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진행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발언 논란에 관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여야는 김 후보자의 도덕성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인식을 검증 대상으로 삼지 않는 모습은 같았다. 진보 진영에서는 26일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정치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인사청문특위 여야 위원들은 지난 24~25일 진행된 김 후보자 청문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묻지 않았다. 청문위원은 더불어민주당 의원 7명과 국민의힘 의원 5명, 조국혁신당 의원 1명으로 구성됐다.
앞서 김 후보자가 지난 2023년 개신교계 행사에서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이후 김 후보자가 개신교계 반대 논리를 “헌법적 권리”로 두둔해 논란이 커졌다. 진보 진영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견해와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인식을 청문회에서 밝히라는 요구가 잇따라 제기됐다.
김민석 “모든 인간이 동성애 택하면 인류 지속 못해” 과거 차별금지법 반대 발언
여당인 민주당이 관련 검증을 피한 데는 김 후보자에게 불리한 이슈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지난해 9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청문회에서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은 공산주의 혁명의 수단’이라는 취지의 안 위원장 발언을 집중적으로 지적한 모습과 다르다. 김 후보자 청문위원인 전용기 의원은 당시 안 위원장 청문회에서 “차별금지법은 인권위에서 제대로 챙겨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이를 검증 대상으로 삼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제3당인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 대선에서 연대하는 등 범여권으로 평가되는 터라 김 후보자에게 공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플랫]대선에서 사라진 ‘차별금지법’… ‘광장의 목소리’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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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한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고 답답한 청문회였다”라며 “(청문위원들이) 내란 청산의 광장에서 요구된 제1의제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최소한이라도 물어볼 의무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고 한 달도 안 돼서 광장의 연대를 깨트렸다”고 덧붙였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기자의 질의에 “총리 후보자가 동성애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는데 여야 모두 질의조차 못 한 게 우리 정치의 암울한 현실”이라며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정치가 실종됐다”고 밝혔다. 그는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대통령 때 추진되고 민주당 의원들이 줄곧 발의해온 법안”이라고 밝혔다.
홍성규 진보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반드시 추가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었는데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라며 “이러고도 국회에 ‘민의의 전당’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겠는가, 심각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도 이날 논평에서 “여야 청문위원 모두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인권과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검증은 철저히 배제됐다”고 비판했다.
▼ 박광연 lightyear@khan.kr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이 2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초가속 시대의 도전, 공포를 넘어 희망으로'를 주제로 열린 <2025 경향포럼>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외교·통일·국방부 장관을 내정하면서 외교·안보 진용의 인선을 마쳤다. 종잡을 수 없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상대로 안정적인 한·미 동맹을 유지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인사로 풀이된다. 또 64년 만에 문민 출신을 국방장관으로 기용하면서 고강도 국방개혁을 예고했다.
외교부 장관에 내정된 조현 전 주유엔 대사(68)는 1979년 외교부에 들어간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입부 동기다. 조 내정자는 양자·다자 외교와 경제·통상 업무 등을 두루 담당했다.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와 다자외교조정관 등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부 1·2차관과 주유엔 대사를 맡으면서 트럼프 1기 행정부를 상대한 경험이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조 내정자를 두고 “관세 협상과 중동 분쟁 등 당면한 현안에 적극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내정자는 통화에서 “엄중한 시기라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경건하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72)은 5선의 중진이다. 2004~2005년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2005년 6월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방북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면담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도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다.
이 대통령이 2007년 정 내정자의 비서실 부실장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하는 등 이 대통령의 ‘정치 멘토’로 꼽힌다. 이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통일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정 내정자가 통일부 장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할 때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당시 NSC 사무차장)와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통일부와 국정원이 북한과 각각 공식·비공식 소통 채널을 가동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부 장관에 내정된 안규백 민주당 의원(64)은 국방 분야에 정통한 인사로 꼽힌다. 5선을 지내는 동안 2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군 내부에서도 안 내정자가 군에 대한 이해가 높고 애정이 많다고 평가한다.
안 내정자가 취임하면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64년 만에 민간 출신 국방장관이 나오게 된다.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군의 문민 통제를 강화하는 등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이 담긴 인선으로 해석된다. 안 내정자는 통화에서 “문민 장관으로서 군 개혁 의지는 확고하다”며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군심을 집약시켜서 군의 사기를 올리고 군이 자신감과 생동감, 사명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계엄 이후 군 내부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황을 고려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국가보훈부 장관에 내정된 권오을 대한민국헌정회 부회장(68)은 경북 안동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출신 인사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 캠프에 합류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았다. 강 비서실장은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의 의미를 살리고 국민 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