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에 이어 명태균와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강제수사에 나선 것이다.
7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특검팀은 이날 윤 의원의 자택과 국회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과 김상민 전 검사의 자택도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 의원은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과 관련한 핵심 인물이다. 공개된 녹취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하루 전인 2022년 5월9일 명씨와의 통화에서 “김영선이 4선 의원에다가 뭐, 어?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는데 좀 해주지 뭘 그러냐. 하여튼 (윤)상현이한테 내가 한 번 더 얘기를 할게. 걔가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말했다.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이었던 윤 의원에게 김 전 의원 공천을 부탁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윤 의원이 이번 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김 전 검사도 김 여사를 통해 명씨에게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명씨는 지난 4월 검찰 조사에 앞서 취재진에게 “여사가 ‘조국 수사 때 김상민 검사가 고생을 많이 했다 그 사람 좀 챙겨줘라’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폭로했다.
지난 5월11일 박은선씨(45)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 너머 시인 송경동씨가 물었다. “고공여지도를 다시 그려주시겠어요.” 송씨는 10년 전 박씨가 그린 그림을 언급했다. 박씨는 다시 펜을 들어 철탑과 불탄 공장, 교통시설 철제 구조물을 그렸다. 그 위로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사람 형상도 그려 넣었다. 하나 같이 높이 솟아 있는 그림들을 보며 박씨가 생각했다. ‘10년이 지나도 바뀐 것이 없구나.’
박씨의 그림은 같은 달 21일 발행된 굴뚝신문 4호의 마지막 면을 채웠다. 굴뚝신문은 쌍용자동차·스타케미칼 해고 등으로 굴뚝에 오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이 사회에 알리기 위해 2015년 1~3호가 제작됐다. 같은 해 박씨도 지인의 제안을 받아 전국 고공농성의 역사를 담은 ‘고공여지도’를 처음 그렸다. ‘하루빨리 폐간되길 바라는 신문’과 ‘역사로 남길 바라는 그림’이 10년 만에 다시 만들어졌다.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수석부지회장이 지난달 1일 세계에서 가장 긴 고공농성 기록을 갱신하는 등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이어진 탓이다. 박씨는 8일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전국 팔도에서 벌어진 고공농성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박씨는 고공여지도에 50일 이상 이어진 고공농성장의 모습을 담았다. 그는 “높은 데 올라간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작은 땅덩어리에 (농성장을) 다 넣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굴뚝·광고탑·크레인·송전탑 등 길쭉하게 솟은 그림들이 전국 지도를 채우고도 남아 한반도 경계 바깥으로 삐져나왔다. 자리가 부족해 그림으로 채 표현하지 못한 고공농성장의 위치는 자주색 점으로 표시했다. 그림 왼쪽엔 1990년 4월25일 공권력에 대항해 크레인을 점거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부터 지난 4월18일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외치며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에 오른 장애해방 활동가들까지 총 126개의 고공농성 연대기가 세로로 빼곡히 적혔다.
박씨가 그린 공간들은 좁고 높았다. 10~100m의 높이의 좁은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길게는 1년 넘게 버텼다. 박씨에게 고공농성장의 좁디좁은 공간은 “한국 사회에서 내몰린 노동자들의 입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는 “201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고공여지도를 전시했는데 외국 사람들이 왜 노동자가 철탑 같은 데 오르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며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공여지도에 담긴 고공농성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8일로 548일째, 고진수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은 146일째 고용승계와 복직 등을 요구하며 하늘에 있다. 박씨는 “10년 전에 비해 계엄, 선거 등 큰 사건으로 고공농성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며 “사람들이 ‘얼마나 절박하면 그 높은 데를 올랐을까’하고 공감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도시공학과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박씨는 예술공동체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에서도 활동한다. 2009년 용산참사를 계기로 결성된 리슨투더시티는 청계천을지로 상가 강제 철거 논의 당시 시장 관계도 등을 디자인해 상인 재이주에 힘쓰는 등 “도시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위한 예술 활동”을 한다. 박씨는 고공여지도도 “한국 사회에 보이지 않는 원동력인 노동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는 “차별과 서열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노동을 존중하고 존중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봄에는 장맛비처럼 비가 퍼붓더니, 정작 장마철에는 ‘먼지잼’이라 할 만큼의 가는 빗방울만 뿌리며 지나가는 듯하다. 장마철을 유난히 기다려온 나무가 있다.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 종류가 그렇다. 이 가운데 우리의 토종 나무인 왕버들이 있다.
왕버들 중에서 어린 가지와 잎자루에 부드러운 털이 돋아나는 종류를 ‘털왕버들’이라고 따로 분류하는데, 왕버들과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개체수가 많지 않아 귀하게 여기는 털왕버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이 서울 근교에서 발견해 등록한 우리 토종 나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털왕버들로는 경북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 개울 가장자리 둑에 서 있는 나무가 유일하다. 둑 위에서 땅속 깊이 뿌리를 뻗어 흙을 고정해 홍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해온 고마운 나무다.
나무 나이 200년, 나무 높이 15m, 가슴높이 줄기 둘레 4.6m에 이르는 ‘청도 덕촌리 털왕버들’은 거대한 나무가 아니다. 털왕버들이 비교적 희귀하다는 생물학적 가치가 그를 보호하는 이유다. 그러나 약 1.5m 높이에서 줄기가 크게 두 갈래로 나뉘며 사방으로 펼친 가지들이 지어내는 개울가의 풍광은 가히 천연기념물급이다. 당연히 무더위를 식혀주는 싱그러운 그늘의 정자나무로 사랑받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상태를 보고 농사의 풍흉을 점쳐왔다고도 한다. 봄에 모든 가지에서 한꺼번에 잎이 피어나면 풍년이 들고, 가지마다 성글게 따로따로 돋아나면 흉년이 든다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눈에 띌 정도로 잎이 따로따로 피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풍년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되새기며, 이 나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안심시켰던 것이지 싶다. 이 나무는 사람의 마을에 우뚝 서서 풍요를 약속하는 희망의 상징으로 살아온 셈이다.
청도 덕촌리 털왕버들은 한 그루의 식물을 넘어 자연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이해와 지혜, 공동체의 문화와 믿음, 식물분류학적 희귀성을 모두 담고 있는 우리의 훌륭한 자연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