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첫 고용노동부 장관에 23일 발탁된 김영훈 내정자(57·사진)는 철도기관사 출신으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노동부 장관에 내정된 건 처음이다.
1968년 부산에서 태어나 마산중앙고와 동아대학교를 졸업했다. 1992년 철도청에 입사해 기관사로 일했고, 2004년 철도노조 위원장, 2010년 민주노총 6기 위원장에 당선됐다. 2020년 정의당 노동본부장을 맡아 정치에 도전했고 지난해 총선에는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한국철도공사 부산경남본부 기관사인 김 내정자는 이날도 부산발 서울행 ITX 새마을 1008 열차를 운행했다.
김 내정자는 현장 경험과 정무 감각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노동계 인사는 “공공기관 노조 출신으로, 민간기업 출신보다는 노·정관계 전반을 조율하는 데 강점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민주노총 위원장을 노동부 장관으로 발탁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이번 인선으로 약속을 지킨 셈이다.
노동계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민주노총은 김 내정자에 대해 “한국 사회 노동 현장의 현실과 과제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며 “정부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노·정 교섭을 제도화하고 안착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김 후보자는 노조법 2·3조 개정 등 노동기본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라면서 “정년연장, 주 4.5일제 등 쟁점 현안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비정규직과 노조 밖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현실을 직시한 정책을 펴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박 위원장은 비대위에 올린 공지에서 “모든 직을 내려놓고자 한다”며 “지난 1년 반,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했으나 실망만 안겼다. 제 불찰이다”라고 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 집단사직 등 강경투쟁을 주도한 박 위원장이 물러남에 따라 의·정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때마침 ‘빅5 병원’ 중 세 곳의 전공의 대표들은 정부에 대화를 제안하며 ‘조건부 수련 재개’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끝이 보이지 않던 의·정 대치가 이로써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
전날만 해도 박 위원장은 병원·학교 복귀를 바라는 전공의·의대생들의 요구를 일축했다. 그랬던 박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발표엔 이날 동아일보에 보도된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병원 전공의 대표 인터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박 위원장의 소통 부족을 지적하면서 복귀 의사를 밝혔다. ‘정책 결정에 전공의 참여, 양질의 수련 환경 확보’ 등 조건을 달았지만, 전공의 대표들이 처음으로 수련 재개 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변화의 조짐이 읽힌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 동료들의 이탈이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고, 더 이상 대표직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박 위원장이 이끈 대전협은 정부가 의대 증원을 원점으로 돌리고 수련 특례 등 유화책을 내놓아도 ‘필수의료 패키지 폐지’ 등 조건만 내걸면서 몽니를 부렸다. 올해 초 학교로 복귀하려는 의대생들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박 위원장은 “팔 한쪽 내놓을 각오도 없다”고 질타하며 막아 세웠다. 사태가 이렇게 장기화된 데는 박 위원장 등 강경 지도부의 책임도 크다. 당사자들로서는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복귀하고 싶다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목소리가 커진 이유일 수 있다.
의·정 갈등이 이어진 지 1년4개월이 넘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명확한 근거 제시 없이 ‘의대 증원 2000명’을 밀어붙인 과오가 크지만, 의료계 역시 장기 대치 책임이 가볍지 않다. 응급실 급구의 고통은 환자와 국민이 감수해야 했다. 정책 실패 사례로 남았지만, 의료개혁의 당위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일단 전공의 대표단과 새 정부가 만나는 것으로 첫걸음을 떼면 된다. 이제는 의·정 대치를 끝내고 정부와 의료계가 의료 정상화를 위한 로드맵을 짜기 바란다.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인 중흥기를 맞은 것은 제작자, 아티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노력을 축적해 온 결과다.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
지난 18일 개봉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엘리오>에서 특수효과(FX) 제작을 담당한 이재준 이펙트 테크니컬 디렉터는 24일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BTS 등 다양한 한국 콘텐츠가 주목받으면서 주목받지 못했던 아티스트 분들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며 “한국인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한국인만의 특별한 치열함이 있다”고 말했다.
이 디렉터는 물, 불, 연기 등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드는 전문가다. <엘리멘탈>, <인사이드 아웃 2>등 굵직한 작품들에 참여했다. 약 1000여 명의 디즈니·픽사 구성원 중 한국인은 10여 명이다.
그는 자신의 그래픽 작업을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펙트는 자연현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에요. 표정은 없지만, 연출자가 원하는 느낌을 기술적으로 전달하는 거죠.” <엘리오>는 외계인 납치를 꿈꾸는 소년 ‘엘리오’가 지구 대표로 우주에 소환되며 겪는 일들을 담았다. 극 중 엘리오는 바닷가에서 우주와 통신을 시도하는데, 모래와 바다 표현을 이재준 디렉터가 담당했다.
그는 “많은 이펙트 중 물 표현이 가장 어렵다고 꼽힌다”며 “관객이 보는 화면 1~2초를 만들기 위해서 컴퓨터 수천 대가 사용될 정도로 복잡한 값이 필요해 굉장히 도전적인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모래 표현에 대해서도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무거운 시뮬레이션을 사용했다”고 말하며 “엘리오에서는 아주 세밀한 모래 작업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 속 가장 좋아하는 부분으로 엘리오가 바다에 빠지는 장면을 꼽았다. “거친 바다를 통해 그의 상실감이나, 다급함을 표현하고자 했다”며 “반대로 차분한 감정을 연출할 때는 현실의 바다보다 더 잔잔한 모습을 구현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라는 건 결국 스토리 텔링”이라며 자연현상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라북도 고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이 디렉터는 어린 시절 친척의 손에 이끌려 <라이온 킹>을 보고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아주대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석사 과정을 하면서 FX 분야를 공부했다. 대학원 졸업 후엔 로스앤젤레스에서 광고, 영화, 뮤직비디오 등을 만들다가 2021년 픽사에 시니어 아티스트로 합류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픽사 애니메이션은 <월-E>다. 그는 “대사 없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그는 <월-E>를 연출한 앤드루 스탠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토이 스토리5>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픽사의 애니메이터로서 애니메이션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에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