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우리가 화성에서 온 외계인인가요?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인가요?”.
20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0층 배움터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다르씨는 영어로 물었다. 뒤이어 그는 청중을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우리는 같은 인류이고 같은 지구에서 왔습니다. 오직 국적만 다를 뿐입니다.” 그의 말에 청중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난민의 날 25주년을 맞은 이날 국내 20여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난민인권네트워크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25 난민증언대회’를 열었다. 난민 지위를 신청했거나 인정받은 6명이 각자의 언어로 난민으로서 겪은 어려움 등을 증언하고 새 정부를 향해 난민 정책을 제안했다.
이들은 종교적·정치적 박해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난민이 됐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에티오피아를 떠나 온 난민신청자 에리마씨는 “생존을 위해 겨우 11개월 된 딸을 두고 떠나와야 했다”며 “이 고통은 저만의 것이 아니라 전쟁, 정치 등 부당한 이유로 가족과 흩어지게 된 수천 명의 난민 가족이 겪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맨 내전을 피해 2015년 한국에 와 체류 자격을 얻은 하산씨는 “9살이 된 막내 아들을 지난 해에 처음 만났다”며 울먹였다.
억압을 피해 난민이 되었지만 이들은 난민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억압을 받았다. 남아시아 북쪽에 위치한 카슈미르에서 온 사다르씨는 2년 간 경기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다. 그는 “법무부에 따르면 난민신청자는 최대 20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다”며 “난민신청은 범죄가 아니고 인간의 삶에서 하루하루는 너무나 소중한데, 정당한 이유 없이 누군가의 인생에서 20개월 이상을 빼앗는 것은 차별이자 억압”이라고 말했다. 동아프리카 출신 난민 케이씨는 “난민을 신청하자 매우 좁고 외부와 연락할 수 없는 방에 갇혀야 했다”며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는 것은 죄인 것이냐”고 물었다.
이들은 증언대회를 마치고 새 정부를 향해 10대 난민정책 요구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난민신청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정신건강 등 의료지원을 확대할 것, 정부가 나서서 난민 혐오에 단호히 반대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난민인권네트워크 측은 “1%의 바늘구멍을 뚫고 난민 지위를 얻은 극소수의 난민들은 트라우마와 문화의 장벽, 정책 부재와 혐오 속에서 사회안전망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며 “한국은 최근 계엄과 권위주의에 맞서 시민의 힘으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고 이 변화는 국내 민주주의 회복에 그치지 않고 국제사회와의 연대와 인권 가치의 확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에리마씨는 발언을 마치며 청중을 향해 말했다. “공동체가 함께할 때 우리는 변화를 만듭니다. 목소리가 하나로 모일 때 정부는 귀 기울입니다. 마음을 다시 잇고, 삶을 되찾고, 인간다움을 실천합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원회가 20일 수사·기소권 분리 등 이재명 대통령의 검찰 관련 핵심공약을 제대로 담지 않았다며 대검찰청 업무보고를 중단시켰다. 검찰 안에선 이재명 정부 임기 초 ‘검찰 군기잡기 신호탄’이란 반응이 나왔다.
조승래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대검) 업무보고는 검찰이 현재 갖고 있는 권한을 오히려 확대하는 방향”이라며 “(수사·기소권 일치로 인한 문제, 기소권 남용 폐해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 대선) 공약과 관련된 것들은 제외하고 검찰의 일반적인 업무 현황을 주로 보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변인은 “대검이 늦게 보강자료를 내기는 했지만 구두 업무보고에서는 관련 내용이 생략됐다”며 “알맹이가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이날 업무보고에 앞서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윤석열 검찰정권의 폭주가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를 낳았다”며 “검찰은 지난날 과오를 반성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환골탈태할 때가 됐다”고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정기획위는 대검으로부터 오는 24일까지 자료를 다시 제출받고, 25일 업무보고를 다시 하기로 했다.
대검 측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국무조정실과 협의해 업무보고 자료를 만들었고, 국조실이 뒤늦게 요구해 수사·기소권 분리 공약 등과 관련한 내용 등을 추가로 제출했다’는 취지로 소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업무보고 자리엔 검찰이 추가로 제출한 자료는 준비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 업무보고 자료엔 형사부·여성아동범죄조사부·범죄수익환수부 등 민생범죄와 관련된 부서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불공정거래·중대재해 등에 엄정 대처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조 대변인이 ‘기존 검찰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의 업무보고’라고 지적한 것은 그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며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한 검찰 관계자는 “(처음부터) 한번 그러려고(회의를 파투내려고) 한 것 같다”며 “지금 분위기에 두드려 맞아야지 어쩌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검찰청 폐지 등 공약은) 어차피 입법 사항인데, 집행기관인 검찰이 이행계획을 만들 수는 없지 않느냐”며 “공약을 만든 사람들한테 물어볼 문제”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대검 관계자는 “지침에 따라서 준비했지만, 국정기획위에선 부족하게 본 것 같다”며 “시간 여유가 있으니 잘 보완해서 충실히 보고하겠다”고 밝혔다.