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 온라인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사람들의 땀이 흘러도 행사장에 물밀듯이 밀려드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무지개 아이템으로 자신을 한껏 꾸미고 나온 사람들은 신나게 춤췄고, 낯선 이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지난 14일 서울 도심에서 개최된 제26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수만명의 인파가 찾았다.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광장은 물론 영화제를 개최하는 공간조차 거부당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지만,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라는 올해의 슬로건처럼 참여자들의 열정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 비록 서울광장을 사용하지 못했더라도, 서울 어디서든 성소수자 자긍심이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자긍심, 곧 프라이드는 차별금지법 없는 일상에서 나를 지키고, 세상에 맞서는 힘이기에 부딪히는 과정에서 강해지고, 혐오에 대항하는 과정에서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윤석열을 탄핵한 광장을 시민들이 경험했기 때문에, 예년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퀴어문화축제를 채웠다. 고공에서 농성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조들이 퍼레이드 차량의 선두에 서는가 하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규탄하고 연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무지개와 만났다. 금속노조에도 성소수자 조합원이 있다며 조합 가입을 권유하는 현수막은 또 다른 의미의 축하와 연대의 의미로 다가왔다. 탄핵광장에서 만난 ‘다름’은 연대를 확장시켰고,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는 모든 시민이 축제에 참여함으로써 ‘다시 만난 세계’가 완성됐다.
또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불참을 선언했다. 하지만 1년 넘게 변희수재단 법인 설립을 방해하고 있는 인권위를 규탄하는 서명 캠페인에는 시민들이 줄을 길게 섰고,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인권위 직원들의 부스에도 격려 메시지가 쏟아졌다. 한 공간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향한 규탄과 격려가 공존할 수 있고, 평등한 사회를 향한 열망을 서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며칠 전 북한의 대남방송이 중단되며 그동안 고통받아왔다는 접경지 주민들의 꿀잠 소식이 전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며 평화와 공존을 향한 첫 단추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제는 ‘혐오’라는 소음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일상도 살펴야 한다. 평화와 공존은 접경지만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에게도 절실한 과제다. 윤석열 탄핵광장이 이재명 정부를 출범시킨 만큼,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한 차별과 혐오 척결이라는 사회적 과제를 뒤로 미뤄선 안 된다.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도 울려 퍼졌던 혐오의 확성기가 중단될 수 있도록, 그리고 혐오로 인한 고통이 사라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시급히 마련되길 희망한다. 나를 지키는 자긍심이 혐오에 인내하지 않고,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 영화 ■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더무비 오전 7시30분)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끔찍한 고통과 역사적 아픔을 기록하고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전한 영화 <귀향>의 후속작이다. <귀향>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나눔의집에서 제공한 피해자들의 증언 영상을 더해 만들었다. 본편 주요 장면들은 남기고, 넣지 못한 장면들을 넣는 식으로 만들었다. 일본이 왜 사과하고 반성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 예능 ■ 핸썸가이즈(tvN 오후 8시40분) = 직장인들의 반복되는 끼니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배우 차태현·이이경·신승호, 전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 펜싱 선수 오상욱이 나섰다. 음식에 진심인 다섯 남자가 찾은 동네는 회색 도심 속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아차산 일대다. 이날 방송에는 방송인 덱스가 출연해 오리고기, 주꾸미, 장어, 두부 요리 등 맛과 영양을 모두 잡은 보양식을 다양하게 맛본다.
성별, 세대, 신체조건 등의 ‘다름’으로 구성원을 가르고, 그중 약해 뵈는 편을 향한 멸시로 다른 한편의 표를 주워 온 그가 이번 대선의 후보까지 됐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게다가 무려 8%대의 지지를 얻었으니 머잖아 트럼프 같은 괴물을 한국도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계엄 전 명태균과 엮여 이름이 오르내리자, 동덕여대 학생 시위를 ‘비문명’으로 낙인찍으며 관심을 피하려 했지만, 그것 역시도 여성에 대한 폄훼로 남성 청년의 표를 낚으려는 속셈임을 아는 이들은 다 안다. 동덕여대 시위는, ‘쥐뿔도 모르면서’ 권력에만 눈이 벌게진 마흔의 정치 선동가에 의해 날조될 만한 사안이 아니다.
[플랫]“페미 동아리가 계엄군 행세”…‘동덕여대 시위’를 ‘계엄군’에 비유한 개혁신당 최고위원
지난해 11월 이사회의 공학 전환 논의가 학생 시위를 촉발했고, 언론은 사안의 배경과 본질보다 ‘과격한’ 학생들이 ‘착한’ 학생들의 학습권을 뺏고 학교에 피해를 줬다며 연일 1980년대식 보도를 해댔다. 그러나 당시의 비장한 구호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진 않는다”는, 공학 전환이 그 정도의 저항을 부를 만큼 위험한 발상일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했다. 동덕여대의 힘겨운 투쟁은 그러나 그 몹쓸 계엄에 완전히 덮여 이후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지 못했다.
[플랫]“보기 싫은 흉터만은 아닐것”…생채기·성장통 남은 동덕여대 투쟁 ‘그 후’
“여대에선 교수가 여자 직업인 줄 알았는데, 공학에 오니 남자 직업이네요.” “여대였다면 학교가 뒤집힐 일을 공학은 그냥 넘겨요.” 여대와 공학 비교연구에서 만난 여학생들의 ‘증언’이자, 롤모델로 가득한 여대 졸업 후 공학의 대학원생으로 지내며 그들이 만난 현실이다. 공학 이공계 여학생은 드물지 않게 교직 상담을 청하는데, 여자 교수도 적은 데다 남성적 문화가 팽배한 실험실에서 살아남기가 어렵기에 이공계 연구원이나 산업 인재로서의 꿈을 접고 일찌감치 교직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교사로서의 꿈도 좋지만, 요는 이들의 ‘오랜’ 꿈이 공학의 환경에서 지레 꺾인다는 것이다. 잊힐 만하면 나오는 신입생 환영회 성폭력은 공학의 ‘일상’이지만 공식화되기 어렵다. 젠더 문제 발언에 있어 여학생은 남학생들의 반격이 성가셔 수위를 조절하거나, 아예 입을 닫기도 한다.
공학의 학생 문화만 문제적인 것은 아니다. 내가 속한 단과대에는 역대 학장 사진이 수십장 걸렸는데 그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공학에선 놀랄 일도 아니다. 여대라고 남교수에 의한 성폭력이 없지 않겠으나, 공학의 성폭력은 드물지 않을 뿐 아니라 자주, ‘조직적으로’ 은폐된다. 성폭력 가해자가 명백한데도 교내 다양한 인맥으로 종종 무혐의나 경징계로 끝나버린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성폭력 대책위 젠더 전공교수 필참’ 규정은 삭제되기도 한다.
[플랫]국립대 교수 중 여성은 21.4%, 주요 보직은 13.7%만 여성
동덕여대 시위는 충분한 여성 롤모델, 졸업 후 사회에서의 성차별에 맞설 역량 함양, 자기표현 가능한 자유로운 교육 환경, 그리고 여성의 생애사적 경험과 사유 방식을 예외 아닌 ‘보편’에 둔 학문 추구 등이 공학 여성에게는 보장되지 않음을 한국 사회에 폭로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위 학생들을 불온한 언설로 낙인찍는 한국 언론과 계산기 두드리는 대학 당국은 학생 시위가 드러낸 이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젠더 정의가 ‘제자리’를 찾는 고등교육의 질적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 이 문을 열어젖힌 동덕인들, 잊지 않겠습니다!
▼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