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 리스크 건강한 식생활 트렌드와 맞물려 시장의 대세로 떠올랐던 비건(채식주의) 식품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21일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구매 빅데이터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속가능한 먹거리로 주목을 받았던 비건 식품 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
대형마트 및 편의점 등에서 판매된 비건 식품 구매 추정액은 2023년 초부터 가파른 증가 추이를 보인 데 이어, 2024년 1분기에 정점을 찍어 총 220억 원을 기록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해 4분기에 구매액도 139억 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자체 조사한 결과에서도 대체(대안)식품 구매자의 가격 만족도는 13.9%에 불과해 소비자들이 가격 측면에서 별다른 이점을 느끼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엠브레인 측은 가치 소비보다 가격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비건 제품군이 점차 밀려나는 흐름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인해 가치 소비보다는 실속을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베이커리류’ 비건 식품의 성장세다. 지난해 판매된 비건 베이커리류 구매 추정액은 72억 원으로, 전년 동기(36억 원)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 몇 년 새 급부상한 저속노화 식단 열풍과 함께 건강한 디저트를 추구하는 경향이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또한 고연령층에서 비건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4050세대의 구매 비중이 모두 20% 이상을 기록하며 타 연령층에 비해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대는 10.9%, 30대는 17.7%, 60대는 16.7%였다. 40대는 27.2%, 50대는 27.5%였다. 비건 식품이 트렌드가 아닌 중장년층의 건강한 식생활의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은 “전반적으로 성장세 둔화 국면에 접어든 모습을 보였지만, 품목을 다양화하고 소비자층을 확대하면서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라며 “베이커리류 중심의 상승세는 비건 식품이 일상적인 식생활의 일부로 연결되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12년 전 대학 진학 비자 받으러 본국 갔다가 희생될 뻔5년 전 어학연수차 한국에…아프간 재입국 너무 위험“전쟁 한복판 이란에 있는 가족들, 무사히 빠져 나오길”
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2022년 6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집단학살을 당했던 소수민족 하자라족인 카디제(32)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근거 있는 공포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가면 목숨이 위험했던 카디제는 싸울 수밖에 없었다. 약 3년 만인 지난 5월 카디제는 소송 끝에 난민으로 인정받을 길이 열렸다.
오는 20일 세계난민의날을 앞두고 지난 18일 서울 중구 공익법센터 어필 사무실에서 카디제를 만났다. 한국이 유엔 난민협약을 비준한 1992년으로부터 33년이 지났지만, 난민 인정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난민 인권단체는 국제적 전쟁 위기가 높아진 만큼, 특히 분쟁 지역에 대해선 난민 인정 기준을 완화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에서 태어나 자란 아프가니스탄 국적 카디제는 2013년 아프간에 갔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한 비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프간을 방문해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탔다가 다수 민족인 파슈툰족 택시기사에게 납치됐다. 차량 내에는 긴 총이 보였다. 카디제는 “내려달라 해도 내려주지 않다가 사람과 차가 많은 곳에 가서야 내릴 수 있었다”며 “계속 타고 있었다면 지금 살아있을지 확실치 않다”고 했다.
이후 이란에서 지낸 카디제는 2020년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으로 왔다. 2021년 8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다시 장악했다. 카디제가 이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프간에 입국해 비자를 연장해야 했지만 입국 자체가 위험했다. 카디제는 2022년 2월 광주출입국사무소에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 넉 달 뒤 그가 받아든 결과는 ‘난민 불인정’이었다.
탈레반이 재집권하자 하자라족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벌어졌고, 집단학살도 빈번했다. 카디제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 매체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탈레반의 여성 인권 탄압을 비판한 적도 있다. 카디제는 “탈레반도 분명히 다큐멘터리를 봤을 것”이라며 “실명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를 해서 위험이 커졌는데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3년 만에 나온 법원의 판단은 출입국사무소와는 달랐다. 광주지법 행정1단독 임성철 판사는 지난달 22일 카디제가 받은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했다. 법원은 “탈레반 재집권 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하자라족 등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테러가 발생하고 있고, 탈레반은 보호조치를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박해를 하는 주체”라며 ‘박해를 받게 될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란 체류 자격이 이미 사라졌다는 점도 고려했다.
요즘 카디제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부모, 큰오빠 등 가족의 생사 확인이다. 가족 중 일부는 아직 이란 이스파한에 머물고 있다. 이스파한엔 이란 핵시설이 있는데, 최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았다. 카디제에 따르면 이란 국민은 전쟁이 발발하면 ‘안전도시’로 이동한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이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이동할 수 있다. 카디제는 “가족들은 허가서가 나오지 않아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인 이스파한 지역에 계속 머무는 중”이라며 “어떤 방법으로든 이란을 빠져나올 수 있게 한국이 도움의 손길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난민인권센터가 법무부 자료와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정리한 내용을 보면, 2024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총 105명이다. 난민 인정률은 재정착 난민(본국을 떠나 외국에서 난민 신청을 한 뒤 다시 제3국으로 이주해 정착한 난민)을 제외하면 1.75%에 불과하다. 이 중 소송 등 없이 법무부의 난민 심사만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17명뿐이다. 난민 신청의 1차 심사 대기 기간도 평균 1년2개월에 달한다. 난민법은 난민 인정신청서를 접수한 뒤 6개월 안에 심사를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난민 지원 단체인 사단법인 피난처 김진수 활동가는 “한국 법무부의 ‘박해’ 기준이 과도하게 높다”며 “오랜 시간이 지난 경험에 관한 내용도 사소한 것에 진술의 일관성을 문제 삼는 예도 있다”고 했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활동가(변호사)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비롯해 세계적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라며 “특히 분쟁지역 출신 난민 신청자의 경우 정부가 난민 심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안정적 지위를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