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선시대 관직 채용 제도 중에 ‘음서제’가 있다. 고위 관직 자손이나 친인척은 과거시험 없이도 관직에 오를 수 있는 특권을 준 것이다. 음서를 통해 벼슬길에 오르는 이는 보통 하급 관리로 임용됐지만, 세습적 특권 보장과 신분제 고착화로 조선 후기엔 사회적 문제로도 불거졌다.
오늘날 음서제와 종종 비교되는 게 2009년 출범한 ‘로스쿨’이다. 대학 졸업생이 진학하는 이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을 마쳐야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부여된다. 국내 25개 로스쿨 수업료(입학금 제외)는 지난해 평균 1450만원(사립대 1700만원, 국공립대 1075만원)이고, 가장 비싼 고려대는 1950만원이었다. 고액의 등록금 외에 입시 컨설팅과 사교육, 정보력, 로펌 인턴십까지 더해져 로스쿨이 특정 계층, 특히 법조인 가문 출신 자녀에게 유리해졌다는 뒷얘기가 끊임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5일 ‘광주·전남 타운홀미팅’에서 로스쿨 제도에 대해 “법조인 양성 루트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는 (로스쿨 제도가 부적절하다는 시민의 문제제기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석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에게 ‘사법시험 부활’과 관련해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당부했다.
과거 사법시험은 ‘고시 낭인’을 양산하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지만, 누구나 학력·전공을 떠나 법조계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였다. 그 사법시험을 대체한 로스쿨은 다양한 법조인과 법률서비스를 대폭 늘려 고액의 법률시장을 대중화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하나, 그 이면에서는 비싼 교육비와 높은 진입 장벽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은 법조인이 될 기회를 잡기 어려워진 것도 냉혹한 현실이다. 당초의 법조인 대중화 취지와 달리 로스쿨이 능력보다 배경, 기회의 평등보다 기득권 세습 창구로 변질된 ‘현대판 음서제’ 시비의 중심에 서버렸다.
일장일단이 있는 로스쿨과 사법시험의 양자택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대통령의 지시도 로스쿨로 일원화된 법조인 양성 창구를 다양화하든지, 로스쿨의 보완책을 강구해보라 한 걸로 해석된다. 다시 논의가 성숙될지, 어떤 답이 나올지 주목된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24일 인사청문회에서 최근 5년간 규명되지 않은 소득 약 6억원에 대해 2차례의 출판기념회 2억5000만원, 장인상 조의금 1억6000만원, 처가에서 생활비 도움조로 여러 차례에 걸쳐 받은 2억원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며 국무총리로서 “이해충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간 논란이 됐던 2020년 이후 소득에 대해 설명했다. 야당은 해당 기간 김 후보자의 의원 세비 수입은 5억원 정도인데, 아들 유학비 2억원을 뺀 지출이 11억원이어서 차액인 6억원의 출처를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는 2020년 국회의원이 된 후 두 차례 출판기념회를 했는데, 각각 1억원과 1억5000만원의 소득이 있었다고 했다. 또 2020년 11월 빙부상에서 1억6000만원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12월 자신의 결혼식에서 들어온 약 1억원의 축의금은 모두 장모님에게 드렸는데, 배우자가 부족한 생활비로 처가에서 200만원, 300만원씩 받은 것을 누적하면 2억원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1월엔 은행에서 1억8000만원을 대출해 1억원으로 남은 추징금을 갚고, 나머지 8000만원을 총선 비용으로 썼다고 밝혔다. 이후 아파트 보증금을 빼서 이 대출을 갚았다고 했다. 그는 출판기념회나 조의금으로 돈이 들어오면 “거의 며칠 안으로 대부분을 추징금으로 납부했다”면서 일부는 교회 헌금으로 내 연말에 공직자 재산으로 신고할 금액이 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야당에서 출판기념회와 경조사 소득을 재산신고에 반영하지 않아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한 항변이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출판기념회 수입액이 국민 눈높이에 현격히 맞지 않는다”며 “출판기념회는 음성적 자금 통로로 지적받는데, 이해충돌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는 “출판기념회는 책을 3000부, 2000부 해서 평균 (권당) 5만원 선 정도의 축하금이었다”며 “사회에서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야당은 김 후보자 모친 소유의 서울 양천구 소재 한강빌라에 2019년 3월 한 건설업자가 전세 계약(보증금 2억원)을 했다가 그해 5월에 배우자(2억5000만원), 그해 8월에 다시 장모(2억8000만원)로 전세 계약자가 바뀐 의혹도 제기했다.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은 “건설업자가 대신 보증금을 낸 것으로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건설업자가 셰어하우스 사업을 하려다 수리 비용이 제법 들어 주저하던 차에 아내가 서울로 들어올 집을 찾다가 들어왔다”면서 “마침 장인어른이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수요가 있었던 장모가 들어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는 미국 코넬대에 다니는 아들 학비 문제에 대해 “학비 지원은 새로운 가정을 출발한 이후에 없다”고 했고, 전 배우자의 송금 내역을 제출하라는 야당 요구엔 “새로운 길을 걷는 애들 엄마한테 요청할 방법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2020년인가 애 엄마가 학비를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국회에 소명한 자료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2009~2010년 중국 칭화대 석사 학위 취득과 관련,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 머문 기간이 26일밖에 안 된다”고 지적하자 “계산하신 것과 달리 총 148일 체류했다”고 반박했다. 김 후보자는 “(석사) 논문을 카피킬러(표절 검사기)에서 돌렸다. (다른 논문의) 문장을 그대로 복사, 붙이기 한 것만 41%가 나왔다”는 김 의원 지적에 “엄격한 논문 작성에 대한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아들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 동아리 활동 중 만든 법안을 국회에 발의해 대학 입시에 활용토록 했다는 의혹에 대해 “대학 원서에 국회 입법 청원 활동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분명히 전했고 아이가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불참이 중국과 러시아 눈치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불참한) 일본 총리가 그렇게 결정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근거 없는 비판”이라고 말했다.
국회 인사청문특위는 25일 김 후보자에 대한 이틀째 인사청문회를 진행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22일 만인 26일 국회 첫 시정연설을 하며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 중 국민의힘을 여러 차례 언급했고, 연설 후 국민의힘 의원들과 악수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서 20분간 시정연설을 하며 민생경제 회복과 경제 성장을 위한 추경안 처리에 여야 협조를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10시6분쯤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전원 기립해 본회의장 입구부터 연단까지 양측으로 서서 이 대통령을 환영했다. 이 대통령은 입구 쪽에 있는 박찬대 의원과 가장 먼저 인사를 한 뒤 김병기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등 의원들과 한 명씩 악수를 하며 밝은 표정으로 연단으로 이동했다.
연설 시간 동안 여당에서 총 11회 박수가 나왔다. 몇몇 여당 의원들은 연설이 시작되자 휴대전화로 촬영을 했다. 연설 중 띄운 ‘우리 경제의 회복과 성장을 위해’라는 제목의 파워포인트(PPT) 슬라이드에는 ‘통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 청색과 적색을 섞은 이미지가 등장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 중 “국민이 주인인 나라” “힘차게 성장, 발전하는 나라” 등을 말할 때 의식적으로 국민의힘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연설 초반 여당 쪽에서만 박수가 나오자 “우리 국민의힘 의원들 반응이 없는데 이러면 (제가) 좀 쑥스러우니까”라고 농담을 했다. 이 대통령 말에 여당 쪽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나왔지만 국민의힘은 침묵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 끝에 “특히 우리 야당 의원님들께서도 필요한 예산 항목이 있거나, 삭감에 주력하시겠지만, 추가할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의견을 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연설 마지막에도 야당 의석을 보며 “우리 국민의힘 의원님들, 어려운 자리 함께해 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고맙다”라고 인사했다. 연설 마지막까지 국민의힘에서는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후 국민의힘 의원석으로 이동해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등 의원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했다. 대부분 의원이 일어나 이 대통령과의 악수에 응했다. 일부 의원은 이 과정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중앙대 선후배 사이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과 악수 과정에서 무언가 말을 주고받은 뒤 웃으며 권 의원 어깨를 툭 치기도 했다. 권 의원은 본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김민석) 총리 임명 안 된다고 (내가) 두 번 말했더니 (대통령이) 알겠다고 웃으며 툭 치고 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야당 의원들이 악수하자 여당에서는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나왔다. 이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떠난 뒤에도 한동안 여당 의원석에서는 “이재명” 연호와 함께 박수가 5분여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