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가입사은품많이주는곳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제나 히츠 지음·박다솜 옮김에트르| 344쪽 | 2만2000원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는 먹물의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는 책이다. 단테 <신곡> 지옥편의 첫 구절을 패러디(삶의 여정 중반에 이르러 나는…)하며 책을 시작하는 저자는 철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자신이 몸담은 학계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면서 외딴 숲속에 자리한 종교 공동체에서 지내게 된다. 바깥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자 자신이 갈망했던 ‘공부’와 ‘배움’에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사유의 결과물이 이 책이다.
“지적 활동은 개인이 고통으로부터 피신하고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인간의 핵심, 즉 내면의 삶을 길러낸다.” 저자는 배우고, 알아가고, 연구하고, 관조하는 삶이 왜 중요한지,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책에선 배움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려는 욕구가 평범한 인간의 특징임을 강조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배움 자체를 위한 배움’을 추구해 고유한 내면의 삶에 도달한 영화 <고슴도치의 우아함> 주인공이라든지 아인슈타인, 그람시 등 다양한 인물들의 사례를 들려준다.
이 지점에서 공부는 엘리트들의 전유물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저자는 배움이 인류 전체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지적인 삶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겸허한 독서광, 아마추어 자연 탐구가, 관조적인 택시 운전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지적인 삶’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유용성’이라는 잣대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무용함의 찬란함을 풀어내는 단단하고 아름다운 서술들이 인상적이다.
“지적인 삶은 고통으로부터 도피처가 되어주고, 개인의 존엄을 상기시키며, 통찰과 이해의 원천이자 인간의 열망이 자라나는 정원이다. 지적인 삶은 벽의 움푹 파인 공간과 같아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눈앞의 논쟁에서 잠시나마 한 발짝 물러나 시야를 넓히고, 자신이 상속받은 보편 인류의 유산을 기억해낼 수 있다. 이 모든 사실로 미루어볼 때, 배움은 유일한 미덕은 아니더라도 핵심 미덕인 것이 분명하다.”
고용노동부 담당 기자들에게는 중대재해 사망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온다. 13일에도 퇴근 시간쯤 문자메시지가 울렸다. 낮 12시35분쯤 경북 봉화군 한 기업에서 일하던 1963년생 노동자가 굴착기로 작업하던 중 슬러지 침전물이 무너지며 굴착기와 함께 매몰돼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사고 장면을 상상하곤 끔찍하단 생각을 했지만 잠시였다. 사고 내용 설명 뒤에는 늘 같은 내용이 붙는다. 노동부 포항지청 광역중대재해수사과와 영주지청 산재예방지도과가 즉시 사고 조사에 착수했고 부분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는 등 엄중 조치를 했다는 문장이다. 얼마나 엄중 조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퇴근하기 위해 가방을 쌌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사망한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매일 일터에서 사람이 죽고 있다. 노동부 메시지를 받고 있으면 산재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리는 시스템만으로 정부도, 국회도, 기업들도, 언론도 ‘면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매일 알림을 받다 보니 죽음에도 익숙해지고 있는 것 아닐까.
위험이 제거되기는커녕 더욱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 SPC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죽음이 이어졌다. 지난달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상반신이 기계에 끼여 숨졌고,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소속 김충현씨가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2022년 평택 SPL 제빵공장, 2023년 성남 샤니공장에 이어 SPC그룹에서 발생한 ‘끼임’ 사망 사고는 이번이 3번째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선 김용균씨 사망 이후 6년여 만에 다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앞서 두 사람이 사망했지만 SPC그룹은 12시간 주야 맞교대가 반복돼 집중력 저하 등 위험이 있다고 지적됐던 ‘2조 2교대’ 시스템을 바꾸지 않았고, 생산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기계에 문제가 있어도 멈출 수 없는 SPC의 현장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발전소의 다단계 하청구조, 1인 근무 시스템도 변하지 않았다. 위험한 부분에 노동자가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하는 방호울은 이번에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다.
장례식장 안내 공지 속 사진에서 SPC 여성 노동자는 웃고 있었다. 김충현씨가 2016년 발전소에 입사할 당시 사진에도 미소가 보인다. 그들이 위험할 때 비상정지 버튼만 눌러줄 수 있는 동료가 옆에 있었다면 여전히 우리 곁에서 웃고 있지 않을까. 김씨가 다뤘던 선반 기계에는 손으로 누를 수 있는 비상정지장치와 발로 멈출 수 있는 풋브레이크가 있었지만 그것을 눌러줄 동료가 없었다.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위험은 아래로 흐르지만 이윤은 끝도 없이 위로 오르기 때문이다.
‘고 김충현 사망사고 대책위’는 김씨가 김용균씨 사망 이후 조합원들과 투쟁하던 현장에 있었던 사진을 발견했다. 발전소 비정규직들의 노동 환경을 바꿔야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외쳤던 그는 6년여 후 같은 이유로 죽게 될지 몰랐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김충현씨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SNS에 “일하다 죽는 나라, 더는 용납할 수 없다”고 썼다. 집회 현장 뒷줄에서 구호를 외치는 김충현씨의 작은 얼굴을 다시는 이렇게 발견하지 않아야 한다.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아야, 무뎌지지 않아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