나온 남성들이었고, 인물의 윤곽마저 대동소이했다. 유일한 차이는 화면의 아주 좁은 부분만을 차지하는 넥타이 색깔뿐이었다. 사람 눈에는 달라 보이지만, 수치만으로 세상을 보는 프로그램은 굳이 다른 장면으로 나눌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 같았다. 분류 민감도를 높여 장면을 더 잘게 쪼개자, 프로그램은 각 후보를 제대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짐작이 맞았던 셈이다.
이 오류 아닌 오류로, 숨 가쁘게 흘러간 대선 과정에서 그다지 주목받지도 알아채지도 못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여성 대통령 후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여성 후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심상정 전 의원이 과거 대선 토론회에 나왔던 장면을 찾아봤다. 빨강, 초록 등의 옷을 입고 나왔던 두 후보였기에 우선 인물별 화면 색상도 차이 나고, 헤어스타일 등 후보별 전체 실루엣도 구분됐을 것이다. 아마 프로그램도 장면별 차이를 더 잘 포착하지 않았을까. 컴퓨터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줬을 뿐이다.
후보별 단독 샷 분량을 논할 수는 있어도, 화면에 아예 들어오지 않는 후보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성평등 문제가 대체로 이렇다. 너무나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져온 탓에 문제 자체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문제 제기조차 쉽지 않다. 엊그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출범식에 남성만 쭉 늘어서 있는 모습도 누군가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일 것이다. 개인적 경험을 보탠다면, 20대 초반의 나 역시 페미니즘에 공감하지 못했다. 되레 군대 문제가 남성에게 불리하다고 느꼈다. 성인지 감수성은 지금 20대 남성들보다도 못했다.
생각이 바뀌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내 주변 또래 여성들의 삶을 20년 넘게 지켜보며 깨달았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공기처럼 당연하다 여기는 ‘평범하게 일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는 과정’조차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2023년 ‘성별임금격차’ 보도에서 데이터로도 입증했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사회진출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여전히 여성이 생애 가장 높게 달성할 수 있는 평균임금은 남성이 28~30세에 이미 받고 있는 평균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여성들이 힘든 일을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현대차와 같은 고임금 제조업 현장에서는 여성을 잘 뽑지도 않는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여성 비율이 36%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25년 성격차 지수 보고서에서 한국은 전체 148개국 중 101위를 기록했다.
여성만 힘든 것도 아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남성들 역시 과도한 남성성을 요구받으며 가부장의 무게를 느끼고 고통을 겪는다. 방송 3사의 대선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층의 이준석 후보 지지율이 다른 후보를 뛰어넘은 것으로 나왔다. 특정 집단을 일반화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우려를 받는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 경향성도 이런 구조가 거꾸로 맺힌 상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20대가 아니라 4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이런 구조를 알아차리기는커녕 여성들을 조롱하고 비난만 일삼으며 표를 모은 어느 대선 후보가 말이다. 그는 무엇을 어떻게 보고 살아온 것일까.
파리협약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세운 목표인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 상승’에 허용된 탄소예산이 3년치밖에 남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탄소예산은 지구 기온을 특정 온도 이내로 묶기 위해 허용된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뜻한다.
세계 각국의 과학자 60여명이 참여한 프로젝트 ‘지구기후변화지표(IGCC)’는 19일 ‘지구시스템과학데이터’ 저널에 공개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이 현재 추세를 유지한다면 탄소예산이 3년 안에 고갈될 확률이 50%라고 밝혔다. 1.5도 상승까지 남은 탄소예산이 1300억t이라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년 전 발표한 5000억t보다 크게 줄었다. 영국 리즈대 프리스틀리 기후미래센터의 피어스 포스터 소장은 “IPCC가 마지막으로 보고서를 발표한 2021년 이후 매년 기온이 상승했고, 기후정책과 기후행동은 뒤처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준을 1.6도 혹은 1.7도로 잡아도 남은 탄소예산은 9년 안에 소진될 것으로 IGCC는 전망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3월 보고서에서 지난해 지구 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5도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오른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다만 파리협정은 특정 연도의 기온이 아닌 20~30년간 평균을 기준으로 삼는다.
연구진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24도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이 중 1.22도가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었다. 인간 활동은 지난 10년 동안 매해 530억t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했다.
연구진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전 세계 평균 해수면이 26㎜ 상승했다고 경고했다. 20세기 평균보다 2배 빠른 속도다. 네덜란드 왕립 해양연구소의 에메 슬랭건 박사는 “작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저지대 해안 지역에서 해수면 상승은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폭풍해일 피해를 키우고 해안침식을 심화해 인간과 해안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의 이준이 교수는 “보고서는 남은 탄소예산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며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난 6년간 연평균 3.25%씩 감소했지만 이 속도로는 충분치 않다. 2분의 1 이상의 감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