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7일(현지시간) 한국에 25% 상호관세 부과를 통보하고 관세 유예 시한을 다음 달 1일까지 연장하기로 하면서 한국은 앞으로 약 3주 동안 대미 협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미국이 각종 ‘무역장벽’에 대해 사실상 전면적인 양보를 요구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또한 미국이 상호관세와 별개로 품목별 관세는 유지하겠다는 태도를 보여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철강 관세율을 낮추는 게 더욱 어려워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교역 상대국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바꿀 가능성을 내비쳐 이날 관세 서한이 협상 우위를 점하려는 일종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서한을 발송하겠다고 예고한 첫날인 이날 가장 먼저 한·일 양국에 각 25% 관세 부과 방침을 통보했다고 트루스소셜에 공개했다. 미국과 활발하게 무역 협상을 진행해 온 동맹국들을 1차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일에 대한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양보를 얻어낸 다음 관세 합의의 본보기로 삼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동맹국에도 예외가 없다’는 기조를 분명히 하려는 계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안보와 통상 분야 핵심 당국자인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동시에 방미 중이라 트럼프 정부의 압박 효과가 더욱 극대화된 측면이 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정상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한 것은 “대통령의 전권이자 선택”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여지를 열어두고 있는 만큼 한국이 남은 3주 동안 협상 속도를 올려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대미 투자 확대, 대미 무역흑자 축소, 조선·반도체 등 제조업 분야 협력 강화 등의 카드로 세율 하향 조정을 끌어내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에서 “폐쇄적인 무역 시장 개방, 관세·비관세 장벽 제거”를 세율 조정의 조건으로 제시한 데서 드러나듯 미국은 온라인 플랫폼법 추진 중단,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 해제 등 국내 정책 변화가 필요한 분야까지 최대치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어 양측의 간극이 큰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율이나 부과 시점을 협상 진행 상황에 따라 조정할 여지를 내비치면서도 “품목별 관세는 별도”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철강 등 품목 관세는 협상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논평에서 “이번 발표는 다른 나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메시지”라며 “미국이 한·일 양국의 최우선순위인 자동차 관세를 포함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품목별 관세 완화는 수용하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고 말했다. 일본이 미국과 조기에 협상에 착수했음에도 진전을 보지 못한 것도 자동차 등 품목 관세에 대한 예외 인정을 놓고 양측의 의견이 극명하게 대립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 달 1일 관세 부과 전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지도 관심사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난다면 정상 간 담판을 통해 돌파구 마련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그러나 합의 타결 전에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원스톱 쇼핑’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는 물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확대하는 문제,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등 안보 현안에 대해서까지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어 오히려 한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노해의 시 ‘이 땅에 살기 위하여’는 고공농성, 지하 수백m 막장 봉쇄농성, 해외 원정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을 다룬다. 노동자들은 “이 땅에 발 딛고 설 자유조차 빼앗겨/ 지상 수십미터 아찔한 고공농성”을 한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온 이 땅/ 우리의 노동으로 일떠세운 이 땅에/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사랑으로 살기 위하여” 그러는 것이다. 록밴드 YB가 1997년 이 시를 랩으로 만들어 2집 음반에 수록했다. 윤도현이 외치는 “이 땅에 살기 위하여”라는 구절이 노동자들 절규처럼 들린다.
이 땅에서 벌어진 노동자 고공농성의 원조는 ‘체공녀’ 강주룡의 평양 을밀대 고공농성이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5월23일 평원고무공장의 조선인 사장이 임금 17%를 일방적으로 삭감하자 여성노동자 49명이 파업을 선언하고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사측은 경찰을 불러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내고 해고를 통보했고, 강주룡은 5월29일 새벽 홀로 무명천 밧줄을 타고 을밀대 지붕에 올라 7시간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누구든지 이 지붕 위에 사닥다리를 대놓기만 하면 나는 곧 떨어져 죽을 뿐입니다”라는 말에서 그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1990년 4월25일 현대중공업 노동자 78명이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의 역사를 재개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평택공장 굴뚝농성(2009년),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씨의 크레인 농성(2011년) 등이 이어졌다. 2000년대에는 2021·2023년을 제외한 매해 1건 이상의 고공농성이 벌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세종호텔노조의 고진수 지부장이 복직을 요구하며 146일째, 한국구미옵티칼 노조의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548일째 고공농성 중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굴뚝농성을 벌이던 2015년, ‘굴뚝신문’과 함께 ‘고공여지도’가 제작됐다. 1990년 이후 50일 이상 이어진 전국 각지의 고공농성을 그래픽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이 고공여지도가 10년 만에 다시 제작되었다. 여기에는 1990년 이후 벌어진 126건 고공농성의 역사가 담겨 있다. 노동자들이 ‘이 땅에 살기 위하여’ 고공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고공여지도가 역사의 아픈 흔적으로만 남는 세상은 언제 올까.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시민사회 원로인 함세웅 신부(왼쪽에서 세번째), 백낙청 교수(첫번째)와 오찬을 하며 국정운영에 대한 조언을 듣고 있다. 이 대통령은 “초심을 잃지 않고 모든 역량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